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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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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뭔지...


BY 선물 2005-08-26

 

한장의 사진이 있다.

단발머리 여학생들 여섯이서 모두들 똑같이 하늘색 슬리퍼를 신고 환한 웃음을 짓는...

그중 분홍 반팔 티에 빨간색 디스코바지를 입은 적당히 촌스러운 인물이 바로 나이다.

장소는 대구 근교 왜관이었다.

아마 여러 친구들과 함께 공식적이 아닌 일로 밤을  지새운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집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친구의 친척 집.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께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그 사진에 내 얼굴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사실 중3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일곱으로 그룹을 이루었다.

당시 반에서 반장이었던 친구를 포함, 그래도 반의 분위기를 주도해가던 학생들이라 어떤 면에서는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가까운 근교로 놀러도 자주 다니며 항상 우리는 시간과 마음을 함께 했었다.

생일이면 꼭 식사를 함께 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진 속의 아이는 여섯이었다.

한 친구가 빠졌던 것이다.

그 친구가 혹시 부모님 허락이라도 받지 못했던 것일까?

호호호... 나는 잠시 그렇게 웃는다.

사실 그 친구는 그때 나랑 심하게 다툰 뒤라 나와 함께 놀러가는 것조차 하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친구는 그때 함께 가지 않았던 것을 많이 후회했다.

그리고 나와는 오래도록 정말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가깝게 지냈다.

싸운만큼 정들고 서로를 더 깊이 알게되었던 친구였다.

 

그 친구들은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으면서 흩어지게 되었다.

세 친구는 교복이 예뻤던 경일여고, 다른 두 친구는 성화여고, 그리고 한 친구는 대구여고였고 나는 남산여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함께 그룹을 이루었던 때문인지 우리는 그 뒤에도 끊기지 않고 연락하고 만났으며 그 만남은 결혼할 때까지 흔들림없이 이어졌다.

서울로 전학을 했던 나도 방학이면 어김없이 대구로 내려갔고 이 친구집, 저 친구집을 오가며 우리는 함께 모여 우정을 확인했다.

 

반장이었던 친구는 욕심도 많고 또 성실했다.

그리고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고 편지도 참 많이 보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친구가 어느정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다른 친구랑 더 친하게 지냈다.

그 나이또래에 있을 법한 사연들을 우리는 다 겪었고 때론 시기도 하고 질투도 하며 추억들을 쌓아갔다.

 

아마 내가 가장 빨리 결혼했을 것이다.

내 결혼식에 그 친구들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명도 빠짐없이 달려와주었다.

결혼식 사진에  친구들이 가득했던 것은 서울친구들 외에 대구 친구들이 꽤 많이 와 주었던 덕이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나는 대구 친구들 결혼식에 가지 못했다.

결혼해서 시댁에 얽매이게 된 입장이라 자유롭지 못했고 대구까지 간다는 것은 더욱 무리였던 것이다.

서울에서 결혼한 두 친구의 결혼식에는 참석했지만 그 때는 다른 친구들이 이미 결혼한 뒤라, 우리 일곱이서 모두 함께 모이는 일은 그 후론 단 한번도 없었다.

서울로 시집 온 친구, 대구에서 사는 친구, 또 다른 지방으로 시집 간 친구, 우린 그렇게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일곱이나 되다보니 그 속에서고 더 친한 친구가 있고 덜 친한 친구도 있게 되었더랬다.

그 중 나와는 크게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서울로 이사를 와서 대학을 다녔고 다른 한 친구는 소리소문없이 서울로 대학진학을 해서 졸업까지 하게되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겐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 자주 만날 형편은 되지 못했다.

 

결혼 초,  결혼생활이 너무 힘들어 우리 부부에게 위기가 왔다.

남편과 잠시 떨어져 살았던 아픈 시간이 내게 있었다.

그때 친구들이 내게 연락이 되지않자 친정으로 전화를 했고 그래서 나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그런말을 했다.

네가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고...

일곱 중 가장 행복할 줄 알았던 친구가 나였다고...

 

사람들은 나를 보면 걱정 하나 없을 얼굴이라 했다.

형제들이 다들 유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부자는 아니지만 알뜰살뜰 살아가는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 없던 가정환경이라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마음으로부터 상처가 많았다.

나는 오빠나 동생들처럼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또 둘째라는 자리때문인지 이유도 없이 외롭고 슬프고 서럽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밖에만 나가면 환한 얼굴이었다.

늘 내 주변엔 친구들이 그득했다.

무난하고 평범한 성격 탓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한번이라도 더 배꼽잡고 웃기 위해서였을 정도로 내겐 뛰어난 유머감각이 있었다.

