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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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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BY 동해바다 2005-08-24



     어쩜 저리도 하늘이 파랄까 
     솜사탕처럼 하이얀 구름이 파란하늘 위에서 두둥실 떠노닐고 있다. 

     파란 하늘처럼.. 
     하얀 구름처럼.. 
     티끌하나 없는 말간 색의 초대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다. 

     내 안의 나를 툴툴 털어 담금질하고 나면 조금 깨끗해지려나 ~~~ 


     방학내내 서울에 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아들이 돌아왔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2학기에 있을 답사지를 사전 살펴보고 오는 일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중원지역의 교통로인지 뭔지... 
     어쨋든 충주와 문경 안동 등을 둘러보고 이디오피아 난민만큼이나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은 많이 어른스러워진 듯해 보인다. 


     집안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아들은 오기 바쁘게 
     국립발레단의 '백조의호수'공연을 딸아이와 함께 관람하며 지치지 않는지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장소로 출발... 
     새벽녁에 돌아왔다. 

     돌아온 둘째날 아침부터 제 아비의 행동이 이상한걸 눈치채면서도 나에게는 일언반구
     없다. 오후에 친구만나러 잠시 나갔고, 나는 날아오는 총알과 화살 등을 온 몸으로 맞았다. 

     저녁나절부터 위험수위가 도를 지나친듯 하여 아들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멀리 있을땐 
     차라리 모르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불러들인 엄마, 약하기에 
     어쩔수 없이 찾는 못난 에미였다. 

  
     "왜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됩니다" 

     술병을 나발채 불고 있을때 현관에서 들어온 아들이 뺏으며 제 아비에게 극존칭을 붙이
     고 있다. 

     '뭐야'하는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못할만큼 취해 있었고 아들은 알면서도 모른채 함구하
     고 있었던, 쌓였던 것을 내뱉고 만다. 


     "도데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네요, 저 없는 동안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있었던겁니까?"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다. 

     
     "잊으셨어요? 저 고1때부터 이랬던것, 그때 담임선생님까지 와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고 
     3년내내 이러시더니 아직도 모자라 지금껏 이러고 계시나요? 도데체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아버지도 답답하시죠? 답답하시죠?" 

     방안에서 가만히 딸과 나는 듣고만 있었다. 

    
     "3년동안 정말 싫었습니다. 수능역시 망하길 바랬습니다. 그때 아버진 제가 수능점수 잘 
     나왔다고 무척 기뻐하셨죠 그게 기뻐할 일이던가요? 죄의식이 없던가요? 어떻게 제가 그 
     상황 속에서 점수가 잘 나오길 바랬단 말입니까? 4년째 아버진 전혀 변하지 않으셨네요" 

     내 아들이 맞는지 너무 생경하게 들리는 어투였다. 
     뻥튀기한것처럼 너무나 커버린것 같아 보이면서 그렇게 든든할수가 없었다. 

     욕을 하며 발악을 하는 아비와 함께 아들은 한참을 씨름하더니 방으로 들어가는듯 했다. 

     한풀꺾인 아비는 조금후 통곡을 하며 운다. 늘상 봐온 모습이라 모두들 모른척한다. 
     달래도 보았고, 통사정도 해보았고, 같이울어도 보았고, 난생 처음 남편에게 욕도 해 보
     았다. 그러다 황천길 갈 뻔했지만.... 
     골목으로 몰아진 기분이겠지, 소외된 느낌, 자기를 무시했다는 느낌 결국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그런 기분, 그래서 마시는 술이였다. 

     그래도 아들이 돌아온 날은 병원에서 입원치료받고 퇴원하던 날이여서 조금 괜찮을줄 알
     았다. 갈수록 심해지는 병세, 정신과 육신은 날로 피폐해져만 가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가 보면 그럴것이다. 설득해서든 강제적이든 병원에 입원시키지..... 
     설득했다가 맞아죽을 뻔했고 강제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어쨋든 시들어버린 꽃잎처럼 하룻사이 축 처지더니 그다음날은 완전히 정상이다. 
     '여보 밥줘, ~~야 학교가야지 일어나' 이런 일상이 너무 싫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
     을 한다. 어쩔수 없는 나도 함께 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고있는 아들 방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툭툭 때려준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네게....할 말이 없구나..... 


     미역국 없는 나의 생일날 딸과 아비가 한 상을... 
     그리고 뒤늦게 일어난 아들과 내가 한 상을 하고는 하고나니 오늘 저녁은 외식을 하잔
     다. 병주고 약주니 더 분통터질 지경이다. 

     아들과 딸은 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친다.. 
     몇년 전만 해도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표시해놓고 자칭 광고를 했건만.... 
     그 잘난 생일을 챙겨 무엇할꼬... 
     아이들에게 모든 것이 미안할 뿐이다. 


     생일날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다. 

     오늘 외출한 남편의 전화 한통화를 받고 바다를 향하여 나간다. 
     피서객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휑한 바닷가엔 갈매기만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잎의 색깔이 빨갛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남편과 함께... 

     어느사이 가을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