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려면 느티나무가 두 줄로 단정하게 서 있는 길을 걸어간다.
그 길은 아들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이고,
내가 서점갈때 타고 갈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엔 겨울엔 붕어빵 장사 아저씨가 학교 정문 앞에 서서 종일 붕어 닮은 붕어빵을 굽고,
봄부터 지금까지는 과일장사 아저씨가 천막을 치고 등받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길이다.
횡당보도 옆 버스정류장엔 조립식 길거리 구멍가게가 있고,
맞은편 버스정류장에도 똑같은 길 거리표 구멍가게가 서로 마주보며 경쟁을 하고 있다.
열흘 전부터는 고구마 줄거리를 직접 까서 파는 할머니도 느티나무 그늘아래 노점을 시작하셨다. 다른 채소는 안 팔고 오로지 고구마 줄거리만 파신다. 그것도 자주색이 도는 고구마 줄거리가 아니고, 허연색 고구마 줄거리다. 맛이 없어 보여 저 허연것이 팔릴까? 걱정이 되는데, 저녁 출근시간에 보면 고구마 잎이 느티나무 아래 수북이 쌓여있다.
이 길가엔 봄이면 명자나무 꽃이 뻘겋게 속살을 내 보이고,
여름이면 꽃잎에 범무늬가 있는 범부채와 천박스런 붉은색 접시꽃이 핀다.
여름이 떠나가고 있는 요즘은 흰색 무궁화가 희디 흰 살을 내게 보이며 관심을 끌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 벤치는 그늘이 져 햇볕을 피해 앉아 있으면 안전하고도 맞춤인데..
나는 출퇴근길에만 이 길을 걷기 때문에 낭만을 잡고 앉아있을 일이 아직은 없었다.
벤치는 초록색과 새빨간 색으로 페인트를 입고 있는데
등이 넓은 나무 의자라서 앉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면서도 출근하면 출근시간에 쫒기고 퇴근하면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서 마음만 앉아 있다 가곤 했다.
내가 출근하는 서점은 세 곳이다.
롯데마트 주엽점과 화정점과 뉴코아...
이렇게 세 군데 서점을 일주일에 두 번씩 출근을 한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주엽점에, 화요일과 금요일은 화정점에, 목요일과 일요일은 뉴코아에...
한 매장마다 두 명의 직원이 근무를 한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쉬는데, 나는 직원들 쉬는 날 오전이나 오후시간에 매장을 지키는 지킴이인 동시에 쉬는 직원들 땜빵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직원 한사람이 쉬는 날이면 직원 혼자서 하루종일,오전 열시부터 오후 열시까지, 매장을 보기 힘드니까 고객이 드문 오전이나 밤 시간에 내가 혼자서 매장을 봐 주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거려니 했다. 당연히 난 시간제고 알바고 신입이니까 그런거려니 했다.
근데 하루 동안 매장 보는 직원이 지네들 편한대로 그 다음날 저녁에 나오랬다가 갑자기 아침에 매장 문을 열어달라고 티리릭 문자만 달랑 보낸다. 그러니까 나는 직원들 편리를 다 봐줘야하고 나는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는 땜빵인 것이다.
꼭 저 거 같다. 뭐시드라? 아 마자 . 대리운전사.
술취할 때 아무때나 부르면 달려가는 대리운전사 같다.
여름에 지네들은 남편 휴가에 맞춰 휴가를 며칠씩 가면서도 나는 휴가가 언제냐고 묻지도 않고, 지네들 휴가 시간에 맞춰 저녁에 나오랬다가 오전에 나오랬다가 또 저녁에 나오라 했다가 ..아휴~~지랄...
그래서 난 올 여름도 장사할 때처럼 내 맘대로 휴가도 가지 못하고,
쉬는 날 하루 잡아서 고향 냇가를 다녀온 게 전부가 되었다.
내가 시간이 앞뒤로 널찍한 솔로라서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나도 한마디 했을지 모른다.
약속이 있다거나 휴가를 꼭 가야했으면 난 내 시간을 주장했을 것이고,
내 몫의 휴가를 챙겨 받아서 바다든 계곡이든 룰룰루 떠났을 것이다.
근데 난 시간제이기 때문에 휴가를 안가서 그 만큼 돈으로 쥐게 되니까
웃는 낯으로 네 ...알았어요. 휴가 즐겁게 다녀오세요, 했고
네..알았어요. 그 시간에 출근할게요, 하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여름엔 자주 소낙비가 내렸다. 퇴근시간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느티나무 밑으로 뛰었다.
그늘이 많은 느티나무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된다.
고향엔 느티나무 한그루가 마을을 지켜주고 있었다. 마을 중간쯤에 느티나무가 있어 학교를 오가면서 그늘에 앉아 쉬다가 갔고, 친구들이 언제나 모여드는 곳이라 심심하면 느티나무를 찾았다. 친구들 여럿이서 팔을 길게 뻗어 손에 손을 잡고 느티나무를 재 보기도 했고, 나무에 올라 나뭇잎을 따서 던지기 장난도 쳤고, 나무를 흔들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공기놀이와 땅따먹기에 하루해가 넘어 갔고, 밤이면 냇가로 목욕을 하러 가는 이모들을 따라 느티나무 밑을 지나다녔다. 그래서 난 나무 중에서 추억이 많은 느티나무가 제일 좋다.
잎이 무성하지만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넓게 펴 자라기 때문에 그늘이 널찍하고 시원하다
나뭇잎이 작고 촘촘해서 갑작비를 막아 줘서
나무 밑으로 뛰어들면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다
가을엔 단풍색이 노랗지도 빨갛지도 갈색이지도 않고,
골고루 여러 가지 색으로 물이 들어서
한가지색으로 단풍이 드는 나뭇잎처럼 단조롭지 않다.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그늘 밑을 지나 서점으로 출퇴근을 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제는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고,
고객이 오시면 한 달 전보다 할말도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책에 대해 몇 마디 정도는 설명을 할 수가 있게 됐다.
저번 주부터는 책도 판매를 했다.
설명을 하고 난뒤 살까말까 망설이는 고객님에게
"아이들은 책과 자연을 많이 접하게 해 주는 것이 최고 좋아요." 했다
그랬더니 책을 샀고 고객님 지갑에서 카드가 나왔다.
카드를 들고 결제를 하러 뛰어가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경쾌하고 신바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