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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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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 우리 어머니


BY 아미라 2005-12-15

 

어머니의 생신이다.

내 할일이 쌓여 어머니를 채 회고하지 못하고

하루가 흘러갔다.

 

1]

어느날 친구분들과 하와이로 여행가셨던 어머니가

지팡이를 잡고 귀국하셨다.

그때의 놀란 가슴이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창백한 모습의 어머니

 

초기암을 치료하고 일년 뒤였다.

..

 

2]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차에 태워

시내로 가셨다.

단골의상실에서 옷을 맞춰주셨다.

양장이었다.

학생이 무슨 양장이냐고 싫다니까

어머니 친구분들 모임에 나를 데려가실 거란다.

 

장안에 내로라하는 분들이 다 오셨다.

돌아가며 가곡을 하나씩 부르셨다.

왜 한국인들은 노래를 시킬까.. 의아해하며.

나는 이담에 이런 모임에 내 딸은 데리고 오지 말아야지..결심하며.

학생신분으로 그자리에 눈치없이 앉아있는 건

나 혼자였다.

 

칠성사이다 한잔 앞에 두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이런 경우마다 이 말이 쓰이는 지는 모르겠다)

- 마냥 앉아있는 내가 안되었는 지 몇분이 나를 보고 몇 마디 건네신다.

그게 다였다.

 

3]

우리 학교가 산꼭대기였는 데

그때 한국에는 스쿨버스라는 것이 없어서

어머니가 매일 데려다주셨다.

 

나도 해봐서 알지만 그게 쉬운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금새 지치셔서

그담부터는 집일 봐주시는 아저씨가 나를 데려다 주셨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자꾸 늘어가니까

학교에서 경고조치가 내려졌다

 

자가용 출입금지.

모든 학생들은 산 저 밑에서부터는 걸어올라와야 한다.

 

어머니는 내가 그학교 다니면서 \'살이 쪽\' 빠졌다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여전히 친구들이 놀리는 거구였는데도.

 

4]

일본에 갔다.

어머니가 그야말로 \'바리바리\' 한가방을 싸셨다.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이었다.

 

검소한 나라에서 검소함이 몸에 배이신 할아버지.

국제전화로 당장 어머니를 야단치셨다.

아이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고.

 

꾸중 실컷 듣고 전화바꾼 어머니

- , 그래두 할아버지 모르게 시세이도는 사와아..

귀여운 우리 어머니.

그 바람에 초행길인 도쿄시내를 겁도 없이 헤매고

백화점마다 헤집고 다녔다.

 

내 친구 하나가 우리 어머니같은 어머니를 둔듯한

친구였는 데(?)

그애는 시세이도 화장품이 아니라 대형전기밥솥을

주문받았다.

 

 우리들이 귀국하던 날

신문 끄트머리에 쬐그맣게(천만다행으로)

어린 학생들이 외국에 가서 밥솥이나 사온다고

개탄하는 기사가 났다. 망신.망신

 

어머니가 쏟으신 사랑이 내 안에 있고

어머니의 정성이 지금의 나를 만든줄 알면서도

나는 어머니와는 다른 타입의 어머니가 되어간다.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애틋하고 명랑했슴에도

내 어머니와는 같지 않은 모습의 어머니이고 싶다.

 

옆에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숙제를 하는

딸아이를 보며

강아지처럼 쉬야 못가리고 소파에 카펫에

실례를 하는 아기를 보며

그저 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맛볼 뿐이다.

 

언제나 나를 눈부시게 바라보셨던 어머니를.

언제나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어하셨던 어머니를.

 

..

 

카이로의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카이로에서] 200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