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니가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10월에 집을 나왔으니, 80여 일간의 방황이 이제야 끝난 셈이다. 지난 22일, 대구에 잠깐 다니러 가서는 그대로 눌러앉더니,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올라와서 짐만 챙기고는 곧바로 가버렸다.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던 새언니의 마음이 이렇듯 전격적으로 바뀌다니, 가히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오빠의 끈질긴 애원과 설득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버럭 화를 내기는 해도 스스로를 많이 자제하면서 오빠는 좋은 말로 새언니한테 계속 전화를 했다고 한다. 거기에 마음이 움직인 새언니가 기차를 탔는데, 내려가는 동안에도 오빠로부터 아무 걱정 말고 마음 편히 오라는 문자가 수도 없이 왔단다. 오빠가 겉으로는 난폭해보여도 속은 누구보다 여리다는 건 잘 알지만, 어쨌거나 놀라운 태도 변화이긴 하다.
또 하나, 언니가 마음을 굳히는 데 일조한 게 있다면 세밑 분위기 탓일 게다.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 모두 가족과 함께 보내야 빛나는 시간들이다. 다들 들떠있는데 새언니 혼자 객지에서 쓸쓸하게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들어갈 거라면 해를 넘기기 전이 좋지 않겠느냐고 나도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일하던 식당에서 한 달 월급도 받았겠다, 지내던 고시원도 한 달을 채웠겠다, 새언니는 이래저래 지금이 어떤 결단을 내릴 시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잘 되었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불안한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집을 나올 때는 순간의 충동으로 그랬다지만 다시 들어가려면 전과는 다른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한데 내가 보기에 새언니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덜 된 상태다. 오빠의 간곡한 청이나 애들 때문에 못 이기는 척 눌러앉은 것이지, 온전히 새언니의 의지로 들어간 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그저 새언니가 돌아와 준 것만으로 고마울지 모르지만, 오빠도 사람인지라 살다보면 날아가 버린 돈에 대한 미련이 생길 수 있고, 그러면 당연히 새언니한테 그 화살이 돌아갈 것이다. 자기중심에다 급한 오빠 성격도 지금은 좀 조심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평생 간다고 봐야 한다. 과연 새언니는 그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나와서 지내는 동안 오빠 없는 상태의 홀가분한 맛을 본 새언니가 예전처럼 참고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 두 사람은 먼저 그런 문제에 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눴어야 한다. 지금 상황은, 헤어졌던 두 사람이 서로 지칠 대로 지치고, 바뀐 환경에 적응 못해 손쉬운 옛날로 다시 회귀한 것밖에는 안 된다.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는데다 지난 80여 일간의 공백에서 오는 갈등도 스멀스멀 고개를 들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계속 유지하려면 앞으로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