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편은 지인과 술을 한 잔 하고 늦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문 밖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야~ 복희야, 문 열어.” 말투로 보아 어느새 술기운이 흠뻑한 남편이었지요. 그래서 얼른 바지를 꿰입고 잠긴 대문을 따 주러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새를 못 참아서 남편은 이제 고래고래 악까지 쓰는 것이었습니다. “복희야, 니 남편이 왔는데 빨랑 문 안 열고 뭐 하냐?” 그래서 서둘러 문을 따 주면서도 술기운이 지독하였기에 저는 이내 궁시렁거렸습니다. “어이구 이 웬수, 또 술독에 빠졌다 왔구먼...”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숙취를 풀겠다며 대중탕으로 갔습니다. 잠시 후 빨래를 하여 옥상에 널고 있는데 마침 저처럼 옥상에 올라와 빨래를 널고 있던 이웃집 순이 엄마가 절 보더니만 씩~ 하니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이어서 하는 말이 “애 엄마(저를 지칭하여) 이름이 복희유?”라는 겁니다. 순간 의아하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하였기에 “... 그렇긴 합니다만 근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셨어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순이 엄마는 “어제 애 엄마 아빠가 고래고래 애 엄마의 이름을 부르기에 비로소 이름을 알았지요.”라고 하는 겁니다.
이제 다음달이면 우리 부부가 결혼식을 올린지도 어느새 24년이 됩니다. 큰아들은 군에 가 있고 둘째인 딸은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 있기에 현재 집에는 우리 부부 뿐입니다.
처녀 때는 저도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고 나니 시나브로
제 이름은 증발되고 대신에 제 아이들의 이름이 먼저 호명되면서 그 이름 뒤에 ‘000 엄마’라고 불리우게 되더군요. 그도 아니면 아예 ‘아줌마’라고도 불리우곤 했고요. 남편은 평상시에 저를 그저 “여보” 내지는 “당신”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어제처럼 술에 곤죽이 되는 경우엔 반드시(!) 제 이름을 그것도 아주 용감하게(?) 부르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게 더 나은 것 같아 좋더라구요. 저희 아이들이 제 이름을 ‘감히’ 부르진 못 하기에 그래서 남편이라도 제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만 그동안 ‘000 엄마’와 ‘아줌마’로서만 살아온 저의 상심(?)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 같아서입니다. 얼마 전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보았듯 ‘이름’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당한 나 자신의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기에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