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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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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헤프닝


BY 蓮堂 2005-06-22

 소백 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기간에 초청가수 설운도 오빠가 온다고 해서 행사장은 5일장보다 더 성시를 이루었다.

 이 손바닥 만한 동네에 일류 가수가 초청된게 너무 황송하고(?) 반가워서 문협의 모임을 끝내고 회원들과 행사장엘 갔는데 우리자리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서 좀 민망했다.

 내빈석에 마련된 우리 자리 주변엔 연세드신 분들도 바닥에 그냥 앉아 있는게 못내 불편했지만 나만 유난스럽게 굴수는 없어서 그냥 얼굴에 철판깔고 앉아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을 행사장으로 불렀는데 마침 내 옆자리가 비어 있길래 남편을 앉혔다.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고 난 시간이 9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만끽한 상태로 집에 왔는데.........

 중간에 남편이 시동생에게 갔다가 돌아온 시간이 11시 반이 지나 있었고 집에 들어오는 남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지갑을 통째로 잃어 버렸다고.......

 아무래도 설운도 보러 갔다가 그리 됐다고 황당해 했다.

 입었던 옷이랑 차안을 다 뒤졌지만 '여기 있수' 해야 할 지갑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앞이 아득했다.

 현금이랑 카드, 주민증, 면허증, 명함, 전화번호와 중요한 메모가 적힌 수첩, 애들 사진....등등

 말하자면 남편의 알맹이가 몽땅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딸애가 첫 봉급 받은 기념으로 금액이 만만찮은 롱 지갑을 사준게 탈이었다.

 길이가 길어서 바지 뒷주머니에 꽂으면 반은 밖으로 튀어 나와서 항상 주의를 주고 있던 차에 이런 사고가 터진 것이다.

 카드가 문제였다.

 남편은 괜히 행사장으로 불러서 지갑 잃었다고 나를 타박했고, 그 나이에 자기 소지품 하나 옳게 못 챙기냐고 반박을 했다.

 급기야는 상대방 탓을 하기에 이르렀고 묘수를 찾으려고 해도 길이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지 않은 이상 이미 지갑은 물건너 갔고.......

 어느 착한  사람 - 나 같은 사람- 이 주웠다면 분명 되돌아 올것이지만 이건 가마속의 색시 보는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지갑 안에는 남편의 명함이란 연락처가 다 적혀 있지만 이 바쁘고 각박한 세상에 기대한다는건 그만큼 실망감도 크기에 완전히 포기 해야했다.

 남편이 다시 행사장으로 가보자고 했을때 왈칵 성질을 냈다.

 "이보세요....아자씨 ..... 그 행사장에 왔던 사람들 눈감은 사람 하나도 없디더.........."

 그러니 더 이상 미련 떨지말고 카드 분실신고나 하라고 했지만 황소고집의 남편을 이길수는 없었다.

 입을 빼어 물고 뻔한 결과에 대한 고소함을 맛 보일 요량으로  따라갔다.

 가면서 한가지 기대 한 건 다음날 그자리에서 또 다른 행사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앉았던 의자는 치우지 않을거라는 희망이었다. 

 그 자리에서 빠졌다면 바닥에 떨어져 있을거고 날이 어두워서 발끝에 채이지만 않는다면 그 자리에 있을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추리가 제발 맞아 주기만을 기도했다.

 서서 보았다면 아예 가 볼 필요도 없는 뻔한 일이기에......

 행사장 안으로 길게 헤드라이트가 바닥을 기어갔다.

 근시인 나는 멀리 보는데 젬뱅이지만 눈좋은 남편은 이내 무언가를 발견 했는지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차에서 내린 남편은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서 시커먼 지갑을 줏어가지고 와서 나를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아줌마...... 오늘 행사장에 왔던 사람들 마카 눈 감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