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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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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찬가


BY 선물 2005-09-30

한 여자가 웃으며 걷고 있다. 마주 향한 얼굴이라 잠시 당황한다. 나와 마주한 웃음이지만 나를 향한 웃음은 아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그녀의 웃음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즐거운 일이 있기에 저렇게 길을 걸으면서도 활짝 웃고 있는 것일까. 물론 웃는 모습은 싫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들이 많은 세상에 웃음은 오히려 신선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우리는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녀도, 그녀의 웃음도 금방 잊었다.

길에서 웃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되듯 우는 사람도 가끔 만난다. 그러나 웃음과는 달리 눈물은 그렇게 쉽게 스쳐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내내 마음의 발을 붙든다. 나와 눈빛 한번 맞추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로 이끌려간다. 눈물에게로…….

한때, 나도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참으려 애쓸 수도 없을 만큼 속수무책으로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머리가 그만두라고 명령해도 가슴은 듣지 못했다. 먹먹한 슬픔에 가슴은 귀를 먹었다. 빛을 잃었다. 슬픔은 눈물을 타고 흘러 내렸지만 슬픔의 양은 결코 줄지 않았다. 눈물 따라 흘러가질 않았다.

고통은 참으로 아팠다. 고통 앞에서 제대로 맞서 보지도 못한 채 꺾일 수 있음을 그 때 알았다. 그러나 홀로 내쳐진 것은 아니었다. 절망의 끝에 가보니 내미는 손은 참으로 많았다. 신앙인이기에 주님의 손을 먼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의 인정의 손을 느낄 수 있었다. 주님의 손은 든든했고 인정의 손은 따스했다. 덥석 손을 붙들었다. 그렇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던 상황에서 나는 내미는 손들의 힘으로 인해 간신히 빛을 찾았다.
나는 고통과 맞서지 않고 순명했다. 그것이 나를 평화롭게 해주었다. 절망은 바닥이다. 바닥에 엎드려 고통과 마주 싸우는 대신 벌렁 드러누워 온몸을 고통에 맡겼다. 그리고 고통과 하나가 되었다. 팔 벌리고 껴안을 듯 누운 자세에서 나는 캄캄한 바닥 대신 눈부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은 내게로 왔고 그것은 평화였다.

고통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그 엄청난 종류의 고통 중 어떤 것이 가장 아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정답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깨닫게 된 것은 있다. 가장 아픈 고통, 그것은 바로 자신이 겪는 고통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아프게 겪어 본 사람은 그 내용이 다르다 할지라도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힘을 갖게 된다. 또한 고통이 주는 선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고통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대단한 능력을 선물한다.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넉넉한 지혜를 준다. 나는 고통을 통해 그렇게 큰 은혜를 경험했다. 다만 다시 그런 고통을 겪으라고 한다면 그것만큼은 피하게 해 달라고 엎드려 빌고 싶다. 욕심 부리지 않고 살겠으니 부디 그런 아픔을 겪지 않게 해 주십사 빌고 또 빌고 싶은 맘이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나는 슬픔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고 말 뿐이지만 마음은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눈물을 닦고 슬픔을 어루만진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 말 없이 그저 손을 꼭 잡아주고 싶다. 울지 마세요. 슬퍼마세요. 그 눈물이 당신을 강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줄 것입니다. 손의 온기로 그렇게 전하고 싶다. 더 할 수만 있다면 한번 꼭 껴안고도 싶다. 고통 중에 있을 때 나는 참으로 외로웠기 때문이다. 온기가 고팠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고통으로 인해 배웠음을 지금 지쳐 누더기 가슴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것이 지푸라기 희망은 아니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