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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격자


BY 백양산 2005-09-02

결혼하고 나서 시모가 화날때마다 나에게 하던 이중성격자라는 말은 이미  내 가슴에 생채기가 하나씩 가서 아예 가시처럼 박혀 버렸다.

어쩌면 정말 내가 이중성격으로 시부모님을 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속마음은 내게 막말을 해대는 시모가 미워 더이상 안보고 싶고 인연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골백번도 더했고 남편이 중립적인 성격이라서 그러질 못했지만 겉으로는 안그런척 시부모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었는데 그것도 이중성격이라면 이중성격이다.

 

시어머니는 어제도 오늘도 막말을 해댔지만 그 이유는 내 예상대로 딱 한가지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딸?만 둘이나 낳고 자기가 죽기전에는 아들손주를 품에 안겨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전에는 그렇게 대놓고 그러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자기가 더 오래살것 같은 생각이 안들어서인지 하나뿐인 아들이 멀리떨어져 자주 못봐서 너무 그리운 탓인지 온종일 눈물을 글썽이면서'니가 잘하기는 잘 하는데 더이상 아들 낳을 생각을 안해서 밉고 화가나서 못살겠다'면서 화를 돋구었다.

 

자기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시모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아들의 제사밥차려줄 손주까지 생각이 뻗쳐있다.  손주한테까지 제사밥이 얻어먹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도 예전의 며느리가 아니라서 시모의 막말에 대들고 소리질렀다.

아직도 시아버지의 위엄이 있으셔서 시아버지 앞에서는 큰 소리로 잘 다툴수는 없지만 내 간도 어지간히 커져서 두 딸아이들을 앞에두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딸이라는 소리에 피가 꺼꾸로 솟는 것 같아서 한마디도 지지않고 대들었다.

 

아들가진 사람들이 부럽지도 않냐는 말에 화가나서 전혀 부럽지 않다고 딸만 있어도 너무 좋다고 말해버렸다.  그럼 너는 남편도 필요없고 딸냄이 둘만 있으면 다돼냐며 우리 아들이 힘들게 돈버는데 손주하나도 안겨줄 생각을 하지 않느냐며 어디서 못된것들 하고만 어울려 다니면서 어여쁜당신같은 드라마 얘기까지 빗대어서 말한다.

 

똑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시모는 이혼해서 고통받는 며느리의 입장만 보이고 시모의 손주 욕심때문에 아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건 전혀 눈에 안들어오나 보다.

 

절에 다니면서 아들 낳게 해달라는 불공은 안드리고 절에는 왜 다니냐고 한다.

만약 내가 아들을 낳지 않으면 당장 쫓겨나도 할말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역시나 시모는 너같은 생각가진 여자가 열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어째서 아들 낳는 걸 그렇게 싫어하냐면서 어떻게 아들욕심이 없을 수 있냐며 늙어서 아들없으면 그 설움을 어떻게 받을거냐면서 현재의 자신들처럼 아들에게 기대어서 살아야 한다면서 내가 이상하다고 하신다.

 

자식에게 기대 안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이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신다.

 

남편의 우유부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나이는 이미 40이 넘어섰고 많이 힘들어하는데 시모는 아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며느리의 나이가 30대 초반인 아직 젊다는 이유로 내게 희생을 강요한다. 

아들의 나이는 많으니까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해서든 손주는 책임지고 키울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

 

제사나 전통형식을 유난히 지키는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왔기에 홀로된 외아들의 대가 끊어진다는 생각에 시모는 몸이 아파서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점점더 아들손주 욕심은 강해지신다.  자기몸하나 못챙기면서 손주만 낳으면 자기가 어떻게든 키워주겠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대로 따르지 않는 며느리가 미워서 시모의 병은 더 깊어졌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며느리인 나도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그다지 예민한 성격도 아니었는데 시부모님의 말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있다.

