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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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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BY 은하수 2005-10-11

엄마...

오늘 날씨 참 좋지요?

이렇게 좋은 날에 날 낳아 주시고 곱게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작 남들은 생일 축하한다고 인사도 하고 하는데

낳아준 엄마에게서는 전화 한 통 없으시네요.

아침에 잠도 다 못 깨우고 시엄니의 축하 전화를 받았지요.

냉정한 엄마...

날 낳으실 때 그리 힘드셨수? 날 키우실 때 그리 속이 썩으셨수?

자식을 낳고 키우시기가 그리 힘에 부치셨수?

내가 자식을 낳아 키워 보니

그 놈이 자기 생일을 축하해 달라 당당히 요구할 때

속으로 " 이넘아, 니가 한 게 뭐가 있는데 축하를 받냐? 낳느라 수고한 내가

미역국도 얻어먹고 치사를 들어야지."

하면서도 겉으론 웃음을 띠며 "그럼, 그럼, 축하해야지." 하는 저를 봅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심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외감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

생일 축하란 그러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식 생일도 잊어 버릴 만큼 바쁘게 쓸쓸하지 않게

잘 살아 주시어 고마와요.

그간의 질곡도 모진 세월도 다 삭히시고

슬픔도 다 잊으시고

건강하게만 살아 주세요.

자식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해도 쉽게 전화도 걸 수 없는

엄마

그렇게 아프게 해 드려서

그렇게 지치게 해 드려서

자식으로서 미안해요.

제 탓이 아니라 해도 제가 대신 미안해요.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하는 말을 이제는 알 것 같지만

살아있는 딸이

죽은 아들을 못 이긴다는 걸

엄마에게서 또 배웁니다.

엄마

오늘같은 날 내가 먼저 전화해서

부모님 곁에서 좀더 투정하고 싶었을 스물한살

어린 나이에 나 낳구 키우느라 욕보셨어요.

하고 인사하고 싶지만

전화로 다 할 수 없는 말

여기다 쏟아내어 봅니다.

엄마

남들은 가을에 쓸쓸하다 허전하다 하는데

나는 왠지 가을만 되면 마음이 빨갛게 익어요.

안 먹어도 배부른듯이 풍성해지니 참 이상하지요.

엄마가 날 낳고 기뻐하며 지극정성 돌봐주던

볕 기막히게 좋았던 어느 가을날 오후가

뇌리속 어딘가에 남아 있어 그런가 봅니다.

엄마

부디 평안히 사세요.

이 가을처럼 풍성하게 기쁘게 사세요.

건강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