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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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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사람


BY hayoon1021 2005-06-27

말이 없는 사람은 멋있다. 신중하고 생각이 깊어 보인다. 말이 많은 사람보다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좀더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말이 많든 적든 그건 성격 나름이고 어느 쪽이 더 좋다, 안 좋다 하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할머니들은 말이 많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았던 한 할머니는 같은 목적지에서 내리기까지 한 40여 분을 쉬지않고 내게 말을 시켰다. 그 때 내 머릿속에는 골치아픈 일이 있었고, 은근히 멀미까지 했다. 더구나 낮게 속삭이는 할머니 목소리는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아,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 말을 듣고 대꾸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또 한 번은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한 할머니가 힘드니까 여기 앉아서 기다리라고 내 바지를 끌어 당겼다. 할머니는 벼룩신문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나는 털썩 할머니 옆에 앉았다. 그 할머니도 지금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며, 오늘 입고 나온 블라우스가 너무 덥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후끈후끈한 한낮의 열기 속에서 난 할머니 얘기를 열심히 들어야 했다.

이 일들로 해서 할머니들은 아무나 붙잡고라도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시골에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이 분들 얘기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가 있다.

정말 문제는, 말을 잘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말을 잘 못 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게 주례사다. 짧은 예식 시간의 삼분의 일 이상은 차지하는 그 주례사를 제대로 듣는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란한 장내는 아랑곳없이, 그저 자신이 준비한 원고만 열심히 읽는다. 차라리 도중에 한 번 조용히 하라고 주의라도 준다면 좋겠다. 그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비디오 촬영을 의식한 듯 꿋꿋이 연설만 하는 그 자세는 감탄스럽다.

한 번은 내가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다. 옆에 친구가 자꾸 말 시키는 것도 마다하면서 열심히 들었지만, 그 날의 주례사도 역시 이력서 양식처럼 똑같았다. 물론 내용은 다 훌륭하고 좋다. 문제는 지루하다는 데 있다. 둘이서 열심히 잘 살라고 짧게 강조하면 될 것을 미사여구가 너무 지나치다.

또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경품 행사를 했다. 경품 추첨일이 되어 그 날 오후 2시, 마트 주차장에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 자리가 첨인 나는 낮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데 대해 깜짝 놀랐다. 애기 업은 새댁부터 중년 아줌마, 할머니 등 여자들이 압도적인 가운데 드문드문 끼어있는 남자들 수도 적지 않았다.

1등 상품이 문 2개짜리 냉장고였다. 난 그 냉장고만 노렸다.

2등까지는 빠르게 진행됐다. 그런데 1등 추첨을 앞두고 무슨 조합장이라는 사람의 인삿말이 있었다. 그 사람이 마이크를 건네받는 순간 웬지 불안했다. 말을 꽤 길게 할 것같은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내 예상대로 그는 그 무더운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기 소개부터 시작해서, 그 조합이 지역사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소개하고, 끝으로 자기네 마트를 많이 이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아마 1등 추첨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사람들의 약점을 손에 거머쥔 그는 열심히 뽐을 내고 있었다. 그도 역시 번들거리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계속 닦아내면서 말이다.

그 날 행운상이란 이름으로 70명한테 주는 10킬로그램의 쌀도 건지지 못한 나는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 흔한 로또 한 번 안 했던 내가 이런 경품 행사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는 사실이 우선 씁쓸했다. 그리고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서서히 다른 데서 짜증이 폭발했다. 그 땡볕 아래서 20여 분의 지루한 연설을 아무 저항 없이 얌전하게 들어 주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나면 말을 많이 해서 자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안 알아주고 뭔가 손해보는 줄 안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이다.

말 하면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다. 무슨 토론 같은 데 나와서 말 하는 걸 보면 요점은 한 줄인데 말이 참 많다. 어려운 말도 많이 쓴다. 

개중에는 간단하게 요점만 말할 줄 알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잘 쓰는 정치인들도 있는데, 그들한테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말을 잘 해서 정말 멋있었던 사람은 따로 있다.

그 분을 처음 만난 건 아직은 바람이 쌀쌀했던 3월,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던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식순에 따라 식이 진행되었고, 그런 자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교장 선생님 훈시 차례가 왔다. 굳어있던 우리는 습관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당장 내일부터 필요한 준비사항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새겨 듣던 우리가 긴장을 늦춘 데에는, 교장 선생님 훈시란 안 들어도 뻔하다는  의미가 들어있었다.

그래서 다들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놀랍게도 훈시는 3분 안에 끝이 났다. 엥?

그제야 방금 교장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했나 되돌려 생각하게 됐다. 

우리 학교 교훈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뭐 둘째 뭐뭐 세째 뭐뭐뭐 이렇게 서두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 다음에는 첫째 항목부터 부연 설명에 들어가야 한다. 둘째, 세째도 마찬가지다. 뻔히 아는 얘기지만 친절한 노파심에서 길게 설명을 해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그 어른들 특성이다. 근데 우리의 새 교장 선생님은 서두가 곧 끝이었다. 이상 마칩니다, 잘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가 덧붙인 말의 전부였다.

우리는 그 짧은 훈시를 믿을 수 없었고, 아마 그 날 교장 선생님 몸이 안 좋아서 그랬나 보다 했다. 하지만 매주 열리는 월요 조회 때도 그 분의 훈시는 늘 간단했다.

차츰 중학교 때까지는 듣지 못 했던 소리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총각 영어 선생님보다도 교장 선생님이 더 멋있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존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사실은,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그렇게 짧은 그 분의 말씀이 머리에  쏙쏙 박힌다는 점이었다. 그 분은 훈시만 간단명료한 게 아니고 모든 부분에서 허례보다 실리를 중시했다. 나이든 사람의 허세, 배운 자의 거만함, 가진 자의 오만함 따위가 그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