5주째 판판하게 놀고 있다.
내가 굴곡 없이 평평하게 놀고 있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돈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기도 하고, 겨울이라 출퇴근하기도 귀찮고,
많지 않지만 얘들 아빠가 생활비를 보태주고 있어서 그런지
널찍하게 다리 뻗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있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놀고 있길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첫 주 일주일은 마음을 편하게 다스리려고 생각 속에 나를 많이 집어넣었다. 결론은 그리 시원하진 않지만 겨울동안 글이나 열심히 쓰고, 공모전에 글도 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감이 부족한 난 글을 쓰면서도 공모전에 내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감은 없다. 어디다 어떤 글을 어떤 식으로 내야하는지 전혀 모른다. 딸아이가 공모전 사이트를 알아 봐 줬다.
실컷 잠자고, 실컷 놀았는데 감기가 걸렸다. 이주일 동안 감기로 인해 글도 못쓰고, 널브러져 있었다. 열흘이 넘어도 차도가 없어서 혹시 백혈병이 아닌가? 잠시 의심도 해 봤다. 친구중에 감기가 낫지 않아 큰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었다. 그 친구 생각이 머릿속에 떠날질 않았다. 몸이 아프니 마음까지 아팠다.
사주 째엔 연말이라서 송년회도 있었고, 감기 끝이라 기운도 없고 해서 텔레비전을 끼고 살았다. 오후부터 리모콘을 잡기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시청률을 높였다. 연기대상, 가요대상, 연말특집이라서 새벽까지 연예인들의 꽃다발 세례를 같이 받았다. 나중엔 어제 본 걸 그 다음날 낮에 또 보기도 했다.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속을 비우는 일중에 하나가 텔레비전 시청이었다. 일주일을 그렇게 비우다보니 내 일상도 빈털터리가 되었다.
오주 째는 책을 보기로 했다. 비어버린 머릿속으론 글이고 내 생활이고 무력감만 남을 것 같았다. 내가 책을 안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책에 빠져 버리면 글도 덜 쓰게 되고, 밤잠도 설치게 될까봐 그런 건데, 텔레비전에 심취하는 것보다는 책쪽이 남을 건더기가 많기에 책을 선택했다. 지금 내 침대 스탠드 장식장위엔 네 가지 책이 놓여 있다. 첫번째 책은 ‘한국수필’ 이다. 글방에서 어떤 분이 내 글을 보고, 이 곳에 수필을 내 보라고 하면서 보내준 책이다. 글 수준이 높아서 자신이 없다가 다시 이 책을 읽어보며 내 글을 정리해서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또 하나의 두꺼운 책은 ‘월드’라는 책이다. 서점에 다니는 친구가 내가 이 책이 마음에 들어 한다니까 선물로 준 책이다. 미국의 수필가이면서 시인인 작가는 천팔백년대 사람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자신이 숲 속으로 가서 집을 직접 짓고 살아온 실화인데, 책이 지루한편이다. 실제로 집을 짓고 자연 속에 산 생활 글이라기 보다는 설명글에 가깝다. 논술처럼 딱딱하기도 하다.
세 번째 책은 ‘좋은생각’이다. 지하철 안에서 심심할듯해서 그리고 이 책에 글을 내 볼 생각으로 바꿔 타는 지하철 통로에서 책을 구입했다.
네 번째 책은 최인호님의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이 책은 친구가 빌려준 책이다. 난 종교가 기독교이다. 최인호님도 기독교인이다. 그러면서 스님이 되고 싶다는 글을 써서 책으로 엮으셨다.
나는 몇 년 전에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문답시간에 제일 감명 깊은 책이 뭐냐고 한사람씩 돌아가며 얘기를 하는 시간이었다. 난 너무 솔직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인데 그 성격은 어디를 가나 나타날 수밖에 없나보다. 내 차례가 왔다. “법정스님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그 분의 삶을 전 닮고 싶어요.” 질문을 하신 권사님이나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성도님들이 잠시 날 쳐다보더니 푸하하핫~~웃고들 있다. 내 대답이 기가 막혀서 웃는 건지, 아니면 뜻밖의 대답이라 웃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 교인들 입에서 내 이야기가 펼쳐졌나보다. 넘 웃겼던 성도님이라나 하면서…….
나는 이렇게 침대 머리맡에 네 가지 책을 포개 놓고서, 내 입맛대로 골라 먹는다. 가볍게 읽어야지 하면 ‘좋은생각’을 집는다. 시골 가서 살고 싶으면 두꺼운 ‘월드’를 무릎에 올린다. 수필을 잘 써서 정식작가가 돼야지 하면서 ‘한국수필’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는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를 들고, 침대에 앉아 쿠션 상을 무릎위에 펴고 한 장 한 장 꼭꼭 씹어 먹는다.
5주째 그럭저럭 잘 놀고 있다. 누가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놀면서도 마음이 퍼질러지지 않는다. 다시 직장을 알아볼까? 하다가, 공부를 해 볼까? 하다가, 글이라 열심히 써볼까? 하다가, 판판하게 나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낸다. 이제 놀기를 한 달이 넘었는데…….더 놀 수 있으려나…….노는 것도 머리가 복잡하고, 몸이 개운하지 않다. 잘 노는 것도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