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12

흐린 토요일 오후의 단상


BY 은하수 2005-09-03

*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희뿌옇다 못해서

검정물감 한 방울 섞은 듯 연회색에 가까웁지만

무채색 두꺼운 장막을 친 태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밝게 타오르는지 흐린 날씨에도

눈부시도록 환한 하늘에 눈길이 간다

 

거리의 풍경들은 흰색 도화지 위에 한층더 도드라지고

코발트빛 하늘만 Delete Key에 삭제당한 듯 하여

바라보는 마음만 아쉽다

 

일주일분의 고단함을 트렁크 가득 싣고

부지런히 가고 오는 저 차들은

어디를 가기에 바쁘게 서두르는 것일까

 

집으로

바다로

산으로

절로

교회로

들판으로

운동장으로

 

각자의 휴식의 장에서

싣고 왔던 피로와 고민을 부려 놓고

자유 대신 일용할 양식을 버느라 마지 못해

접어 놓았던 사지가 오그라들지 않게

화알짝 펴서 저 태양 아래 일광

소독이라도 해야 하련만

 

그리하여

 

일요일 밤에는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물통에 채우고

유연한 사고들을 도시락 싸서

잠시 자유의 날개짓을 연습해 보았던 활개를

조신하게 개켜서 머리 맡에 놔두고

또 한주일의 땀방울을 준비해야겠지

 

토요일엔 자유가 나를 보고 손짓한다.

 

**

차들은 어딜 쏜살같이 가거나 말거나

키다리 은행나무 아가씨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바람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보이지 않는 손길로

맵시를 가다듬으며

무슨 옷을 갈아 입을까

맘 설레며 목하 고민 중

 

오늘 저녁

새로 왔다는

가을바람 총각이

데이트 신청했나 봐

 

아주 시원하게 잘 생긴 총각이라네

 

근데 이 넘이 바람둥이라지

이 넘한테 넘어간 동네 나무가

한둘이 아니라지

 

순박한

은행나무 처녀

조심해야 할 걸

오늘밤에.

 

***

삼천포에서 불러서 이만...

주말 잘 쉬시고 행복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