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남매 중 네째이고 외동딸이다.
우리 형제들은 대체로 냉정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그런데 둘째오빠는 좀 예외다. 정이 많고 다혈질이다. 아버지를 산소에 묻던 날, 오빠는 아버지 관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 절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바람에 잠시 삽질이 멈춰지기도 했다. 손님처럼 덤덤하게 서 있던 다른 형제들이 무안할 정도였다. 뭐가 그리 서럽고 아쉬웠던 걸까? 아버지한테 아무 미련도 없었던 나는 그 점이 궁금했다.
오빠는 형제들 중 사고를 제일 많이 쳤다. 학교도 중간에 그만 두었고, 자원해서 군대를 가더니 덜컥 탈영을 하는가 하면, 20대 초반에 겁도 없이 애 아빠가 되었다. 천성이 부지런해서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번번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오빠의 그런 면은 사춘기 때의 내 눈에 똑바로 보이지 않았다. 너무 대책 없고 한심하게만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빠는 나를 많이 아껴줬다. 가끔 호떡을 사 와 내 방에만 살짝 디밀어 주기도 했고, 주머니에 있는 대로 용돈도 주었다. 명절이면 시장에 데려가 옷도 사 주었다. 큰오빠한테는 전혀 받아보지 못한 친절이라 난 매번 얼떨떨하기만 했다.
내가 처음 서울 올라오던 날도 오빠는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와 줬다. 오빠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여동생 혼자 객지에 보내려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여덟이었던 걸 감안하면 필요 이상의 염려였다. 밥이랑 커피까지 든든하게 먹여놓고도 오빠는 매점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간식을 사서 내게 안겨 줬다. 버스에 올라탔는데도 오빠는 가지 않고 창 옆에 계속 서 있었다. 마침내 차가 출발하자 오빠는 손을 흔들었다. 그때 오빠 눈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난 오빠가 지나친 감상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대구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면 오빠는 꼭 배웅을 해 줬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명절 다음날 역에 갔더니 표가 없었다. 앉아서 가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일단 그 표를 끊고 오빠와 나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오빠는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다른 극장에 가서 또 영화를 봤다. 몇 시간을 같이 있었지만 정작 얘기는 별로 나누지 못 했다. 용건 이외의 사소한 대화, 그런 건 우리 몸에 배 있지 않았다. 물론 말이 없어도 오빠의 정을 듬뿍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싹싹한 성격이었다면 그 시간이 더 값졌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서울생활 하는 동안 내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오빠는 쏜살같이 달려와 일을 해결해 줬다. 결혼하고도 한동안 내가 연락이 뜸하면 어느 날 불쑥 찾아오곤 했다. 말 못할 고민이 있는 건 아닌지 오빠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내려갔다. 남편은 처음에 그런 오빠를 이해 못 하다가 지금은 친정식구 중 오빠를 제일 좋아한다.
오빠는 주로 술 마시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하곤 했다. 울먹이는 오빠 목소리를 들으면 덤덤하던 내 기분도 따라서 슬퍼졌다. 너무 일찍 메말라버린 내 마음이 오빠 덕분에 가끔씩 살아나는 것이다. 혈육이란 게 참 신기했다. 통화하다가 내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그날 당장 차를 몰고 올라오기도 했다. 4시간 달려와서 30분만 앉아 있다 간 적도 있다. 나로선 그저 고마운 일이지만, 오빠 하자는 대로 해야 하는 올케 입장에선 짜증도 났을 것이다.
지금 참 안타까운 건 왜 오빠가 나나 남한테 하듯이 언니한테는 애정을 쏟지 못 했을까 하는 점이다. 내 식구니까 맘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아마 아버지한테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웃집 아이 아이스크림은 사 주면서도 내게는 주지 않았다. 그때 한 개 값밖에 없었다면 그건 당연히 딸한테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오빠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에너지를 언니한테 쏟았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지금 침묵하고 있다. 동생이 오빠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다. 동생한테 멋지게만 보이고 싶었을 오빠 마음에 혹시 상처라도 줄까 봐 겁도 난다. 내가 힘들 때면 언제든 달려와 준 오빠였는데, 나는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어서 너무 마음 아프다. 내가 오빠 같은 성격이었다면 앞뒤 안 재고 내키는 대로 이 말 저 말 했겠지만, 워낙 차갑게 다져진 내 성격이 그 모든 걸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술 많이 마시지 말고 힘내라는 기본적인 말조차도 따뜻하게 한 마디 건네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자라면서 훈련받지 못한 감정표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잘 되지 않는다. 오늘은 큰조카가 수능시험 치는 날이다. 혼자 고사장에 데려다 줬을 오빠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너무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