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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다시 만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그리고 싸늘한 영안실...
1차로 친구들과 술한잔 한다던 사람이 빗길에 음주운전을 한 친구와 함께
그렇게 사고를 당하고 너무도 무책임하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아무 말 없이 영정사진 속으로 ..
나의 꿈... 나의 미래... 모두 쥐고 훌훌 가버렸다.
오빠를 아들처럼 좋아하셨던 우리 부모님은 사윗감이 죽은줄도 모른채,
더불어 당신들 딸의 영혼까지 가지고 가버린줄도 모른 채,
아들같은 넘의 아들이 죽었다며 슬퍼하셨다.
세상의 따뜻함은 내게 그 온기를 나눠주지 않았다.
또다시 빛을 잃은 내 삶은 살아갈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소주에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끊어진 필름처럼 어둠속에서 약간의 불빛들만 기억난다.
눈을 떴을 때 소식을 듣고 오신 부모님의 그 서러운 눈물이 눈에서, 가슴에서
한없이 흘러내렸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아무도 오빠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도,
그 이름도,
함께 하숙했던 이들도,
그 동네마저도 입에 담지 않는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지금도 가끔 오빠가 떠난 그 병원을 지나칠때가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말릴 수가 없다. 쳐다보지 않으려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나의 숨소리는 박자를 놓쳐버리고 만다.
세월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세상속으로 스며들었다.
웃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제법 큰 보험회사에 취업도 했다. 그런대로 키크고 예쁘장한 신입사원 주위에는
발정난 사내들이 언제나 있었다.
살다가 생각나면 실컷 그리워하며 울고 그러다 잠시 잊어버리고 웃고 술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렇게 막 살았다.
남자도 사귀어 봤지만 내 가슴에 자리잡은 사랑을 밀쳐내지는 못했다.
그 누구도...
그러다 설 명절을 보낸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200만원짜리 허름한 한옥에 세들어 살던 나는 아침이 되었지만 눈을 뜰수가 없었다.
연탄가스가 스며들었다.
눈은 떴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함도 칠 수 없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 이렇게 가면 되는구나! 오빠한테 가면 되는구나!'
행복했다. 정말 잘됐다 싶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그리 짧지 않은 명줄을 타고 났나 보다.
이렇게 살아 있으니...
한참 동창찾는 사이트가 유행할때 난 오빠의 모교에 들어가서 오빠의 흔적을 찾아봤다.
혹시나 오빠 이름이 나올까, 오빠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너무 미련한걸까?
가끔 그렇게 그리움이 고개를 들이밀때면 난 지금도 그곳에 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