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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하루(전태일 문학상 우수상)


BY 송영애 2005-07-01


      노점상 아줌마의 일기- 아픈 하루 송영애 "할아버지 이젠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뭐시라? 이 에미나이가 지금 뭐라카노?" "할아버지! 지금 몇 시간째예요? 저 장사하게 이제 그만 가 주세요. 네?" "싫어 안가, 아니 못가! 내 돈 내고 내가 정당하게 사 먹고 싶다는데 왜 안팔겠다는 것이야 응? 200원은 돈이 아닌가?" 알콜 중독증세를 보이는 동네 할아버지와 나의 대화 내용이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수금도 잘 되지 않고 힘들어 하는 것같아 도로변 에서 떡볶이와 어묵, 순대 등을 파는 포장마차를 시작한지 6개월째 접어 들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전인 4년 전쯤에도 해봤던 일이기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가끔 이렇게 힘들 때가 있다. 오늘도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할아버지께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상태로 소주 한 병을 사 가지고 오셔서는 200원짜리 어묵을 하나 드시겠단다. 노인들이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지라 늘상 소주를 사 오셔서 드시는 걸 그냥 눈감아 드렸는데 오늘은 받아 줄 기분 이 영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어묵 하나와 국물에 소주를 몇 시간씩 앉아서 드시니 손 님들이 왔다가도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추운 겨울 날씨만큼 내 마음도 오늘은 차가웠다. 문을 열자마자 오셔서 내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으시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미웠다. 아직 개시도 하기 전에 오셔서는 200원 짜리 어묵을 하나 먹어도 본인의 돈을 내고 먹으니 정당하다고, 못 팔겠으면 파출소에 가자고 소리를 버 럭버럭 지르신다. 아침부터 술에 취하셔서 눈은 무섭게 충혈되어 있었고 발음도 제대로 하 시질 못한다. 전엔 이런 할아버지가 싫어도 불쌍하고 안되어 보여서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길에서 큰 소리를 치시고 망 신을 주는 데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또 일단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었던지 우루루 몰려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며칠 전에도 술에 취해 포장마차에 오시더니, "이봐! 난 순대를 싫어하니 순대말고 간만 줘!" 하시며, 반말로 억지를 부리셨다. 순대도 함께 싸드리겠다고 했지만 당신은 순대는 안드시니 간만 달라시 는 거였다. 마침 옆에 손님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리는 그냥 마주보며 할 아버지의 술주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웃었다. 그리고 2,000원인 순대를 1,000원에 그냥 싸드렸다. 그런데 10분쯤 지났을까?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아까 할아버지께서 싸 가신 봉투를 내게 내던 지며 다짜고짜 큰 소릴 치시는 거였다. "아니, 이 봐요! 아무리 술 취한 우리 집 양반이 순대를 달라고 했기로 서니 먹지도 못 할 간만 싸줘요? 떽끼!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난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으며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할머니, 제가 간만 싸드린 게 아니고 할아버지께서 간을 좋아하신다고 간만 싸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할머니의 오해는 좀처럼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옆에 아까 계시던 손님이 조금전의 상황을 말씀해 주셔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할머니, 제가 아까 옆에서 지켜봤는데요. 할아버지께서 간만 싸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주머님이 간만 싸주신 거예요." 그제서야 할머니의 노기가 조금 누그러지는 듯싶었다. 난 할머니께 그냥 천 원을 돌려 드리고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간은 쓰 레기통에 버렸다. 내 자존심마저 쓰레기통에 그렇게 구겨져 버려졌던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난 그 할아버지만 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부 터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또 오셔서 지치고 아픈 나의 가슴속에 불을 지른 것이다. 개시도 하기 전에 술을 사와서는 어묵 하나에 마시겠다고 하니 지난 번 일도 생각나고 해서 내 기분이 도저히 허락하질 않았다. 오늘은 울면서 할아버지와 싸웠다. "할아버지, 오늘은 그냥 가세요. 제가 어묵은 돈 안 받고 그냥 싸 드릴 게요. 제발 집에 가서 드세요. 네?" "됐어! 날 뭘로 보는 게야?" "할아버지 저 장사해야 해요. 할아버지께서 소주병을 이 곳에 놓고 오 래 앉아 계시니까 손님들이 눈치만 보다 그냥 가잖아요. 여긴 술 파는 곳이 아니잖아요." "가라고 해! 지까짓 것들이 뭔데 날 우습게 봐. 엉?" 말도 안 되는 할아버지의 술주정은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난 그냥 길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어버렸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매서운 날 흐르는 내 눈물은 더욱 차가웠고 그에 따라 나의 설움도 한없이 복받쳐만 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연신 쳐다봐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내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고 서글프고 또 서글퍼서 울었다. 옆 건물의 단골 청년이 와서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보냈다. 종일토록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산다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수많은 파도를 헤치고 건너야 다다르는 바다 끝이지만 오늘 같이 힘든 날엔 온 몸에 힘이 다 빠진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서러운 마음으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내 소중한 새끼 둘은 9시가 넘었는데 아직 밥도 먹질 않은 채 TV만 쳐다 보고 있다가 와락 내 아픈 가슴에 달려와 안긴다. 서글픈 눈물이 주책 없이 마냥 흐른다. 오늘만 울리라, 오늘까지만. MBC라디오 '여성 시대'에 방송된 글 제13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글부문 우수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