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이방에 들어왔다.
늘 무엇이 그렇게 심각한지 그렇게 복잡하지도 심각하게 살지도 않았건만 마음은 늘 좌불안석이다.
누구에게나 한가지 이상의 고민과 고통은 주어지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의 고리로 인하여 주어진 결혼생활과 내 인생 최대의 걸림돌 시댁이 있다.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시댁과의 껄끄러운 갈등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집은 남자가 불쌍하리만치 너무 친정하고만 가까운 집도 있고 어떤집은 시댁때문에 못살겠다고 날이면 날마다 하소연을 한다.
나도 후자의 경우이지만 벌써 결혼 9년차이다.
남편이 객지로 나가서 주말부부가 되고 나서는 시모의 병이 더 깊어졌다.
우리 남편역시 외아들인 관계로 시어머니의 도가 지나친 관심과 집착으로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시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지만 시모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여름이라 휴가를 한번 갈려고 해도 같이 꼭 갈려고 하고 물놀이 간다고 하면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들먹이며 우리끼리 어디를 가는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같이 가서 잘 어울리면 다행이지만 몸과 맘이 다 고달픈 시부모라서 맘편하게 놀지도 못하고 바닷가에 물놀이라도 가면 30분을 못놀게 한다.
그래서 같이 가고 싶지 않다.
어딜가든 수시로 전화를 하고 확인을 해야 안심을 하는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힘들때 마다 속으로 삮이는 성격이 아니라서 누구에게든 수다로 미운사람을 성토하던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얻는 보통의 아줌마이다.
아니면 나보다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고 내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하며 시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한다.
하루이틀 그랬던 것도 아닌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며 시모와 상관없이 사는 친구들은 나에게 뭐라고 그러기도 한다.
이번주는 일때문에 남편이 내려오지 않았다.
집에서 2분 거리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아들이 그리웠던지 나에게 와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오랜 지병으로 늘 몸과 맘이 건강하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오늘도 나에게 지나간 과거사를 들려주신다.
일곱달만에 억지로 지운 아까운 낙태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좀 독하셨나보다. 아이를 가지기도 많이 가졌지만 놀라서 떨어지고 낳아서 죽고 억지로 지운 아이도 있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나로서는 절에 다니셨던 시어머니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시어머니께서 힘들게 살아온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고많은 영가천도제나 흔한 백중기도 한번 올리지 않았으니 그동안 힘들게 온몸으로 그 죄값을 다 치르다 보니 몸과 맘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뿐이랴 지금은 인연을 끊다시피했지만 복잡한 시아버지의 자식들로 인해 받았을 젊은 시절 시어머니의 맘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친정집의 몰락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유일하게 시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남편은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를 모르고 선택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버린 나역시 시모의 아들에 대한 관심과 집착에 맘고생을 안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지운 그 아들이 점쟁이의 말에 의하면 아주 훌륭한 장군감있었는데 그 아들만 하나더 낳았으면 이렇게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며 객지에 나가있는 아들이 그리운지 몇번이나 눈물을 글썽인다.
일주일만 안봐도 보고싶고 너무 정이 깊어 내가 끼어들 자리가 적어서 화도 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한심할 따름이지만 그동안 절에 다니면서 들은 스님의 법문에 의하면 시모가 왜 저렇게 사는 건지 이해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생긴자식을 억지로 지웠으니 순리대로 가야할 운명을 거역한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자식을 잃었으니 어머니의 삶이 순탄하지 못한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 싶은 보상심리가 발동했을 것이고 아들의 보조자로 생각하는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며느리 길들일려고 독설도 엄청 하시더니 결국 내 맘은 상처만 남았고 아들걱정만 하고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는 시모가 야속하고 따뜻한 말한마디가 진정 그리웠다.
자기맘에 맞는 며느리를 맞이할려면 아들도 잘 키워놔야 되는 것인데 사람이란 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나보다.
시모 성격도 만만치 않아서 한번 크게 대들었다가 자기성질을 못이기고 넘어가서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기에 여지껏 버텨왔고 지금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감당하고 있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 맘이 있는 쪽에서만 하는 것이란걸 시모를 통해서 알았다고나 할까.
결혼 9년동안 튕겨나가고 싶은 경우가 왜 없었겠냐만은 힘들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모에게는 긍정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몸이 너무나 고달퍼서 하나뿐인 아들과 며느리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기대야만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시모에게 왜 그동안 수자령(낙태아 영가를 일컫는말)천도를 할 생각을 못했냐고 말했지만 그럴 맘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날이 밝으면 시모를 모시고 내가 다니는 절에 가서 수자령 백중기도를 올리려고 한다.
시모는 경제력도 없으니 내가 대신 올려주어야 한다.
시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모의 맘이 좀 편해져야 내가 편할 것 같아서 그런다.
끝도없이 자식을 옭아매려고 하는 시모이지만 시모때문에 이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남편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착실한거 하나만 믿고 책임져야할 아이들이 있기때문에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