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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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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여행 긴 여운


BY 토 리 2005-10-22

 “나 도착했어. 너 어디 있니?”

“길 건너 한번 봐.”

귀에서 휴대폰이 떨어지기도 전에 화사한 파라솔을 쓰고 있는 친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을 하고 말았다.

아풀싸! 몇걸음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나를 비웃는가 싶더니, 파란색 교통순찰차까지 대기중이 아닌가. 모처럼 여행에 찬물이 뿌려질까 떨린 가슴을 안고 서둘러 친구 차에 올라탔다.

“오늘 날씨 정말 좋다. ‘나비’가 훑고 지나가더니, 하늘 좀 봐 너무 파랗지?”

모처럼 장거리 여행을 축하하듯 청명한 늦여름 날씨가 선들선들 시원한 바람과 어울러진 상쾌한 날씨였다.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은채 친구는 익숙된 길을 따라 운전을 시작했다.

끊이지 않고 주고 받는 이야기 틈에 이정표를 발견하고 난 행선지를 감 잡을 수 있었다.


아침일찍 가족들이 제자리를 찾아 출타를 한 후 시외버스터미널에 전화를 해서 유성행 차시간을 알아봤다. 9시 10분 다음차는 25분 후에 있다는데 얼른 가고 싶은 맘에 청소도 미룬채 단장을 한 후 서둘러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서 양방향 개찰구 중 맘 내킨 곳으로 향했다. 거스름돈 챙기느라 매표창구에서 승차홈을 물어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몇 군데 행선지를 읽다 보니 출발시간이 조급했다. 푸른 기사복을 입은 아저씨에게 홈을 물어보니 반대쪽이란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을 해 본 기억이 감감하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조금 익숙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면 촌스러울 수 밖에 없다 생각하고 뛰어서 반대편 개찰구로 가서 유성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실 정작 가고 싶은 곳은 다른 곳이였다.

모두들 들떠 떠나는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두달을 결심하면서 장거리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전날 오후까지도 망설이다 언제든지 놀러오라던 친구에게 전갈을 보냈다.

“나 내일 놀러갈게. 한국민속촌 가봤니 우리 거기 갈까?”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었다. 그 곳은 7월달에 갔다 왔다는 친구 사정을 감안해서 목적지는 친구에게 일임을 했던 것이다.

작년 가을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끼리 부부동반해서 계룡산 단풍구경을 했었다.

그때 친구부부는 갑사가 더 단풍이 좋고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그 곳으로 가자고 했었다.

교통 지옥을 방불케하는 단풍놀이 행렬에 밀려 갑사 진입로를 지나치고 결국 계룡산 동학사를 갔던 기억이 있어서 아마도 친구는 갑사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포장도로가 좁아지면서 나무 숲 터널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오래 살았으면 양쪽에 심어진 나무들이 하늘에서 만나 터널을 이룰 수 있는 걸까!

맘 같아서는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걸어서 지나가고 싶었다. 마치 부지런한 손길이 막 물 청소를 마친 듯 깔끔하게 늘어진 길을 달려 갑사 입구에 도착했다.

정오가 가까워졌음인지 작열하는 태양이 따끔하게 내리쬐어서 준비한 양산을 꺼내 들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금새 울창한 숲길이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입장료를 내면서 산보를 하시는 모양이다?”

인적이 드문 산사로 오르는 길에 등산 차림으로 내려오시는 어르신들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입구에서 매표소 직원이 ‘경로우대증 보여 주세요?’하던 생각이 났다.

순간 경로우대증 제도가 잘 만들어졌다는 공감을 하게되었다.


“넌 요즘 어떠니?”

30여분을 운전하면서 재밌는 이야기만 하던 친구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조용한 숲길에 들어 서면서 내게 이야기 할 기회를 넘겨버린다.

“등받이 있는 의자가 좋겠다. 앉았다 올라 갈까?”

쭉쭉 벋은 나무 숲 아래 준비된 벤취는 우리들에게 편안한 휴식시간을 마련하고 있어 구경하는 것 보다 먼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혼자 장거리여행을 하는데는 그만한 목적이 있음을 눈치 빠른 친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야기 보따리의 양을 예측할 수 없음은 화자나 청자나 마찬가지다.

한참 넋두리를 펼치다 보니 엉덩이도 아파오고 시장기도 느껴졌다. 시간을 확인 해 보니 무려 두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보다 더 급한 볼 일을 해결하기 위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나무그늘에 가려진 햇빛으로 곧 해질무렵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 들며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갑사에 도착 되었다.

“우리 남편이 처음 데이트 할 때 데려 온 곳이다.”

곳곳에 여느 유명한 사찰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듯한 경내를 둘러보는 동안 친구는 추억을 더듬어 내노았다. 친구는 칠년전쯤 재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니가 말릴때 들었어야 했는데......”

유난히 내 친구 중에 시련을 많이 겪고 아픔만큼 성숙한 예쁜 친구라서 대화를 하다 보면 인생 선배처럼 느껴지곤 한다.

금값이라던 나이 스물셋에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사랑을 해 보지 못한 나는 친구가 결혼을 결심한 것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어른들이 보는 시각으로 조건을 따지면서 강력하게 결혼까지는 하지 말라고 말렸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당돌한 친구였다.

“야, 내가 생일 생시를 잘 못 알았더라.”

아침 일찍 출근을 하자마자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 친구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을 했었다. 친구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조건을 내 걸었었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사주가 좋다면 운명으로 받아 들이고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우리는 노송동 전주역 주변 점집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신통한 점집 아저씨 절대 결혼은 안된다는 것이다.

난 승리자가 되고 친구는 패배자가 되어 약속을 실천하기로 하고 헤어진 후 하룻밤을 지낸 친구는 그 사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궁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없이 그저 말려대던 내 말류를 물리치고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끝내 친구는 결혼생활을 실패하는 불행을 겪고 말았다.

이혼의 절차를 밟지도 못한채 잠적했던 친구는 5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 친구는 ‘니가 말릴때 들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유난히 안목이 낮고 좁은편인 내가 친구에게 지대한 공을 세운 추억이 있어서 친구는 지금도 늘 내 곁을 사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밝은 표정만큼 너그러운 맘을 가지고 내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다.

갑사를 둘러보고 주워 담으면 몇 말쯤 될 말 꾸러미를 깔아두고 산사를 내려왔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버린 오후 두시경 점심을 먹기위해 “꽃피는 산골”로 들어갔다.


“나의 살던 고향

                -이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정문에 송이버섯 모양으로 된 돌 기둥에 전문을 생겨놓아 호기심을 안기더니, 건축물도 버섯 모양에 잔디를 깔아 놓고 돌로 징검다리를 놔 손님을 반기며, 분위기를 살린 고향집 같은 음식점이였는데 실내는 세련된 고급 레스토랑이였다.

우리는 점심값을 과하게 지출하고 대신 세시간을 머물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갑사에 널어 둔 이야기들 덕분에 무겁게 조여오던 알수 없는 답답함이 한동안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