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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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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BY 국화2 2005-07-27

 검찰청 민원실에서 벌금을 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머리카락 보일세라 꼭꼭 숨겨놓고,  볼 때마다 즐거움을 주던  적금통장이

오늘 일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내 생애 처음으로 가져 보았던 나만이 아는 비자금인 셈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날리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새벽 두 시에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받아보니 남 동생이었다.

집안에 애물단지인 그 애가 전화를 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신호다.

나는 볼멘 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벌금 백오십만원을 못 내서 경찰서 구치소에

갇혀 있다고 해결을 해 달라는 거였다.

나는 기가 막히고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꾹 참고, 알았으니까 일단 끊자고 하면서

수화기를 내려 놓고 전화선을 뽑아 버렸다.

잠이 깬 남편은 지금이 몇  신데 전화를 해서 누나 한테 그 딴 소리를 하느냐고,

나이가 사십이나 된 놈이 언제 철이 들려고 그렇게 한심하게 사느냐고,

계속 궁시렁거린다.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작은 방으로  갔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여서 잠은 오지 않고 머리만 복잡해진다.

십 년 세월 동안 그 애 밑으로 들어간 돈이 얼마나 많았던가.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시는 손 벌리는 일 없을 거라고 하면서

부모님과 동기간들에게 가져간 돈이 억에 가까울 정도다.

그 영향으로 부모님은 노후를 걱정할 정도가 되었어도 그 애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지가 괜찮을 때는 소식 한 번 없다가 아쉬울 때는 전화해서 돈 얘기를 하니

다들 전화 올까 봐 겁을 낼 정도가 된지 오래다.

나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경찰서라면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회사에 전화해서 오늘 집안에 일이 있어서 출근 못한다고 얘기 해 달라고

했다고 하면서, 내가 벌금을 내라 마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오후에 서울구치소로 넘어가면 두 달 동안 노역을 살아야 하는데,

이 더위에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어차피 내야 되는 거니까 빨리 내는 게 낫다고 했다.

나는  출근을 해서도 신경이 쓰여서 일이 되지를 않았다.

고생 실컷하게 내버려두자 생각을 하다가도

노역 살다가 회사 까지 짤려서  폐인이 되면 어쩌나,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났다.

자식은 애물단지라고, 그 자식 때문에 고생스럽게 사시면서도 장남이라고

포기하지 못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부모님 때문에 난 소중하게 몰래 간직했던 내 적금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갔다.

돈 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돈은 또 모으면 되는 거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면서

검찰청에 가서 해결을 하고 나오는데,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비자금을 처음 만들면서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데,

혹시 남편한테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서랍속에 깊이 감춰놓았던 보물이었는데,

그것이 있어서 든든했는데, 그 모든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가슴에 묻고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