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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71

전망 좋은집


BY 27kaksi 2005-09-04

딱 그 한주를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일거라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이 더위가 최고로 기승을 떨던 8월 중순.

 

우리는 전망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무작정 싸 놓은 짐과, 먼지와, 정신없음과, 비오듯 하던 땀과.....

포장이사 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린, 짐속에 묻혀서 첫날을 맞았다.

거실 창밖으로 산이 보인다는 -정말 손에 닿을 듯이 산의

나무가 창을 다 가리고 있다- 것만으로도 나는 기뻐 했다.

그러나, 여름휴가를 몽땅 집정리에 보내고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져야  할만큼,

집안 정리라는 말이 나를 괴롭혔다.

3주가 지났다.

이제 좀 여유를 찾았다.

 

거실에 컴을 켜고 앉으면, 파란 나무의 작은 잎들의 움직임이

보인다.작은 바람조차도 반응을 보이는 파란잎들은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풍요로워 진다.

아직도 세상의 욕심으로 들뜬 나에게, 차분함을 가르친다.

창밖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항상 전망좋은 집을 소원  했었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강남에서 신혼 때 부터 살았지만

우리집은 전망좋은 것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집앞에 있으니 편리 했지만,

보이는 것은 빌딩숲 이었고,

그속에 간간히 나무가 있을뿐이었다.

그나마도 아파트 정원을 없애고 주차장을 만들어야 할

정도 였으니.....

 오래되어서 아파트 정원의 나무도 크고 목련과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1층에 잠시 산 적이 있지만,

곧,이사를 했고,

 지난번에 살았던 집은 -이사 가기전에는 잘 몰랐었다-

 옆의 대단지 아파트가 공사를

하던 중간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소음에 시달렸다.

종일 쾅 쾅 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밤이면 공포영화라도 찍을 수 있을것 처럼 시커먼 건물이

우뚝 우뚝 서있던 그곳을 보며, 삭막해 했었다.

 

 

전망 좋은 집에 살게 된다면, 

그러면, 아마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자신에게 갖는 변명이고, 구실이었다.

전원 속에 집을 가진 잘 나가는 작가들을 부러워 했다.

하여간

난 지천명의 나이에,

글을 잘 쓸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다.

허나,

직장을 가려면 세번씩 차를 갈아 타야하고, 산에 오르듯이 높은

아파트를 올라 다녀야하는 불편함이,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포함 되어졌다.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차를 움직이기도 힘이든다고 한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 하지 않으면, 이런 환경을 갖을 수 없다면

기꺼이 받아 들이기로 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우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어제는 좋은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

집들이 명목이었다.

예전에는 이사를 하면 끊임없이 집들이를 했었다.

많이 이사를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몇번의 이사를 할때마다 축하 받을 만한 조건이었고,

흔연하게,

음식을 만들어, 오는 사람들에게 대접 하고,

그걸 맛있게 먹어 주고, 인사치례로 해주는

덕담을 고마워 하고,

여러번을 그러다 보면 그집에 익숙해 지곤 했었다.

모든게 여유롭고, 베푸는게 부담이 없게 젊기도 했었던 시절

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들이었다.

남편은 늘 의욕에 넘치는 남편과, 

세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자랐고, 그런 아이들은 나의 삶의

기쁨이 되어 주었다.

큰아이가 좋은 집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때,

딸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그말이 정말 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했다.

내집을 소유 한다는게 여자들에게 많은 안정감과 행복을

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난 전망 좋은 집을 가진,

참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