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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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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런 나와...


BY 개망초꽃 2005-10-03

내 마음은 항상 흔들리는 나뭇잎 같습니다.

나뭇잎이 비를 닮아 땅으로 떨어집니다.

사람 마음이 변덕스러운 건 타고난 태생이겠지요.

사람으로 태어난 태생.

나무를 보면서 나도 나무되어 곧게 말없이 살고 싶어집니다.

나무에 비가 내리고 비가 떨어집니다.

인생도 하루가 떨어지고 나뭇잎도 하루만큼 가을이 떨어집니다.

떨어져 내리는 그 떨어짐 속에 다시 내일이 오겠지요.

**

그저께부터 비가 쉴틈없이 내렸다.

어제도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아직도 창을 두들이고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아침을 서둘렀다.

우산을 챙겨들면서 오후엔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서

하얀 모자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좋은 생각 책 한 권과 여행가면서 먹을 방울토마토도 갈색 가방 속에 넣었다.


춘천으로 가는 길은 비가 내려 물안개는 산허리를 잡고 있다.

가을은 벚나무 잎에 안개처럼 스며들어 가을임을 실감나게 했고,

뚝방길에 들국화는 빗물에 머리를 감고 있었다.


양평으로 진입하는 길가 화원 앞엔 국화꽃이 즐비했다.

“ 나... 저 꽃 사고 싶다.”

차를 세워 보라색 들국화 앞에 서성거렸더니 주인아줌마가 뽀르르 달려 나왔다.

“야생화에요. 꽃도 오랫동안 피고요, 꺾꽂이해서 화단에 심으면 번식력도 대단해요.”

나는 야생국화 두 분을 고르며 꽃을 고르는 행복감에 잠시 빠져본다.

작년에도 매장 앞에 놓아둘 국화를 고르며 고단함 가운데 잡히지 않는 약한 행복을 느꼈는데

올 해 국화를 고르는 행복은 작년과 판이하게 달랐다.

국화색도 작년보다 진한 보라색이다.

차에 실으면서  꽃을 실었다기 보다는 색다른 가을을 실었다.


우린 춘천 길로 접어들면서 자신만의 과거로 과거로 달려가고 있었다.

“젊었을 때 혼자서 경춘선을 타고 춘천까지 왔다가 춘천에서 다시 서울로 왔었어.”

나는 턱을 괴고 강 건너 기찻길에서 젊은 날의 나를 찾아보았다.

겁보였던 내가 혼자서 경춘선을 탈 수 있었던 용기는 춘천은 외할머니가 살고 계셔서

여러번 춘천행 기차를 탄 경험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친한 친구가 춘천에서 대학을  다녀서 한 달 동안 춘천에 머문 적이 있었어.

그 때 다방에서 이외수를 만났지.“

친구는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않았지만 친구에게 춘천은

바람에 휘둘려 치던 질풍노도의 시기였나보다.


비는 그쳤다가 내리고, 변덕스런 비는 사람을 닮아 그침과 내림을 반복했다.

강가 자연 속에서 한가하게 살고 있는 오리 11마리를 보았다.
“사람도 저렇게 살아야하는데..”

정열적으로 피어 난 파초꽃을 보고 친구는 꽃을 좋아하는 내게 일러주었다.

“파초 뿌리는 가을에 캐서 겨울동안 상자 속에 보관했다가 봄에 다시 심어야 된데”

“아유~~ 귀찮아라. 난 파초 안심을 텨”

친구가 나보고 파초 심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단번에 귀찮아 했다.


우린 느리게 갔다.

빨리 서둘러 목적지를 가는 것보다는 가는 동안의 여유와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린 얘기를 많이 했다.

창창했던 젊은 시절을, 늙어가는 나무를, 들에 마구 핀 꽃을, 같이 나이 먹어 감을 공유했다.

우린 얘기만큼 웃었다.

나이 먹어갈수록 기가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어린 적엔 발에 붙어 있다가 무릎에 기어 올라오다가 가운데로 몰렸다가

우리 나이쯤 되면 입으로 집중됐다가 머리로 올라가고 그 다음에 머리를 돌아 내려가면

명이 다하고 그래서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거란다.

우린 입으로 기가 짝 달라붙어서 실없는 말을 하면서 실실 웃었다.


내가 청평사로 가자고 했다.

"배타고 가는데, 되게 좋아."  " 그래? 그렇게 좋느냐?"

"아..그렇다니깐."  " 그래 가서 배를 타자고... "

구운 옥수수를 사 가지고 소양강 선착장으로 느리게 갔다.

우린 느리게 늘쩡거리고 있는데 안내하는 사람들은

소양강 유람선이 막차라고 바빠 죽겠다고 소리를 질러댄다.

청평사 가는 배를 물어보니 그 배는 닻을 내렸단다.

우린 느려도 너무 느리게 낮 시간을 강가에 흘려 보냈나보다.

아쉽지만 청평사는 놔 두고 소양강 댐을 내려다보면서 과일과 함께 옥수수를 먹었다.

먹으면서 바라다보는 한포기 풀꽃에게도 아름다움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작고 보잘것 없는 대상에 매료가 되고 행복을 건지곤 한다.

**

오늘, 화원에서 산 야생국화 분을 샤워기로 깨끗이 닦았습니다.

앞 베란다에 양 옆으로 화분을 하나씩 놓았습니다.

보라색 불길이 집을 환하게 밝혀 줍니다.

가을 들판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는 떨어지는 빗물 속에 변덕스런 나를 무심하게 떨어뜨렸는데,

오늘은 꽃과 함께 변덕맞은 나를 열정적으로 태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