청소시간에도 아이들은 내 주변으로 왔었다.

입만 벙긋하면 아이들은 뒤로 넘어갔다.

나는 신이 났다.

그래서 얼마간 오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긴건 웃기게 안 생긴 것 같은데 그래도 나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훗날 아버지가 많이 편하게 생각되었을 즈음엔 아버지조차 내가 입만 떼면 그렇게 웃음이 나온다고 할 정도였다.

내 인생에 황금기였다.

 

결혼과 함께 나는 웃음을 잃었다.

웃음이 있던 자리엔 한숨만이 그득했다.

세상이 암흑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힘든 시기를 지난 지금 그 때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통화했는데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내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다.

결국 위기도  이겨냈고 지금은 편안해보인다고 얘기한다.

사실 위기는 이겨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고 인생에 아쉬움도 참 많다.

이젠 누군가를 웃긴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정도이다. 너무 무거워졌고 심각해졌다.

그런데 이젠 남편이 나를 보며 웃을 때가 많다. 희한한 일이다.  그럴 능력을 뺏아간 사람이었는데...

 

그 때 일곱의 친구들.

한명은 나이고 한 친구는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와도 특별히 친했었는데...

그리고 두 친구가 이혼을 했다.

남편들도 잘 아는데 연애도 오래오래 해서 내가 결혼하기 전 몇번이나 그 남자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이혼을 하고말았다.

동갑인 남자들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여러모로 너무 어렸다.

한 친구는 하나뿐인 딸아이를 비행기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또 한 친구는 대학때 공무원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더니 지금은 아주 안정된 생활을 하며 결혼생활도 잘해내고 있다.

사실 이 친구가 중학교때 공부는 제일 안했었는데...

반장이었던 친구는 이혼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친구도 대구에서 사는데 평범하게 잘 산다고 한다.

 

이 모든 소식은 공무원생활을 하는 친구에게서 듣는 편이다.

그 친구는 우리 친구들의 끈을 가까스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년에 한번이라도 꼭 연락을 해온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친구 덕분이다.

 

또 한명의 이혼한 친구와 나는 연락이 지금은 끊긴 상태이다.

끝으로 받은 친구의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일곱 중 하나 정도는 이혼해도 되는데 나까지 이혼한 것은 친구로서 네게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아.

네 시부모님께 친구 이야기를 하는데 얘도 이혼하고 쟤도 이혼했다 하면  그 친구들 나중에라도 만나라 하실 거 같니?

그래서 잠잠해지고싶다.

그게 나의 우정이란다.>

 

그 후로 메일도 열어보질 않는지 연락이 끊겼다.

그래도 꼭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버리질 않는다.

사실 이혼이라면 나도 경험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 그때 친구들도 이혼녀인 나를 불편하게 생각했을까...

결국 이혼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합쳤지만 온전히 이혼녀로 살아본 시간이 내게도 있기에 친구의 편지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긴, 나도 그 당시 심한 우울증세가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 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얼마 전, 전화번호까지 바뀌어 영원히 연락이 끊길 줄 알았던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내 스스로 사는 모양이 한심하다고 픽 웃자, 그 친구 예전과는 달리 나보고 잘살고 있는 거라 한다.

지는 해외여행 다니고 친구들 마음대로 만나고 배짱 편하게 살면서 날더러 잘 산다니 좀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여유있는 자기 생활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복에 겨워 하는 소리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친구는 그 뒤로도 외롭다고 전화를 하고 몇 시간이라도 수다 떨자는 전화를 가끔 하곤한다.

 

사실 나는 참 바쁘게 살고 있다.

원하는 삶은 그게 아닌데 그렇게 살아진다.

여섯 식구 살림해야 하고

아이들 과외까지 해야 하는 나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평화롭지가 못하다.

아이들을 가르친지는 3년쯤 되는데 많이 가르치지도 않는데도 부담때문인지 때론 쉬고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가 원했던 거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여유로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늘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러나 친구는 그조차 부럽다한다.

자기는 일을 가지고싶어도 그럴 능력도 힘도 의욕도 없단다.

너무 걱정이 없으면 저렇게 무기력해지는건가... 그런 생각도 든다.

 

사는게 뭔지 모르지만 의외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다.

주변엔 다 잘 사는 사람들 같은데 막상 그들 속내를 들여다보면 또 그렇지 않은 건지...

 

얼른 아이들 자기 앞가림 할만큼 크고 부모님들께 조금 더 배짱 생길때가 되어 옛 친구들이나 만나며 살고싶다.

서로에게 부끄럼 같은 감정 느끼지 않아도 될 친구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함께 늙어갈 그런 넉넉한 친구로 우린 다시 만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