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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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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먹고 싶다.


BY 선물 2005-10-18

단풍이 한창이라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이제  시작이다.

발그레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참 곱다.

이제 곧 불을  뿜듯 열정적인 색깔을 뽐내겠지.

지난 여름 초록도 좋았다.

지금 울긋불긋한 저 자연의 색도 정말 좋다.

눈은 호사를 한다. 저 혼자...

 

나는 가을을 저녁에 탄다.

뉘엿뉘엿 해질 무렵  한집 두집 불 켜지는 시각.

그런 때 괜히 몸살이 난다.

 

가을이면 자꾸 굴뚝이 생각난다.

굴뚝 있는 집에서 살긴 살았을 텐데 굴뚝에 대한 기억은 우리 집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 그리고 초가집.

아슴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엔 도란도란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그리고 피어 오르는 굴뚝 연기.

 

정말 그런 풍경을 많이 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가을 저녁이면 자꾸 그런 풍경이 떠오른다.

 

나는 추웠던가...

산동네 판자촌의 불빛들을 멀리서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 불빛만 보면 그냥 눈물이 맺혔다.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은 저 혼자 흘렀다.

 

그럴 때도 불빛 흘러 나오는 집안에는 어김 없이 도란거리며 모여 앉은 가족들이 그려진다.

밥상에 빙 둘러 앉아서 맛나게 밥을 먹겠지.

분명히 저들은 김치찌개를 먹고 있을 거야.

 

입엔 침이 고이고 눈엔 눈물이 흐르고...

참 안 어울리는 반응들이 내 신체 각각의 곳에서  절로 일어난다.

 

남들이 보면 가족이 없는 줄 알겠다.

남들이 보면 굶주린 사람인 줄 알겠다.

내게도 따뜻한 가족들이 있고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해 주는 예쁜 엄마가 있는데...

그런데도 불빛을 보면 부럽고 나는 허기졌다.

 

옛날엔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불빛도 굴뚝도 보지를 못한다.

그래서 가을저녁에도 그닥 가을을 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런 저녁에 아주 간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가 간절하다.

지난 번에 담았던 김치는 익은 김치 좋아하는 남편의 몫이고 새로 담은 김치는 찌개를 끓이기엔 너무 날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니 참 서글프다.

어떤 면에서는 웃긴 이야기 같지만  사실 하나도 웃긴 이야기가 아니다.

 

호호 불며 찌개 먹으며 술 한잔 할 수 있음 좋겠는데...

한바탕 펑펑 울며 가을을 타도 좋겠는데...

찌개도 없고 술도 먹을 수 없고 펑펑 울 눈물도 말랐고...

 

울 수 있는 가을이 좋았다.

그 때가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