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열을 아시나요.
작은 키에 기타하나 매고,
박자를 맞추느라 엉덩이를 들썩이며 간드러지게 가요를 부르는 가수를 아시나요.
추가열을 아시나요.
중단발 머리에 웨이브 파마를 하고,
기타를 약간 세워 다리로 박자를 맞추며 애교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아시나요.
친구 셋이서 망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셋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라이브를 들으러 쉘부르를 가기로 했습니다.
한 친구가 추가열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해서 그 가수가 나오는 날 그 시간에 맞췄습니다.
나는 추가열의 노래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알고는 있었지만 봐도 그만 들어도 그만이었습니다. 추가열이 나오기 전 강승모의 ‘무정 부르스’를 더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요.
기타를 약간 세우고서 몸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부르던 추가열의 노래는 간드러졌습니다.
추가열의 인사말에 자기 노래를 가슴속에 넣어가라고 했는데
가슴속에 깊이 들어와 가슴팍을 후벼 파듯이 울리는 노래였습니다.
노래도 물론 좋았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 목소리 같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귀하고 소중한 악기였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에 빠져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두 손을 들고 손뼉을 쳐 주었습니다.
낮게 소리도 질렀습니다.
“나 추가열 팬 될 거야.”
-나 같은 건 없는건가요.-
그대여 떠나가나요.
다시 또 볼 수 없나요
부디 나에게 사랑한다고
한 번만 말해 주세요.
제발 부탁이 있어요.
이렇게 떠날 거라면
가슴속에 둔 내 맘마저도
그대가 가져가세요.
혼자 너 없이 살 수 없을 거라
그대도 잘 알잖아요.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그대 맘도 아프잖아요.
그대만 행복하면 그만인가요.
더 이상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
한 번만 나를 한 번만 나를
생각해 주면 안 되나요
처음 시작할 때 이 노래를 부르더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르고 추가열은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외모는 사실 별로 관심은 없지만 어떻게 생겼기에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까 해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려가며 쳐다보았습니다.
실내가 어둡고 눈이 나빠서 얼굴선은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개인적인 모임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아서 오늘 망년회가 처음이었습니다.
단 한번의 망년회가 되겠지만 추가열이란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오래도록 가슴속에 담아 둘 것 같습니다.
2005년, 잊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3년 동안 공들여 쌓아 놓은 매장을 정리하면서 참 많이 힘겨웠습니다.
벼룩시장에 매장을 내 놓고,
혼자서 두 달 동안 매장을 보면서 하루가 지루하고 앞날이 답답했습니다.
장사는 안 되고, 매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고,
또 하나의 이별은 날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매장 정리를 잘 하고,
일년 동안 맘 편히 쉴 생각을 하다가 서점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책을 익히며 일을 했지만 서점일은 유효기간이 오 개월이었습니다.
난 다시 쉬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잡지 않았습니다.
잡지 않은 이유는 나이 때문입니다.
겨울동안 겨울잠을 자렵니다. 잠시 현실을 잊고 편하고 게으르게 겨울잠을 자 둘 겁니다.
2005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라일락 꽃이 새로 산 집 길목에 서서 향기를 날리고 있었습니다.
격자무늬 거실 창에 반해 다른 조건은 따지지 않고 집을 장만했습니다.
아이들과 거실에서 뒹굴며 \"이게 우리 집이다.\" 소리를 치며 마구마구 웃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산에 올라 산을 만났습니다.
산이 거기 있어 내가 스스로 걸어 산 귀퉁이를 잡았습니다.
내 손에 잡힌 산이 있어 살아갈 맛이 생겼습니다.
하나의 이별은 하나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끝은 내리막길일지 모릅니다.
산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니까요.
지금 난 숨을 할딱이며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아픔보다는 기쁨이 많은 산에 오르며
바위틈에 크고 있는 소나무의 끈기를 배우고, 꽃들을 보며 꽃처럼 웃었습니다.
힘들어 주저앉았던 날을 잊고 싶습니다.
눈물을 흘렸던 일들은 잊을 겁니다.
내게 꿈을 준 산 길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앞날의 답답함 보다는 내게 주어진 여유 있는 시간에 감사하겠습니다.
가수들이 단 하나의 히트 곡으로 평생을 먹고 살듯이…….
오늘 강승모라는 가수가 그러더군요.
무정 부르스가 여러분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면 무명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고…….
누군가 내게 장사를 하게 해서 집을 장만하고, 쉬면서 산을 만나지 않았다면
먹고사는데 다쳐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살았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가열이란 가수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노래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이 있어 행복하다고…….
그래서 나도 행복했습니다.
노래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