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쓰레기 버리는 날은 화목일이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에만 쓰레기를 가져간다. 당일 저녁 여덟 시가 지나서 내 놓으면 된다. 그러면 자정에서 새벽 사이에 그 쓰레기들을 가져간다. 하지만 이런 규칙을 꼭꼭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쓰레기가 차면 내 놓는다. 뭐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여름에는 냄새가 좀 나고, 보기에 좀 안 좋고, 고양이가 물어뜯을 시간을 좀 더 많이 벌어 준다는 것 말고는.
그래서 화목일 다음날이 되면 가관이다. 쓰레기를 거둬 간 뒤가 오히려 더 지저분하다. 찢어진 쓰레기봉투는 아예 가져가지 않는다. 그건 음식물 분리수거를 안 했다는 증거니까, 그런 쓰레기는 안 가져가기로 돼 있는 모양이다. 고양이는 겹겹이 쌓인 봉지 속의 음식쓰레기 냄새를 기막히게 가려낼 수 있다. 거리의 고양이들은 생존을 위해 쓰레기봉투를 물어뜯을 뿐이다. 그로 인해 온갖 쓰레기들이 바닥에 흩어졌다고 해서 고양이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음식물 분리수거를 잘 하면 될 일이니까.
연립주택이 많은 우리 동네는 각 동별로 주차장 한 귀퉁이나 골목 어귀에 쓰레기를 내놓는다. 청소도 동 단위로 한다. 내가 여기 이사 온 지 3년 돼 가는데, 처음 2년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회비도 걷고, 재활용품 분리며 계단 물청소도 함께 했다. 4층에 사는 중년부부가 그 모든 일을 주관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갑자기 그 모임이 중단됐다. 그 중년부부가 나서야만 추진되는 식의 모임이었기에 그들 부부가 무슨 이유에선지 손을 놓으면서 그 모임도 옛날일이 돼 버렸다.
그러자 차츰 사람들이 재활용쓰레기며 일반쓰레기를 아무 때나 제멋대로 내 놓기 시작했다. 그 장소는 단번에 지저분해졌다. 직장 다닐 때는 그런 것들이 눈에도 안 들어왔다. 한데 느긋해진 지금은 오며 가며 그 광경을 보려니 참 괴롭다.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 7월, 며칠째 쌓인 쓰레기가 이젠 눈 뜨고 못 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거기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쓰레기는 썩고 있었다. 볼 때마다 저걸 치워야 될 텐데 하며 조바심을 내면서도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이유는 내 소심한 성격 탓이었다. 나서서 뭔가 한다는 데에 공포감마저 갖고 있는 내가 대로에서 그걸 치운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할 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 빈자리가 있어도 차라리 그냥 서서 갈 만큼 소심한 나로선 쓰레기 치우는 문제 갖고도 며칠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내가 한 번 용기를 내는 게 낫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기로 마음먹은 이상 빨리 해치워야 했다.
애들을 데려다 주고 오자마자 바로 준비를 끝내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10리터 쓰레기봉투와 고무장갑만 있으면 되었다. 빗자루를 들고 나와 싹싹 쓸고 싶었지만, 그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러면 사람들 눈에 띌 확률도 커지므로 참았다. 대신 고무장갑을 끼고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주워 담았다.
예상했던 대로 쓰레기의 맨 밑바닥 광경은 처참했다. 지렁이를 비롯한 온갖 꿈틀대는 벌레들의 아지트가 돼 있었다. 10리터 봉투가 순식간에 다 찼다. 거의 마무리할 무렵 1층 사시는 할아버지가 약수터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사람이 해야 하는데\' 하며 껄껄 웃으셨다.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서둘러 2층 우리 집으로 도망쳤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손을 박박 문질러 씻으면서, 이 비눗물과 함께 아까 본 지렁이는 잊어버리자고 최면을 걸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건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이제는 그 꼴을 안 봐도 된다는 속 시원함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 했다. 날 비웃듯이 다음날부터 또 쓰레기들이 쌓였다. 나는 이제 밖에 나갈 때마다 불안해졌다. 이번에는 얼마나 쌓였을까? 얼마나 보기 흉할까? 남편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그걸 치울 수는 없었다. 이러다 정말 전담 청소원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사태에 무관심한 같은 동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다. 내가 섭섭한 것은 청소 때문이 아니고 애초에 쓰레기를 함부로 내 놓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모든 집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런 집은 꼭 한두 집으로 정해져 있었다.
음식물을 일반쓰레기에 같이 버리는 건 가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한 봉지씩 모아서 내 놓아야 할 재활용쓰레기를 생길 때마다 바로바로 내 놓는 건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아파트처럼 재활용상자가 칸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식용유병 한 개, 우유팩 한 개, 이런 식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알 수가 없다. 내 집에는 하나라도 쌓이는 걸 참지 못 하는 사람이, 내 집 바로 앞에선 이리저리 나뒹굴어도 상관없다는 건지.
어찌 보면 그는 대범한 사람이다.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점에서. 아마 그는 나한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바쁜 세상에 그깟 쓰레기 때문에 난리냐고. 그는 절대 자기가 한 행동에 후회도 안 할 것이다. 대범한 사람은 이런 사소한 일쯤은 문제로 치지도 않을 테니까.
소심한 나는 쓰레기를 내 놓을 때, 봉투에 여분을 좀 남기고 가서 흩어진 쓰레기를 주워 담고 묶는다. 재활용쓰레기도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한데 모아 봉지에 담는다. 고맙게도 나 말고 다른 누군가도 가끔 쓰레기를 치운다. 그래서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는 안 간다. 나는 그 고마운 사람과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이렇게 숨으려고만 하는 데는 내가 소심한 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 옆 동에는 정말 열심히 치우는 아주머니가 한 분 있다. 빗자루를 아예 갖다놓고 내 집처럼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런데 그 분은 청소하면서 항상 욕을 한다. 쓰레기 내 놓을 때마다 일일이 검사를 해야 되겠다는 둥 누군지 걸리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둥 듣기가 민망할 정도다. 흐뭇한 풍경이 순간 추해진다. 왜 좋은 일 하면서 점수를 깎아먹는 걸까? 난 티 내지 말아야지, 그때 그런 다짐을 했다.
물론 그건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고, 욕을 하건 말건 마을의 청결을 위해서 각 동마다 그런 이가 한사람씩은 있었으면 좋겠다. 난 나설 자신은 없지만 묵묵히 보조할 자신은 있는데, 어디 마땅한 사람 없나? 이런 일에는 대범한 사람이 적격이다. 물론 제대로 대범한 사람, 남 의식 안 하고 소신껏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