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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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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와 정령


BY 은하수 2005-12-20

오늘은 조금 풀렸지만 한동안 몹시 추웠다.

뒷 베란다에 세탁기가 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추울수록 고개를 더욱 빳빳이 치켜드는

온 가지를 날카로운 바늘처럼 세우고 서있는

겨울 나무의 씩씩함이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땅 밑의 뿌리들 사이에는

나무의 정령이 집을 짓고 살며

바깥으로 아무도 모르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비밀 안테나를 뻗어

겨울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땅 속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면

그 안테나 끝은 봄이 오는 소식에 귀 기울이느라

온통 빨갛게 달아 오르는 것일 터이다.

 

갑자기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가 생각난다.

 

엄지만큼 키작은 난장이 사람들이

집집마다 마루밑에서

그 집의 주인 몰래 비밀 생활을 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주인 집에서 마루 틈 사이로 흘리는 가재 도구들로 살림을 꾸린다.

아니면 쓸모를 잃고 노는 잉여물건을 슬쩍 가져와

자신들의 생활을 윤기나게 하는데 쓴다.

예를 들면 둥근 실패로 테이블을 삼고

소꼽놀이 그릇과 인형 가구를 호화스런 부엌살림과 가구로 쓰고

마루틈 사이로 떨어진 바늘이나 단추도 유용한 살림살이가 된다.

 

나무 밑에도 그런 정령들이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 밖으로 높이 높이 안테나를 세워

동장군이 호령하고 있는 바깥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도...

전라도의 눈 피해 소식에 동장군 흉을 보고 있을지도...

아님 황교수 소식을 들으며 혀를 차고 있을지도...

가끔 지나는 미풍에 남쪽 나라 이야기까지 전해 들을지도...

 

길을 가다가 이따금

바싹 메마른 나뭇가지에 귀를 대고 

한참동안 귀기울여 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나무 정령들의 비밀한 속삭임을 엿들을 수 있을지도...

 

그리고 여러분...

집안에 간혹 바늘이랄지... 사소한 것들 없어져도

너무 찾지 마세요...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초미니 난장이들이 가져다 유용하게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너무 깔끔 떨면 살기 어렵다며 이사 간대요...

 

이사갈 때 그냥 가겠어요?

뭐라도 가져 가겠지요... 더 귀중한 것을...

 

어려운 이에게 베풀며 살라는 말인지...

잃어버린 것 너무 열심히 찾지 말라는 말인지...

 

암튼 둘다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