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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별난 시아버님과 별난 명절 보낸답니다.


BY 토끼와거북이 2005-09-22

명절만 다가오면 허리가 아프다는 남편..
다른집들은 여자들이 명절증후군으로 여기 저기 쑤시고 아프다는데,
우리집은 웬일인지...
올 추석때도 어김없이 명절이 다가오자,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남편,
결국 침술원에 가서 대침을 몇 대 맡고서야 시댁으로 향했답니다.
그러기에, 아내가 아닌 남편이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별난 사연이 있답니다.

저의 시아버지는 전직 군인...
가족 대하기를 밑에 있는 직원 다루듯 하시는 분이라,
어머님도 항상 좌불안석..남편은 애 둘씩이나 있으면서도 무릎 굵고 앉는답니다.
아버님 호통 한번 치시면 온가족이 깨갱깽!!
그래봐야 아버님, 어머님, 우리가족 4식구인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 가자마자, 아버님 첫 말씀... 목소리 톤도 굉장히 높답니다.

아버님 : 요즘 신문 몇가지나 보는거야?
남편 : 2가지 보고 있습니다.
아버님 : 책은 한달에 몇권 읽고, 요즘 최근 읽은 책은 뭐가 있어?

한가지씩 물어 보셔도 될걸, 성격이 급하셔서는...

남편 : 연금술사 읽었습니다.
아버님 : 다빈치코드도 안 읽고 여적 뭐했어?
남편 : 집사람이 읽고 있습니다.
아버님 : 으음 그래? 연금술사 작가가 누구야?
남편 : 코엘류입니다.
아버님 : 코엘류가 뭐하던 사람이야???

정말 몇 달 만에 만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 해야할 법 싶은데, 이건 무슨....
그러더니,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버님 : 지금이 7시야~ 열시까지 테마를 정해 놓고 토론을 하자!

왠 테마??

아버님 : 주식에 있어 포토폴리오에 대해 이야기해봐!!
거래소와 코스닥의 차이가 뭐야?
가처분소득이 뭐야?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

정말 기막히다. 우리 가족 사는데, 웬 포토폴리오며 코스닥!!
그나마 남편이 대답을 잘해서 다행이지, 답변을 못하면, 그다음은 지옥행~
매번 만나면 대화가 이렇게 이루어지다보니, 정말 남편이 화가 났는지,
시아버님께 “아버님은 도대체 이게 명절 보내러 온사람한테 대하는
모습이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며, 결혼한지 10년째인데, 항상 고분 고분하며 아버님 하자고 하면
군소리 없이 하자던 남편이 막 따지는거예요! 어찌나 불안하던지...
그리고 아버님께 대인기피증이 있는거 아시냐고? 아버님은 표리부동이라며...

하기사, 10년전 제가 시댁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때가 생각나네요!

시아버지 : 금강산 사계절별로 이야기해봐!
단양팔경이 뭐야?
삼대 미항은?
베네룩스 3국은 어디 어디야?

하시면서 처음대면부터 무슨 골든벨도 아니고 장학퀴즈 출전한것도 아닌데,
며느리와의 첫대면에서 이런걸 물어 대시던 시아버님!!!

그덕분에 10년동안 아버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일반상식, 시사상식 풍부히 쌓긴 했지만, 올해로 칠순을 맞이하시는 시아버님!
돌이켜보니, 공부하기 좋아하시고, 신문 보시는것도 좋아하시지만,
일명 대인기피증에 걸리셔서 외출도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걸 싫어 하시니,
오로지 사람 만나 대화하는 것이 아들 내외뿐인지라, 그동안 공부한것들 자랑하고,
으쓱해지고 싶으신거 같은데, 왜 남편은 갑자기 욱하는 마음이 생겨 아버님께 대놓고
그런 말들을 쏟아 내는건지,...

결국 아버님께서 “그래! 나 대인기피증이다” 라며 고함을 치시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노라니, 마음 한켠이 싸늘해지더라구요...
수틀리면, 당장 보따리 싸서 집에 가라고 호통을 치시기에
(시집가서 명절 보내러 갔다가 몇 번 보따리 싸서 집에 왔는지 모르거든요!)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왠일인지,

아버님 : 그럼 이제 뭐했으면 좋겠어!
남편 : 아이들 윷놀이 하고 싶어 기다리는거 안보이세요?
라고 하자, 어머니께 “윷가져 와!”

하시며,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윷을 던지시는 모습을 보니,
아버님도 이제 참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기사, 올해로 칠순을 맞이하시는 저희 별난 시아버님덕분에
저희 집 명절은 남들과 다르게 별나게 보내긴 하지만,

대인기피증 때문에 몸이 아파도, 병원 한번 가시지 않는 시아버님!
작년 겨울엔 손가락이 펴지지 않기에 수술만 하면 쾌유가 된다고 하는데,
결국 병원에 가시지 않아 지체장애인 6급 판명을 받으셨네요!

저희 아버님, 몇십년동안 앓아 오신 대인기피증에서 하루 빨리 쾌유하시어
평범한 사람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공원 나들이도 하시고,
아버님 남은 평생을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저희는 아버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데 말이예요!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