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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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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이야기


BY 은하수 2005-10-19

몇일전 아울렛에 뭘 사러 갔다가

그때서야 보름전에 수리 맡겼던 목걸이줄이 생각났다.

찾아가라는 문자도 받았는데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 금은방을 찾기도 힘들고 백화점에 맡기는건 또 왠지 부담스러워

그저 만만한 중저가 물건만을 파는 아울렛의 악세서리 코너에 수리를 맡겼었다.

더구나 목걸이줄이 끊어졌을 뿐인 가벼운 부상이라

체인의 고리부분만 땜질하면 끝날 간단한 작업일 것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부탁했고 가격도 삼천원이라 하여 쾌재를 불렀다.

 

도도롬하면서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의 체인으로 연결된 개운죽 무늬의

넉넉한 길이의 18K 목걸이줄이었다. 그것은

한쪽 윗방향이 열린 링 형태에 큐빅 박힌 사과꼭지가 세로로 가로질러 줄을 꿰게 되는

약간 큼직한 펜던트와 함께 작년 가을 이후 지난 초여름까지 거의 줄곧

내 목에 매달려 다니곤 하였었다.

펜던트는 안목 없는 내 보기에도(모악세서리회사 디자인 카피였을 게다) 꽤 참신한 디자인으로

나이들면서 굵고 존재감 있는 걸 좋아하게 된 나의 취향을 적당히 만족시켜주는 것이었고,

그 예쁜 걸 매달고 목에 드리워졌던 목걸이줄도 마찬가지여서

마디 있는 개운죽 줄기가 연상되는 도톰한 굵기에다가

블라우스나 폴라 스웨터 위에 걸어도 보기 좋게 V(브이)자를 그리며

여유로이 늘어질만큼 넉넉한 길이를 하고 있었기에 그것 자체만 해도 

짭잘한 소품이라 생각하고 거울 속의 나를 쳐다보며 흡족해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금도 닳아 없어지는 것인지 어느날

체인의 가느다란 고리 부분이 끊어져 명이 다한 줄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끊어진 줄과 펜던트를 비닐에 고이 싸서 동전지갑에 모시고 다니다가

여름을 넘기고 가을의 한복판에 접어든 즈음에야 수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발동이 걸렸다.

아울렛에 수리를 맡기고도 잊고 지내다가 찾기로 한 날에서 열흘이나 지나 찾으러 갔다.


드디어 악세서리 코너에서 수리 맡겼던 목걸이줄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내가 기억하던 목걸이줄보다 훨씬 짧아 보이고

굵기도 영 더 가느다란 것 같은게 예전 내 목걸이줄 같지가 않았다.

난 자꾸 내 것이 아니라고 내 걸 달라고 우겼고

점원은 맞다고 기억이 틀린 것 아니냐고 우겼다.

난 줄이 영 짧아지고 가늘어져 예전처럼 옷 위에다가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떼를 썼고

점원은 아직도 충분히 옷 위에 할 수 있다고 어거지를 썼다.

내가 맡겼던 것과는 영 달라 보였지만 가지고 온 수선증에는

18K 목걸이라고만 쓰여져 있을뿐 내 목걸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얘기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 나만의 주관적인 억지주장일 뿐

점원들에겐 씨알도 먹힐 수 없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트집잡는 소리였던 것이었다.

점원은 이것은 분명 18K이며 매장에서 파는 물건은 14K 제품들뿐이니

바꿔치기의 가능성이 없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난 딴 건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맡겼던 물건과 다르니 내 물건을 달라...

그럴리 없다... 우리는 모른다... 정 그러면 수리 공장에 전화해 보는 수 밖엔 없다...

점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난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이런 경우를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나 보다.

그렇게 아니다 기다 옥신각신 20여분을 다투다가

"물건은 가져가겠는데 수리비는 못 줘."

하고 악을 쓰곤 목걸이를 나꿔채어 획 돌아서 오는데 점원들도

얼이 빠졌는지 아니면 다행이라 여겼는지 가만히 보고 서있다.


돌아와서 의문의 목걸이를 가만가만 요리조리 뜯어 보았다.

