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매다 맞는 추석 명절이지만 아마 올 추석날은 평생 잊지 못할거 같다.
올해는 나의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인 철도 공무원을
퇴직하시고 처음 가족들과 함께 맞는 추석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첫 직장인 철도공무원만 34년이상 하신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시다.
철도 공무원이란 직업은 하루 휴식, 하루 근무를 하는 직업이다.
출근날이 구정이 됐든 추석이 됐든 출근을 하셔야만 하는 직업이다.
그런 직장을 퇴직하시고 처음맞는 추석날이 이번 추석이었다.
평소에 멀리 계시던 친척분들은 추석 몇일전이 할머님 생신이라
생신날만 오시고 정작 추석날은 잘 오시지 않는다.
하지만 올 추석은 아버지께서도 집에 계시고 하니 아버지와
명절을 함께 지내시러 모두 모이셨다.
아버진 늘 명절날 쉬시더라도 다음날 출근 걱정 때문에
약주한잔 제대로 드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첫날, 토요일이 되자 전날 새벽에 일찌감치 출발하신 분들이
이른 아침이 되자 한분식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삼촌이며 고모등이 오시자 반가운 마음에
대문까지 나가 두손을 잡아주며 반기셨다.
하루종일 아버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으셨다.
주방에 나가 각종 음식을 만드시는것도 도와주시고 고스톱도 치시고 참
여유있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실수하나로 즐거운 추석날이 작은 소동으로 끝이나고 말았다.
.
우리집은 시골이라 각종 농사에 쓰는 약품이 많이 있다
제초제에서 부터 각종 진드기를 죽이는 약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시골서는 그런 약을 다쓰지 못하고 남으면.큰통에 두면 부피만
차지하고 해서 작은병, 흔희 말하는 박카스 병에다 담아 놓곤한다.
어떨때는 작은 병 껍데기만 벗겨내고 농약을 담은체로 집안
찬장에다 보관해놓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놓아둔 병을 감빡잊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내버려든 작은 농약병 하나가 아버지의 생명을 위협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햇다.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잘되는 집안에 액운이 낀다는 옜말이 맞는거 같았다
저녁을 드시고 고 난후에 아버진,작은아버지.고모부등 과 함께
모여 다들 약주를 한잔식 하기 시작하셨다..
한잔만 하자며 시작된 약주가 어느덧 취기가 오를 정도로 많이 마시게 되었다.
아버지 또한 취할 정도로 많이 마셨다.
평소 같으면 그만 드시라고 말렸겠지만 몇 년 만에 친척 분들과
다음날 출근 걱정을 안 하시고 기분 좋으시게 마시는 아버지를 말릴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마신후 다들 취기에 오르시는지 술을 드신 자리에서 그냥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고 방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계시고 .어느덧 술자리는 파장분위기를 맞는거 같았다.
나는 어른들 틈이고 여자라서^^평소의 주량을 자제하고 몇잔의 술만 마셨다.^^
그렇게 새벽이 되어 잠을자고 있는데 잠결에 나의 방문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거 같았다.
부시시한 눈을 뜨고 방문을 열어보니 아버지게서 작은 병을 보여주며
이거 뭐냐며 물으셨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뿔싸.
쓰다 남은 농약을 담아 논 농약 병이 아닌가?
"이거 마시셨어요"
"그래 ,소화제 아니냐"
아버지께서는 잠결에 무슨 소화제인양 그걸 마셨던 것이었다.
다행이 아버지는 말도 하고 정신이 있는 걸로 봐서 많은 양을
마시지는 않으 신거 같았다
난 아버지가 퇴직하자 마자 사신 중고차를 몰고 와서 아버지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들 술에 취해 잠이 드셔서 누굴 깨우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빨리 병원을 가야 한단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나 자신도 약간의 취기가 남아 있었지만 이러저런 따질만한 여유가 없었다.
시골이라 119 부르면 오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
그렇게 차를 몰고 가니 평소에15분거리를 5-6분정도에 병원에 도착한거 같았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마자 위세척이 시작되고
몇분의 시간이 마치 몇시간인양 길게 느껴 졌다
몇분이 흘러 처치가 끝난후 의사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다행이 약성분이 독한게 아니고 소량을 마셔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얼마간의 입원만 하시면 된다고......
순간 난 긴장이 풀려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아버지 외삼촌 두분이 술을 드시고 홧김에 농약을 드시고 자살을
하신것을 알기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물론 아버지와는 상황이 틀리지만 너무 놀랐다.
한참이 지나자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셨다.
다들 아버지가 무사 하신걸 확인 하자 마음이 놓이시는거 같았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2틀만에 거뜬하게 퇴원을 하셨고 아버지와 처음으로 맞이한
추석 연휴는 그렇게 작은소동으로 흘러 지나갔다.
아버지는 퇴원하시는날 집에 오시자 마자 나무를 이용해 큰박스를 만드셨다.
그리고 하루종일 그안에 농약이란 농약병은 모두 모아담으셨다.
심지어 다쓴 농약병까지...
그리고 그박스는 소외양간 작은 창고에 놓여졌고 그 앞면엔 빨간 페인트 글씨로
"농약 보관함" 이란 글씨가 새겨 졌다.
불과2일의 병원 생활이었지만 아버지의 얼굴살이 많이 빠지셨다.
하지만 명절연휴가 끝나시고 아침 일찍 밭으로 씩씩한 걸음으로 건강히
나가시는 아버지가 너무 보기가 좋으시다.
무엇 보다도 이젠 여유롭게 명절을 같이 지낼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하다.
비록 직장을 다닐실때 보다 농사를 시작한 요즘에 얼굴에 주름살이
더욱 늘으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가끔밭에 나가 농사를 도와드리는게
너무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
내나이 이제 35, 늦은 결혼에 부모님 속을 태웠지만 이젠 나도
아들 못지 않게 우리집 장녀의 역할을 하며 살 것이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해 나를 낳으셨다.
30년이상 동안 아버지가 이만큼 키워 주셨으니 나도 앞으로 30년 아니
그이상 아버지에게 효도하면서 지낼것이다.
이번 한가위때 3살된 우리딸과 함께 달님에게 작은 소원하나 빌어 보았다.
아버지의 건강과 우리집안의 행복의 오래동안 간직할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이다.
아버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