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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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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사랑, 사랑들


BY 선 물 2005-09-23

일요일 아침, 늦도록 단잠을 자고 싶었던 나는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고산골이라는 마을 뒷산으로 새벽운동을 가자는 가족의 성화에 억지로 눈 비비고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닥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동안 그래도 새벽을 가르는 맑은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언니야, 빨라 온나. 다들 기다리신다."
동생은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언니가 답답했던지 자꾸 채근을 한다.
가까운 이웃가족과 약속을 정하고 온 새벽운동이기 때문이리라.
산에는 여러 운동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철봉뿐이다.
철봉에 매달려 운동을 하고 있던 잘생긴 사내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또렷이 각인된 까닭이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이웃이었기에 나는 그 가족 모두를 알진 못했다.
때문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할만큼 잘 생긴 그 사내아이가 이웃집 아이인줄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 몽롱해졌다. 첫 눈에 반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 아이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뺏겨버렸다.

그들은 얼마전 이사를 온 이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모님과 친해졌고 우리 가족을 성당으로 인도했다.
나도 어색해하며 쫄레쫄레 따라간 성당에는 잘 생긴 그 아이가 있었다.
복사(성당에서 미사의식을 돕는 아이)활동을 하는 아이는 내게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 때 우리는 6학년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를 좋아했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부모님끼리 너무 잘 알고 지내며 또 왕래도 자주 하는 관계라서 그런 것을 드러내면 몹시 불편해지고 어색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자존심까지 어린 나는 헤아려야 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 그 아이가 살고 있고 우리는 좋든 싫든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졌고 친밀해졌다.
우리 집에서 큰길로 내려가는 사이에 그 아이 집이 있었다.
그 집 파란 대문을 보며 지금 집안에 걔가 있을까... 늘 궁금했다.
지금 밥을 먹고 있을까? 노래를 듣고 있을까? 온통 그런 생각 뿐이었다.

잘 생긴 외모때문인지 그 아이는 아주 유명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그 아이 소문이 무성했다.
나와는 서로 다른 국민학교를 졸업해서 잘 몰랐지만 그 아이 학교 출신 친구들 사이에선 늘 그 아이 이름이 떠돌았다.

서로 조금씩 친해진 우리는 함께 공부도 하게 되었고 작은 고민들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아이 친구들도 알게 되었고 내 친구들도 그 아이가 알게 되었다.
어떤 때는 함께 도서실도 가곤 했다.
어른들은 비교적 나를 많이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 아이 부모님도 나를 좋아하셨고 함께 공부하는 것을 권하셨다.
쉽게 말하면 그 아이는 어느정도 날나리 기질이 있었고 나는 조금은 순진한, 비교적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 아이 집에서 수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갑자기 공부를 하다말고 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왜, 말해봐라."
내가 채근하자 아이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 누구누구가 좋거든. 나중에 도서실 갈 때 걔도 함께 가자고 해 줄래."
참 눈치도 없는 아이였다.
바로 앞에 있으면서 콩닥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넌 들리지 않니?
그러나 난 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응.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래, 내가 도와줄게."
더듬더듬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지껄이고 있었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친구의 집은 그 아이집과 마주보고 있었다.
내가 저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저도 내 친구를 보며 그렇게 두근거리고 했었나보다.
난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친구는 대번에 그 아이랑 사귀게 되었다.
내 앞에서도 둘은 꼭 달라붙어 있을만큼 나이답지 않게 서로에게 열중했다.
중학생이었지만 사랑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씁쓸했다.
마음을 접어야 했다.
혼자만의 사랑.
혼자만의...

몇 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계속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단한번도 그 아이를 말 그대로의 친구로 느끼지 않았다.
언제나 설레임의 대상이었다.
그동안 그 아이는 여러 여자친구들과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나와는 늘 그 간격 그대로의 관계로 머물러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와 그 아이가 사귀게 될 때가 많았다.
내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인연은 엮어졌다.
그리고 때때로 그 아이 친구 중에 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기도 했다.
그 소식도 나는 그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2가 되면서 나는 서울로 전학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인연은 끊기지 않았다.
그 아이가 서울 오면 우리 집에 꼭 들렀고 나는 대구에 가면 그 아이 집에 꼭 들렀다.
친척 같은 이웃이었기에 한번씩은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서울로 올라와 친구를 만나게 되면 나를 꼭 불러내었고 우리는 그런 때 묘한 감정을 겪어야 했다.
스물이 넘은 나이, 가까이 있게 되면 늘 연락해서 만나는 사이. 딱 그만큼만이 우리의 관계였을 뿐...
난 한번도 그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 않았던 걸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지하게 좋아하면서 그토록 오랜 시간 함께 하는 때가 많았는데도 내가 그런 내색을 정말 한번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어도 그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빛을 한번도 들키지 않았을 리는 없기에...
그러나 언제부턴지 그 친구에게 날선 감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사랑이 아프고 자존심이 다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넌 한번도 내가 여자로 보이질 않았니?
늘 만만하게 편한 친구이기만 했었니?

그러자 내 감정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왜 내가 그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단지 잘 생겼다는 이유 하나 뿐일까? 나란 사람이 그렇게 유치한 걸까?

그러나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왜라는 물음에 답은 없었다. 그냥.. 무조건... 좋았을 뿐...


입시에서 실패한 그 아이는 재수를 했고 나는 누나 같은 입장에서 편하게 편지를 해주었다. 좀은 잘난 척도 해 가면서... 그러면 그 아이는 참으로 반가워했고 고마워했다.
어쩜 더 큰 세상에서 많은 인연들을 접하며 현실적으로 조금씩 그 아이가 시시해 보이기도 했고 달뜬 감정들이 희석되기도 했던 것 같다.
드디어 혼자 하던 사랑을 접으려 하게 된 것이다.
가끔 혼돈이 되기도 한다.
워낙 오랜 기간 짝사랑하던 사이였기에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그래서 그 아이를 애써 낮춰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재미교포였던 그 아이 삼촌이 국내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내게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그 분 회사로 직장을 옮겼고 그리하여 우리는 십년을 넘는 인연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지 않아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내가 결혼한 후 일년이 되지 않은 어느 날, 몇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서울로 와서 자리를 잡고 산다. 딸아이만 둘인데 엄마 아빠 닮아 너무 예쁘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그 아이를 끝으로 보았던 것은 여동생 결혼식에서였다. 8년전쯤 일이다.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금세 헤어졌다.
내 남동생의 대부이기도 한 그 아이는 아마 우리 가족과는 인연이 계속될 것이고 난 간간이 아주 이따금씩 그 아이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때론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떠올려지진 않는다.
오히려 생각보다 너무 담담하다.
하지만, 십수년의 세월 내 가슴 속을 점령했던 그 존재가 사랑으로 기억될 수는 있을 것이다.


혼자만의 사랑도 변하고 떠난다.

묘한 것은 내가 좋아하던 대상보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더 애틋하다.
그들의 혼자만의 사랑도 내 것처럼 변하고 말았을 텐데 그래도 난 감사하다.
날 좋아해주던 사람들을 질색하며 징그러워하고 무시했던 내 못된 마음들을 참으로 많이 반성한다. 혼자만의 사랑이 아픔을 알기에...
그런 사랑의 감정들, 지금은 어디에서 떠돌아 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