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중후근 아들 두 명과 실밥 따는 일을 하던 그 집이 내가 여섯 번째로,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기까지 살던 왕십리에서의 마지막 집이었다.
시장 통에서 꽤 떨어진 그 집은 서울의 달동네 중에 한 곳이었다. 비탈진 계단을 오르면 판잣집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였다. 그런 집들을 보면 난 항상 따개비를 떠올렸다. 색깔도 크기도 고만고만한, 그 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끈질긴 가난이, 죽어도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던 따개비와 흡사했다.
늙수그레한 주인집 아줌마는 바보아들 둘을 데리고 하루 종일 청바지에 실밥을 따서 먹고 살았다. 청바지의 실밥을 따서 다 쓰러져가는 집을 장만했는지, 돌아가신 바보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건지 그건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부자구나 했다. 지금이야 다운증후군이니 자폐증이니 병명을 알고 있지만 그때 나는 그냥 바보라고만 알고 있었고, 주인아줌마도 바보아들도 자기들이 바보인줄 알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아들 둘 다 장가갈 나이였는데 장가갈 엄두도 내지 않고 쪽가위로 실밥만, 지겹지도 않은지 실밥만 땄다. 지겨움이 뭔지도 모르는 착한 바보였던 것 같다. 실밥을 따면서도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사람의 얼굴 표정은 몇 십 가지는 될 텐데, 주인집 아들들은 한 가지 표정으로 청바지에 붙어있던 실밥을 따고, 반찬 없는 밥을 먹고, 통틀어 그 집에 하나밖에 없던 공동수도에서 세수를 하고, 우리 부엌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던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화장실도 판잣집과 잘 어우러진 밑이 다 보이게 나무로 얼기설기 놓여 있었는데. 화장실 가던 표정도 한결같았다.
그러니까 주인집 아줌마도 과부였다. 아들 둘을 남편 살아생전에 낳았는데 그것이 둘 다 똑같은 표정을 갖고 태어난 바보 아들이었다니... 그 집이 우리보다 잘사는 주인이었지만 난 처음으로 여섯 번째 주인아줌마보다는 우리 엄마가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남매들은 그런대로 공부도 잘했고, 정학 한번 맞은 적 없이 학교를 졸업했으니까, 그래도 엄마가 새벽마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로 기도를 하더니 축복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 집엔 낮은 담장이 있었고, 주인집 마루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철대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 방 창문에서 보이는 곳에 쪽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우리 식구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이 문을 이용했고, 우리방과 같이 붙어있던 세를 살던 집이 한집 더 있었는데 그 집도 쪽문을 이용했다. 세를 살던 그 집은 엄마가 비슷한 연배의 아줌마와 노동일을 하던 아저씨와 나이가 나와 비슷한 딸이 살았다. 그 아줌마는 허가증이 없고, 자격증도 없는 파마를 그 집에서 해 주던 야매 미용실이였다. 부엌 한쪽에 거울을 달아 놓고 등받이가 없는 네 발이 달린 동그란 의자를 놓고서 가난한 동네 아줌마들의 머리를 빠글뽀글 파마를 해 주었다. 나도 엄마의 성화로 내키지도 않는 파마를 두어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처녀라고 빠그르르 뽀그르르 파마를 해 주셨다.
이 시기에 나는 남편을 만났다. 시청 앞 삼성본관 빌딩에서 책상을 마주대고 앉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지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남편은 부잣집 막내아들이었고, 말단사원이었지만 대기업을 다니고 있어서 결혼조건은 남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키가 나만하고 인물은 없었지만, 붙임성이 좋고, 나를 많이 좋아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이 가던 사람이었다. 사실 맨 처음에 남편을 만났을 때는 재수없다고 옆자리에 있던 여직원한테 흉을 봤던 사람이었다. 내가 회사에 남편보다 늦게 입사를 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절 아세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째려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책상을 마주한 이 사람이었다. 남편도 나의 도발적인 말투에서 뭐 저런 것이 다 있나 신입이 시건방지게 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성실한 직원 중에 한사람이었다. 일찍 출근하고 동료들이나 상사들에게 붙임성이 좋아 자신의 부서에서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부서 직원들하고도 잘 지내던 사람이었다. 내 성격하곤 반대인 그 사람이 내 입장에서 보면 배우고 싶은 점이었고 편안한 상대였었다. 그러나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하고 친분이 마당 발바닥이다 보니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늦게까지 직원들과 어울리느라고 외박도 잣고 돈도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망설였었다. 과연 결혼을 하면 저 버릇이 어느 정도는 고쳐질까...주변사람들은 그랬다, 총각 땐 누구나 돈 모을줄 모르고 어울려 다니는걸 좋아하지만 결혼하면 가정이 생겨서 다 고쳐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난 남편의 데이트를 받아 들였고, 남편은 집에까지 나를 바래다주곤 했다. 왕십리 허름한 따가비같은 그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헤어지기 싫어 골목길을 배회하곤 했었다. 바보형제가 사는 우리 집 앞에서 손을 놔주지 않고 , 십분만 오 분만 더 있다가 들어가자고 하면서 첫키스를 하자고 했다. 난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피했고, 남편은 줄기차게 쫒아 다녀서 우리 집 쪽문이 있던 담벼락에 기대어 첫 키스를 했다. 난 몹시 불안해서 느낌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남편은 좋아라하며 우린 이제 결혼해야하는거야 하고선 나를 그 담벼락에 남겨 놓고 희미한 골목을 빠져나갔다.
