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결단이 부럽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연봉 육천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 철밥통에 가까운 따뜻한 아랫목을 박차고 나가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세상으로 나간 그
설사 그가 추구하는 일을 계속하여 그가 꿈꾸는 걸 한다 해도 결코 호구지책은
되지 못하는 걸 스스로 알아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노라고 가족에게 자신의 꿈을
희생하지는 않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나를 너무 믿는건가.
내가 자식들을 버리고 가지 못함을 그는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는 내가 항상 그의 뒤에서 후원해주리라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가보다.
내가 그렇게 우울해해도 시간이 약이라는 그.
모든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영영 주저앉을 거 같다면서 그는 나갔다.
늙은 부모님과 어린 아이들을 나에게 남겨두고.
나이 삼십 중반에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증권회사를 그만둔 고갱의 이야기는
그저 위인전기의 일화일 뿐 전혀 나와는 별개였다. 그 일화가 내게 벌어졌다.
어떻게 해야 내가 현명할까? 묵묵히 그의 뒤를 봐주어야 하는가.
그에게 가장의 위치에 대한 강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도 아이들도 늙으신 노후대책없는 부모님도 그에게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장남의 자리는 없이하고 맏며느리라는 위치만 강조되는 지금의 상황이 막막하다.
그리 사표를 운운해도 이리 쉽게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바로 집을 나가리라곤 꿈에도 생각못했다. 단 일주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직장생활과 꿈을 잘 병행해나가리란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남은 가족은 허공에 떠 있다.
묵묵히 내 갈 길을 가야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듯하다.
꿈을 깨면 여전히 직장생활 잘 하는 그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나에게 친절했던, 따뜻한 가정을 잘 가꿔왔던 그.
그가 보고싶다. 아직도 그를 많이 많이 사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