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환자의 과거 진료정보를 의사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6

바랑에 돌이 들었거든


BY 남풍 2005-09-05

 

바랑에 돌이 들었거든

 고개를 드니, 성급히 물든 잎이 지나치는 9월 바람에  후두둑 떨어진다.

 암자 앞 바위 위에는  검은 개 한 마리가 누워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님은 보이지 않고 선각자 같은 개 앞에 주눅이 들어 합장이라도 올리듯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새삼 갈증이 나서, 물을 두 바가지나 떠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돌계단을 오른다.

 열려진 땀구멍 속으로 산의 숨소리가 스며든다.

조립식으로 지어진 작은 법당 안에 들어서보니, 지붕만 이어댔을 뿐 법당은 그대로 바위굴이었다. 나는 불상을 향해, 산을 향해, 혹은 하늘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절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낮추는 일이라 했다. 마음을 한없이 낮추어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삼배 아닌 삼천 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애초 오늘 계획은 가벼운 산행이었으나, 올라오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입구에 바랑이 놓였거든 암자까지 지고가고, 바랑에 돌이 들었거든 가다가 패인 길에 놓으며 가는 것이 이 길을 가는 자의 예라하였지만, 그러나 내 몸 하나 오르기도 버거운 길이었다.

 빈 몸에도 헉헉대며 산을 오르는데, 적송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중생들이 깨닫기 전에는 해탈을 하지 않겠다던 지장보살처럼 소나무들은 오르는 이들처럼 붉어져 있었다. 게다가 힘이 들어 쉬고 싶다, 이게 다 온 것이라면 하고 자꾸 뒤를 보게 되는 곳, 포기하고 싶은 곳에서, 어김없이 나타난 친절한 나무계단은 결국 석굴암 불상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람이 참을 수 있는 한계점이라는 것이 결국 비슷하구나하는 것을 등산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사람이 만든 길, 사람이 다니는 곳은 다 그러하였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렵다는 것, 그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곧 편안한 길이 나타날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길은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내야지 결심하며 남은 길을 올랐다.

그러나 석굴암은 정상에 있지 않고, 가장 높은 곳을 지나 다시 한참 내려가 애써 올라온 정복감이 허무함으로 바뀔 쯤에서야 도달할 수 있었다.

 법당 돌계단을 내려와 낮은 곳에서 다시 걸어 온 길, 돌아갈 길을 올려다본다. 혹은 살아온 날 들과 살아갈 날들을 본다.

가볍게 떠난 산행은 온통 화두처럼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암자를 에워싼 바위 위에 보랏빛 잔대가 풍경처럼 흔들린다.


 며칠 전 학습지 선생님께 받았다며 아이가 깡통에 든 콩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흘 째 되는 날, 흥분한 아이가 내민 깡통에는 아이의 엄지손가락만한 떡잎이 쑥하고 솟아올랐다. ‘메시지콩’이라더니, 도톰한 떡잎에는 ‘I Love You'라고 새겨져 있었다. 초록의 메신저에게 아이는 틈틈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는 피식 웃었지만 콩은 아이의 요구에 답하듯 부쩍부쩍 자랐다.

 갑자기 산이 내게 스미듯, 아이가 콩에게 들려준 음악이 정말 콩에게 스며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