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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을 돌아 계곡을 지나 또 산을 넘고
잡목 무성한 소롯길 지나고
또 계곡 또 산...
침묵으로 마음 두고 갑니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침묵하는 것이고
침묵하는 것은 그 사람 떠나보내기 싫어서 입니다.
그 사람 떠나면 홀로인 내가 서럽고
둘이 만든 추억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나를 이기고 너를 받아 들이고
우리를 감싸안고 싶어서 입니다.
침묵하는 것은 기다리는 과정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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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없어서 오해를 많이 받으며 살아왔다.
말이 없는 관계로 인간관계를 맺을 때 몇 달씩 걸려야만
나에 대한 선입견을 풀어내서는 속에 있는 말을 다하는
친구가 되곤 했었다.
내겐 갑자기라는,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여자친구가 있다.
지금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친구이지만...
이 친구하고도 몇 달동안의 잠복기간이 필요했다.
이 친구와 사귄지 오년째라서 속에 있는 전부를 펼쳐 보여 줄 수 있는 친구가 됐다.
글 방에서 사랑하나 우정하나라는 글을 읽고서는 첫 번째 우정을 떠올렸다.
늙을때까지 내 곁에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우정이 있을까?
속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정도는 있다.
그런데 사랑 하나에선 난 침묵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내겐 사랑할 대상이 없다.
가끔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주 사랑을 하고 싶다.
자주라고 하는 뜻은 정해진 사람이 없으니까
얼굴도 없는 사람을 떠올리며 혼자서 잡스런 공상을 많이 하고 있다.
오늘 즐겨찾기를 보는데 목소리 깜찍한 현영이가 이년동안 남자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너무 사귀고 싶다보니 밤마다 애로가위에 눌렸다는 말을 하는데
웃을 일이 아니였다.
나는 올 봄부터 그 눌림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랑 꿈에서 발가벗고 끌어 안고 있기를 여러번...
자다가 깨면 그 허무함과 수치심과 아직은 남자품이 좋을 이 나이에
왜 이러고 살아야하나 외롭고 허탈했다.
난 다시 사랑하고 싶다.
난 다시 애절한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 열정이 남아 있는지는 아직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기에 큰소리 칠 수는 없지만
사랑은 해야한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대상은? 조건이라고 말해야겠다.
첫 번째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기에 그 뜻이 맞아야 할 것 같다.
두 번째는 전국 산사를 다니고 싶은 욕심을 갖은 사람이면 좋겠다.
산사가는 길을 걸으며 들꽃과 사랑과 나와 셋이서 이야기하고 싶다.
세 번째는 밥 값을 낼 때 먼저 뛰어가 내는 사람이면 한다.
밥을 먹고서는 뒤로 빠지는 인간은 여자 위할 줄 모르는 인간이고
애인을 둘 자격이 없는 이기적인 인간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대 놓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절대 안된다.
남자들은 누구나 바람끼가 있다는 걸 사십대를 넘어서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대 놓고 바람 피우지 않는 참을 줄 아는, 사랑은 하나였으면 한다.
사랑할 땐 한 여자와 헤어진 다음에 바로 다른여자와 사귀는 것은 무방한 것이고,
잠시 바람을 피더라도 겉으로 표시 내지 말았으면 한다.
다시 사랑을 하면 구속은 조금만 밀쳐두어야 한다.
사랑하게 되면 그림자와 같은 구속이 따라 오지만...
구속 때문에 다시 사랑을 잃어야한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사랑할 자신감이 없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랑의 시작은 아픔의 출발선일지라도...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난 안 믿었다.
어떻게 첫눈에 내 사랑임을 알게 되냐고 했다.
처음 만났는데 감정이 생기고 키스를 하고 모텔을 못이기는 척 들어갈 수 있냐고?
그런데...요즘 난 첫눈에 반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바로 입맞춤을 하고 모텔앞에서 망설이지는 않겠지만,
감정이 생겨 그 사람이 보고싶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사람과 떠들고 싶은... 그런 첫눈에 반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왜냐하면..이 나이에, 이 절절한 외로움에,
밀고 당기고 재고 떠보고 할 시간이 없다. 상대방은 몰라도 나는 시간이 없다.
근데...난 침묵하고 있다.
침묵한다는 것은...사랑할 대상이 내게 넘어오는 오묘한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
그늘진 나무보다 들꽃이 되고 싶어.
그럴수만 있다면 ...
산사가는 길에 피어나는 한떨기 들꽃이고 싶어.
외롭더라도 차라리 들꽃이고 싶어.
사람으로 태어나 외롭게 사느니 차라리 들꽃이고 싶어.
내 발 바닥에 흙을 묻히고 싶어. 정말이야.
고개를 숙여 침묵하며 사랑할 사람을 기다릴거야.
날 바라보면 슬펐던 울분이 잔잔해지고
세상에 지쳐 구부러진 어깨를 펴서 멀리 산을 바라보며
날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랑으로 널 기다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