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부산에서 7째 이모께서 이모부와 함께 호주여행을 온다는
것이다.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도 못하여 일단 도착시간에 맞추어
공항엘 나가기로 하였다.
입을 다물수가 없이 계속 큰 웃음짓게 하던 거대한 튜울립 축제장,
건너편엔 높다랗게 치속는 분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가로 이미 꽃지고
잎이 솟아난 여느때 보던 벗꽃과는 다른 내가 어렸을때 눈처럼 맞고
지나다녔던 진해 벗꽃장의 벗꽃이 이제 막 물이 올라 늘어지기 시작한
수양버들을 뒤로하고 하얗게 피어있었다.
단 몇그루의 벗나무들이 적은 공간을 하얗게 메우고 있었다.
“진해의 벗꽃이야 정말 진해의 벗꽃과 똑같아”
봄의 꽃으로 우리집에 있는 벗꽃과 길에 피는 벗꽃들은 나의 가슴에
웅으리고 있는 그것과는 달랐는데.
정말 진해의 벗꽃장에 피던 그 벗꽃이였다.
“정말 똑같아” “이것이 진해의 벗꽃이야”를 계속 외치며 꽃 사이를 뛰어 다녔다.
꽃잎사이로 날아다니는 벌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밤새 벗꽃과 색색의 튜울립들이 번갈아 생각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였고 혹시나 아침에 깨지 못하면 엄마와 아버지 두분만 조용히 공항으로 나가버리지 않을까 싶어 자꾸만 잠이 깨이곤 하였다.
거의 정확한 시간에 비행기가 도착하였다.
엄마도 서울 다녀오신지 20년이 되셨으니 혹시나 못알아 볼세라 가장 최근에 만난적이 있는 나의 책임이 막중 하다 하면서 따라 나온것이다.
엄마형제는 10인데 8째까지 딸이고 9째 아들. 그리고 10째가 딸이였다.
몇년전에 5째 이모내외분이 오셔서 한두달 계시다 가시고 두번째로 7째이모내외분이 이모부 동생이 모은 단체관광에 갑자기 누가 못 오시게되어
대신 오시게 되셨다했다.
“이모” 부르긴 내가 먼저 불렀는데 나보다 먼저 엄마를 알아보시고
뛰어오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아보시지 못하셨다.
“몇 년만이지예?”.
“내가 22살때 마지막 보았으니 지금 내가 64살이니 야, 몇년만이냐?”
물으신다. 42년. 처음으로 대면하시는 아버지와 이모부.
남북한 이산가족도 아닐진대 이게 왠말이람.
가슴이 찡하니 아려왔다.
참으로 많이 흘려버린 세월이 흘렸다.
전에는 나는 아이고 이모들은 어른같더니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비슷하여져 버렸다.
오히려 가꾸고 사시는 한국 사람들은 젊음을 잃지 않고..
공항 한 사이드에 다른 그룹들로 오신 여행객들이 모여 안내자의 말대로
척척 움직이고 있었다. 가방을 열고 옷과 신발을 바꾸면서 “여행시작...
이 넓다란 호주관광이 2박 3일.
아이들 수학여행도 아니고 이 먼곳까지 비행기를 타고와 고작 2박 3일이라니. 적어도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수도는 들려 보아야 하지 않는가.
비용 엮시도 서울왕복비행기 값으로 호주, 뉴우질랜드 남섬, 북섬 관광을 다한다니 그도 놀랠 놀자다.
야경을 구경 시킨다고 2대의 차에 이모내외 그리고 동생내외분을 모시고
시내를 돌았으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나름대로 좋은곳을 돌아왔지만 짙은 먹구름으로 칠흙같은 덥힌 어두운 공간
어제 하루 멈추었던 빗발은 날리우고. 보인것이 뭐가 있으랴.
그래도 먼곳에서 오셨다고 우리 식구들 거의 인사차 모여 와글대고.
또 내일을 위하여 돌아가 쉬셔야 하니 할말 많은 우리 엄마 어찌하랴.
보고싶은 동생들 소식에 밤새 얘기하고 또 하여도 모자랄텐데.
본견으로 곱게 손수만들어 오신 엄마, 아버지 한복을 입혀보시고
몽땅모여 사진속에 모습들을 담고는 모셔다 드리고 왔다.
내일은 아예 호텔에서 밤새 시간을 갖게 해드려야겠다.
나도 슬쩍 곱사리 끼어.
비행기에서 드시려 삶아온 “고구마”
“우리 언니주자”하며 안드시고 세관을 잘도 빠져나온 “삶은 고구마”
남편주려 갖고온 두개의 고구마를 들여다보니 참으로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들에 가슴이 아려오기도 한다. 무어라 형용할수 없는 어떤것들로.
내 마음처럼 잠깐 소리내어 와르르 쏟기우는 비.
이밤엔 비오고.. 내일은 밝은 햇살이 활짝 웃음 지울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