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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우리 사이


BY 하늘사랑 2005-11-10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면 난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오늘은 무얼 해서 먹을까 하면서도 언제 이런 고민 좀 안 해보고 살까 하며 연이어 푸념도 늘어놓아 보지만 냉장고 문을 열어 보며 이것저것 재료를 살펴보면서 내 머릿속엔 어느덧 오늘의 저녁 메뉴들이 열거 되어 지고 있다.


냉동실에 한 덩어리의 쇠고기로 무를 넣고 맑은 쇠고기국을 끓이고, 구운김을 좋아 하는 재석을 위해 김을 굽고 지난주에 담아 놓은 단맛 나는 무김치를 조금 꺼내어 놓고, 어머님이 사오신 코다리로 조림을 해 놓으면 재석이 잘 먹겠지 싶어 어느덧 머릿속에 미소가 가득하다. 보리쌀은 한번 압력솥에서 삶아 놓고 다시 잡곡을 넣어 밥을 하니 어느새 딸그락 거리며 돌아가는 추의 소리가 그저 내 귀에는 즐겁고 명쾌하기만 하다. 고민에 고민을 했지만 어느새 나는 반찬을 아주 잘 하는 요술쟁이가 된 듯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없이도 후딱 여러 가지의 반찬을 짜잔 하고 만들어 버리는 요술쟁이 엄마가 된 것이다. 정말 대견 하다 싶다.

이제 나의 이런 맘들을 남편과 식구들이 잘 먹어 주면 난 더 행복하겠지 싶어 밥상을 닦고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놓아 놓으니 6시 30분이 되어 재석이 도착했다.


그런데 재석의 표정이 시큰 둥 하다.

밥을 풀려고 하니

“난 밥 안 먹는 데에..”

“왜..또” 순간 내 마음이 속상하다. 자기만을 기다리며 음식을 했는데..말이야.

“점심때 먹은게 불편하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국물이라도 먹어 보지”

“됐다.”


아픈 사람임을 알면서도 너무 속상하다. 모든 반찬의 주인이 재석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내가 해 놓은 반찬에 밥 두 그릇은 먹어 주겠지 싶어 기대를 하고 기다린 시간이었는데 그 기대가 무너지니 엄청나게 속이 상했다.


밥상을 물린 후 재석의 표정을 보니 정말 심기가 불편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말도 없이 텔레비전만 뚫어 지게 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또 나에겐 짜증스럽다. 약을 주니 약도 거부를 한다. 등을 두드려 주려고 하니 됐다고 그것도 짜증스러워 한다. 급기야 나의 히스테리가 시작되었다.

조금만 참을 걸 싶었다.


“아니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약도 안 먹으려고 하고 등을 두드려 줄려고 하니 그것도 귀찮다고 사람을 밀어 내고..정말 왜 그래. 나한테 화난거가..”


“아무 말 하지 마라. 내가 아파서 그러지 뭐 다른 뜻은 없다.”


더 이상 말을 하면 더 큰 싸움이 될 것 같아 얼른 아이들을 씻기고 나 역시 샤워를 하러 들어가 버린다. 너무 신경질이 나서 화장실에 앉아 10여분을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도려 화를 내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싶었다. 아파서 저러는 사람을 붙잡고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재석이 아프면 난 정말 심심하다. 하루 종일 그래도 기다리는 사람은 재석이 뿐인데 재석이 아프다고 말이 없으면 난 정말 심심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래서 화가 난 것이겠지.

에구 철없는 마누라.

그리고 열심히 한 반찬들을 재석이 맛있게 먹어 주길 바랬는데 어른들이 맛나게 드시는 건 아랑곳 하지 않고 재석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도 속이 상했나 보다.

노력의 댓가를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

아직도 철딱선이 선희  이다.


일찍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미경이는 벌써 엄마 아빠의 분위기가 안 좋음을 예감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채 모든 척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 모습이 또 다른 서글픈 아픔으로 남는다. 등을 돌리고 자는 우리들. 아이들을 중간에 뉘인체 우린 서로의 등을 보이며 참을 청한다.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지만 밤새 그리 깊고 편한 잠을 자지는 못한 듯 싶다. 새벽에 일어나 재석을 보내고 잠시 누운 참에 재석의 문자메세지가 온다.


“너무 힘들어서 집에 오면 그냥 좀 쉬고 싶은데...”


그래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에서만이라도 왕이 되고 싶은 재석의 마음을 이해한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 오고 나의 모습이 자기를 반겨 줄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주부로 살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정말 잘 알면서도 난 또 다시 내 마음에 이기지 못해 재석의 마음을 후벼 파고 말았다. 아무리 싸워도 등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다시 등을 돌리며 잠을 청했다. 그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지만 내 인내심이 어제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항상 사소하게 싸울 때는 내가 잘 난 것 같아도 돌아서면 내 실수를 나도 인정해 버리고 말아 버리니 언제나 난 패배자가 되고 말아 버린다. 뻔히 알면서 조금만 심술 버릴걸 하며 속좁은 나를 원망한다. 그래도 말은 재석이 먼저 걸어오니 신혼 초에 비하면 정말 통쾌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너무 재석에 대한 기다림이 간절한데서 온 결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부부는 정말 유치찬란한 연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