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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그 집들...(4)


BY 개망초꽃 2005-07-05

그 건물은 시장의 연결이었다. 시장이 일어나는 새벽부터 시장이 자는 늦은 밤까지 건물도 같이 깨어나고 똑같이 잠이 들곤했다. 왕십리 중앙시장 양옆으로 삼사층 건물이 두 줄로 어깨를 꾸부정하니 서 있었다. 건물들은 시장골목처럼 때에 쪄들고, 생활고에 힘겨워 금방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랬다, 내가 네 번째로 살게 된 곳은 시장 건물 3층 더러운 둥지였다.

 

계단은 좁고 동굴처럼 어둡고 음습했다. 일층은 그릇가게고, 이삼층은 살림집이었다. 건물주인은 그 곳에 살지 않았고, 삼층은 전세 사는 사람이 방 한 칸을 사글세를 놓았는데, 그 방이 사는 동안은 우리 방이 되었다. 살림집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신발 벗는 바닥까지 검은빛이었다. 부엌바닥도 검정색이고 부엌 천장도 검은색이었다. 주인집 방은 좁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 미닫이 문이고, 우리방은 왼쪽 미닫이 문이었다. 미닫이 문을 열면 맞은편에 창문이 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아래엔 개천처럼 시장이 흘렀다. 

 

시장엔 별의별 장사가 다 있었다. 리어카에 빈대약과 쥐약을 싣고서 마이크를 최대한 입술에 가까이 대고 빈대약있어요, 쥐약 있어요. 쥐이~~약~~ 쥐약할 때는 목에 잔뜩 힘을 주었다.

생강을 잔뜩 담아 등에 메고 간장종지만한 납작한 스텐그릇에 생강을 덜어서 말없이 아줌마들에게 들이밀면서 생강을 팔던 아저씨도 있었다. 난 생강아저씨가 제일 쉽고 간단하게 장사를 한다고 생각했다. 자리 때문에 욕지거리를 할 필요가 없고, 손님과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창문을 열고 시장을 구경을 할 때면 난 항상 생강아저씨를 먼저 찾아보았고 생강아저씨를 만나면 괜히 반갑고 그냥 재미있었다. 시장 속은 함지박과 함지박끼리, 리어카와 리어카끼리 싸움질을 했다. 텃새 때문이고 내가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였다. 그 싸움질하는 곳에 과부아줌마의 찰시루떡도 있고, 우리 엄마도 있고, 네 번째집 주인 부부도 그 곳에서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일층 그릇가게 앞에 평상을 놓고 양말장사를 했다. 주인아줌마는 남편 평상 맞은편에 앉아 생선좌판을 벌려 놓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만 빼고 생선 머리통을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생선 비린내는 주인아줌마 온 몸에 들러붙어 있다가 계단 난간을 집고 올라와 내가 살고 있는 삼층까지 비린내 칠을 하고 다녔다.

 

 주인 부부에겐 충직한 두 마리 개가 있었다.  이 개는 왕십리 시장 안에서 명물이었다. 이 건물로 이사 오기 전부터 나도 이 개를 알고 있었다. 진돗개 부부였다. 주인아저씨가 장사를 하러 나가면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주인을 지켜주고 주인 물건을 지켜 주었다. 생선 토막을 내는 아줌마 옆에 앉아 내리치는 생선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던 듬직한 개들이었다.  개부부의 식사는 항상 생선 머리 국이었다. 매일 아침 주인집 연탄불에 찌그러진 시꺼먼 양은그릇에 생선 머리가 눈을 허옇게 뜨고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주인집에겐 나보다 한살이 많은 언니가 있었다. 그런데 이 언니가 불량품이었다. 학교도 안가고 여차하면 땡땡이를 쳐서 친구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다녔다. 언니에겐 위로 오빠 둘이 있었다. 첫째오빠는 순둥이었는데, 둘째 오빠가 성격이 불같았다. 여동생이 그러고 다니는 걸 더 이상을 봐줄 수 없었던 날, 이층과 삼층 사이에 화장실이 있었다. 그늘진 건물 안이라서 나무로 된 문이 썩어서 너덜거리고, 그 사이로 여름엔 냄새가 참을만큼 적당히 났다. 그래도 건물 안이라서 수세식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문제였다. 수세식이라 찬바람이 노출된 계단에서 툭하면 얼어 터져서 화장실 물이 계단을 청소했다. 서로 장사하느라 바빠서 화장실 청소도 제대로 안한 상태에서 물이 흘러 계단이 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둘째 오빠가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여동생을 물이 흐르던 화장실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 패기 시작했다. 발로 차면서 너 같은 건 죽어야 돼 했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했다. 그 언니는 똥물에 빠진 동물처럼 괴성을 질렀다.  그 날 이후 난 그 언니를 보지 못했다.