내가 여름동안 오래 못 보아서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만약 그렇다면 난 트집장이에다 생떼같은 돈을 떼먹은 악덕손님 목록에 오를 것이다.

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오랜만에 본 탓으로 인한 착각이라고 쳐도

(땜빵 자국도 있었다. ㅠ.ㅠ) 아무리 봐도 짧아진 길이는 설명이 안되었다.

분명히 길이가 넉넉해서 답답한 느낌이 없었는데

이것은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 영 그렇다.

 

내가 이렇게 목걸이 길이에 신경을 쓰고 예민한 이유는 순전히 내 얼굴형 때문이리라.

갸름한 달걀형이라면 개목걸이면 어떻고 얼굴 밑에 간신히 내려오면 또 어떠랴.

국화빵같이 동그란(크기도 요만하다.ㅋㅋ) 얼굴 바로 밑에 걸려 있는 것 같은

그래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링 펜던트를 노려보며 이대로

그냥 참고 넘어가기엔 기분이 너무 나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삼천원으로... 안되지...


목걸이를 가지고 다시 갔다.

"나 목걸이 이대로는 기분 나빠서 못하겠어요. 해결 안해 주면 고객만족센터에 얘길 하던가..."

"이그, 손님. 저희도 넘 속 상해요. 돈도 못 받고, 욕만 먹고,

수리하는 분은 그러려면 맡기지 말라구 그러고... 자기도 장인 정신이 있대요."

"정 그러시면 같이 수리하는 데 직접 가보시겠어요? 여기서 가까와요."

"목걸이 길이가 보통 42cm인데 손님 것은 40cm이니 조금 짧긴 하네요."

거기까지 가서 같이 안갈 수 없었다. 정말로 길 하나 건너면 가는 가까운 건물에 있었다.

공장이라 얘기했는데 상가 건물 후미진 곳에 위치한 두세평 남짓한 조그만 창고같은 방이었다.

정말 작고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공장 아니 공방이었다. 거기에

역시 왜소한 체격에 안경을 낀 늙스구레한 아저씨가 작은 붓털 모양의

새파란 가스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금붙이들을 때우고 있었다.

옆에서 수리를 의뢰한 듯한 젊은 아저씨가 지켜 보고 앉아 있었다.


점원 "아저씨, 이 손님이 하도 그러셔서 모시고 왔어요."

나 "아저씨, 제가 이걸 남편한테 결혼기념일 선물로(사실은 생일 선물이었다.) 받은건데..."

아저씨 "결혼 선물이건 생일 선물이건 간에 난 몰라요. 난 맡긴대로 수리해 줬어.

내가 그거 조금 잘라서 어디 쓰겠어."

허긴 잠깐이지만 눈을 씻고 둘러봐도 수리할 물건 외에는 금붙이는 커녕 금가루도

눈에 띄지 않는 조그만 가스불이 달린 책상과 의자 몇개만 달랑 놓인 침침한 창고방이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질 않는 그 미묘한 느낌의 차이를 가지고 더이상 실랑이 벌일 재간이 없었다.

어떤 증거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줄 알았더라면 목걸이 길이라도 재서 인수증에 적어 놨을 텐데 말이다.

더구나 그늘진 골방에서 새파란 가스불을 들여다보며 종일 일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내 목걸이 3cm 잘라 드셨지요 하고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쯤에서 대충 얼버무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체념하고

나올 수 밖에는 별 뾰죽한 수가 없었다.


지금 목걸이를 하고 거울을 또 바라본다.

옛날처럼 쉐타 위에 걸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지금처럼 맨 목에 하기에는

눈에 잘 띄게 올라 붙어서 오히려 좋아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짧아졌다고 느끼는 것도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길이를 놓고서 나혼자서 깨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오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다만, 다음부터는 혹시 목걸이 맡길 일이 있다면 아님 그와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객관적인 증거를 삼을 만한 측정을 해서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믿을 만한 곳에 반드시 맡기거나 곁에 붙어서 지켜 보고 있거나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백프로 믿어야지만 서로 피곤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생각도 하게 된다.


아뭏든 당분간은 다른 여인네들의 목걸이 길이가 어디쯤에 와 있나 그것만 신경쓰며

목걸이만 쳐다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