여섯 번째 셋방에 살 때가 우리 집이 제일 가난했던 시기였다. 큰 동생은 대학생이었고 막내동생은 고등학생이어서 학비가 밀리고 먹을 것조차도 바닥이 나던 시기였었다. 연탄도 두 장씩 새끼줄에 묶어 들고 쪽문을 열어야했고. 봉지쌀을 사다가 석유를 아껴가며 곤로에 밥을 지어 먹어야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시설을 간진한 곳이라서 화장실에 밥알이 떨어져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고 으리으리했었다. 극과 극인 생활 속에서 나는 가난이 더 지겹고 싫었고 끔찍했다. 빨리 결혼이나 했으면 했었다. 남편과 만난지 일년쯤 되던 해, 내년 봄에 결혼을 하라는 걸 이집에서 겨울나기가 싫다는 핑계로 서둘러서 내 나이가 25살이었던 그 해 11월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그 때까지도 남편은 우리 집 담벼락은 자주 보았지만 집에 데리고 간적은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방한 칸, 천장에선 밤이면 쥐들이 지네들끼리 지랄발광을 하던 그 방, 바보 형제가 입을 헤 벌리고 나를 쳐다보던 주인집 광경, 얼기설기 이어진 나무판자사이로 편하게 보이던 화장실의 풍경, 살림이라곤 자크가 망가져 반쯤 열려 있던 비닐로 만든 비키니옷장, 낡은 서랍장에 올려져 있던 이불들, 두 눈만 뎅그런 아직은 돈만 들어가야 하는 삐쩍 마른 남동생 둘, 나라는 여자의 조건은 완전 최악이었다. 결혼을 해도 막내동생은 내가 학비를 대줘야하는 형편인걸 남편은 알고 있었고, 또 내가 당차게도 결혼조건을 내세운 것이기도 했다. 난 돈이 없어서 혼수도 못해가고, 막내동생은 내가 졸업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알았다고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난 살림만 겨우 해가지고 갔지 시집식구들에겐 예단을 준비하지 못했다. 방바닥에 까는 얇은 깔개 하나씩만 돌려서는 결혼 후 말이 많았지만, 난 그게 죄는 아니었기에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남편은 결혼식이 가까워 오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처갓집에 가보지도 못하고 결혼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그 말끝에 그래 가난은 부끄럽지만 죄는 아니잖아. 그럼 가자고 못갈 거야 없지. 남편은 못 가보고 결혼할 뻔한 우리 집에 갔다 와서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부엌에 냄비가 반짝거리던데, 친정엄마를 닮아서 살림을 잘할 것 같네,그랬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초등 학교 때부터 살았던 왕십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던 시멘트 시장 골목에서, 매일 여기저기서 싸우던 시장사람들의 악다구니에서, 질펀한 가난을 뒤집어 쓰고 살던 사글세방에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막아내지 못하던 나약한 부엌에서, 엄마와 남동생들은 거기다 놔 두고 나만은 벗어날 수 있었다. 가난한 왕십리가 지겹고 지겨워서 생판 남남이었던 한 남자를 따라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왔다. 뒤돌아보면 홀로된 엄마와 떼꾼한 동생들에게 걸려 걸음이 떨어질 것 같이 않아 두 팔을 휙휙 내두르며 비탈진 골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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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에서 살던 시절은 여기에서 끝을 맺습니다.
다음엔, 결혼후 그 집들에 대해 쓸겁니다.
많은 시청? ㅎㅎ바랍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