 

내 성격도 속으로 쌓아두고 참는 성격이 아닌지라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 하소연으로 푸는 것이 습관이 되버린 내자신도 어떨 땐 화가 날 정도로 밉고 뜯어고치고 싶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달라서 시부모의 욕심을 채워줄 수는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남편이 둘째딸 낳고는 아들 욕심은 있지만 부담스러워 실행에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하고싶은 일이 따로 있고 그 길을 위해서 거의 매일 다니고 있지만 시모는 그 모든것이 못마땅하고 미워서 사사건건 내가 하는일을 간섭한다.

 

그나마 시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달라지셔서 내편을 들어주시는데 시아버지 또한 평소의 행동으로 봐서는 손주욕심이 없으셔서 그러시는 건 아닌걸 안다.

 

매일같이 아프다고 노래를 하는 시모의 모습에 시아버지도 지쳐서 보기싫어하시고 나역시 막말을 해대는 시모에게 좋은 감정은 별로 없다.  단지 시모의 인생이 불쌍할 뿐이다.

 

시아버지는 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짜증이 나니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 나에게 이해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에게 내 인생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식에게 집착하는 일은 결국 자식에게도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애착이 더 강해진다고 하지만 내 나이는 아직 젊어서인지 그저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순리대로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내가 남편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인생관이 비슷할거라는 생각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한때 스님까지 될려다가 시모의 현실적인 욕심에 못이겼다는 변명을 했었다.

 

요즘세상에도 아들이 아니라고 낙태를 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인생관에서 낙태라는 단어는 용납되지 않기에 시모의 욕심을 채워주려면 아들을 낳을때까지 계속 자식을 낳아야 할것이고 아들을 못낳은 탓을 며느리의 덕이 모자란걸로 믿어버리는 시모의 원망은 죽어서까지도 계속 될 것이다.

 

나는 불교신자이기에 그다지 큰 욕심을 부리면서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달관한것은 아니지만 오래살겠다는 생각은 버리려고 한다.

장기기증도 많이 하는 이 시대에 죽으면 썩어 없어질 육신에 집착하여 제사밥 얻어먹을 자식이 없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제사도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대에서 끝을 내고 싶다.

 

지금 시모의 욕심과 가시돋힌 말로 인해 내 자신은 무척이나 괴롭지만 이것도 전생에 내가 시모에게 지은 업보라면 달게 받아야 할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지만 매 순간 당할때마다 괴로운건 나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모가 나에게 독한소리를 한다고 나도 같이 막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생각도 나지 않는다.

요즘 여자들이 어떻다고 비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잘나지도 않은 아들 가지고 유세하지 말라는 소리한번 해본적 없다. 

 

시모의 집착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비구니 스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 시부모님들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죽어서도 자식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고 나는 섬뜩했지만 현재의 상태로 봐서 그러고도 남을 분들이다.

 

이번주말에 남편이 내려오면 아이문제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것이다.

내게 올 자식 인연이 다 하지 않아서 생기는 자식이라면 나도 막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대를 잇겠다는 욕심으로 자식을 억지로 낳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구나 시부모님의 손주에 대한 집착이 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 불보듯 뻔한 일이기에 아이 낳기가 더 겁이 난다.

첫째딸아이 키울때 시부모님의 육아간섭 때문에 맘고생이 너무 심했었지만 지금도 아이들을 하루라도 안보면 그리워서 못견디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또 상기시키려는 시모의 뜻을 어떻게 따른단 말인가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고 인간의 욕심은 끝도없고 결혼은 두번다시는 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만 든다.

전설의 고향을 보면 옛날에는 대를 잇지 못해서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들이 많았다.

그시대에는 그것이 당연시하게 여겨지던 때였기에 그때 같은면 나도 아주 중죄인이라서 소박을 맞아도 벌써 맞았을 것이다.

 

자유롭게 훨 훨 날고 싶었건만 열심히 일하고 번돈으로 전국의 명산과 사찰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면서 살고싶은 꿈만 꾸고 산다.

 

사찰에서 하는 단기 출가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싶고 40대가 되면 불교대학에도 다니고 싶고 내가 배운 기술로 힘든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들어 죽음을 맞이할때가 되면 장기기증도 생각하고 있고 자식들에게 깨끗하게 화장해달라고 하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