 

건물 뒤로는 홍등가가 있었다. 밤이면  야시시한 불이 유리창안에 꽃이 되어 화사하게 피어났다. 봄이 아니어도 꽃은 붉은 주황색으로 짙은 분홍색으로 밤마다 밤마다 열심히 피어나 남자들을 홀렸다. 향기 없는 꽃은 향기를 주입하고, 색이 없는 꽃은 색을 덕지덕지 칠했다. 난 가끔씩 그 곳, 색시 집으로 산책을 가곤 했다. 꽃이 만발한 그 곳은 어린 내가 봐도 예쁘고 화려하고 유혹에 빠지기 충분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이 분홍색 유리방에 앉아 인형처럼 웃고 있었다. 인형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면 꽃이라 말하기엔 억지였고 먼지 끼지 말라고 유리방에 넣은 잘 만든 인형 같았다. 난 유리방을 안보는 척 슬쩍슬쩍 보면서 저 들은 돈을 잘 벌까? 그게 제일 궁금했다. 목이 어깨속으로 짜그라지게 함지박에 가득 이고, 야채나 잡곡 파는 할머니들보다, 하루 종일 생선 머리를 적군의 머리처럼 사정없이 잘라내는 주인아줌마보다, 리어카에 색색의 과일을 반질하게 닦아 새벽부터 밤늦도록 과일을 파는 엄마보다 돈을 잘 벌까? 그게 정말 궁금했다. 낮엔 실컷 놀고 밤에만 가게 문을 여는 저들은 돈을 얼마큼 벌길래 저런 화려한 옷을 입고 비싼 화장품을 덕지덕지 쳐 발랐을까? 그게 궁금하고 궁금했다. 그리고, 주인집 언니가 저런곳에 있지 않을까? 그것도 궁금했다.

 

주인집은 절간이었다. 가끔씩 킁킁거리는 개 소리만 들렸다. 언니가 가출한지 얼마가 지난 후 주인집 개가 그 언니처럼 괴성을 질렀다. 방에 있던 나는 개집 쪽으로 나가보니 개는 눈동자를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사지를 비틀고 있었다. 난 3층 창문에 목을 빼고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는 달려와서 어이쿠 쥐약 먹었네 하시며 비눗물을 먹였다. 먹은 걸 토해내긴 했지만 지독한 쥐약은 온몸으로 기어 들어가 한마리 개를 죽이고 있을 때, 주인아저씨를 뒤 따라온 암컷이 수컷이 토해낸 걸 먹고 두 마리 모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주인아저씨는 땀과 비눗물이 범벅된 몸으로 털썩 주저 앉아서는 죽은 개 두 마리를 한참을 내려다 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가출 했을 때의 아픔과 개를 잃은 아픔을 동시에 쏟아내셨을 것이다. 두 가지 현장을 지켜본 난 조용히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와 벽에 기대여 앉으니 그때서야 눈물이 나왔다.

 

생선 비린내 칠을 한 그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석 달 전부터 취업이 되어 사회인이 되었고, 그 직장에서 만난  직장 남자동료가 무작정 나를 좋아한다고 쫒아 다녔던 때이기도 하다. 스토커처럼 내 집 주소를 들고 집까지 찾아 왔었다. 난 천둥번개처럼 무섭게 소리쳤다. 찾아왔다는 게 싫어서가 아니고, 내 가난한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났었다. 시끄럽고 질척한 주변 환경, 때가 찌들어 검은색으로 살던 건물, 생선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던 계단과 내벽. 보이고 싶지 않던 내 현실을 남자 친구는 다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