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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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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가게(1)


BY 개망초꽃 2005-06-09

깊고 깊은 바다, 그물처럼 쳐 놓은 샷타문에 한계레 신문이 물고기인양 걸려있다. 아침 햇발은 바다에 반사되어 번쩍인다. 밤사이 돌아 다녔던 쓰레기들은 해초처럼 길바닥에 너덜거렸다. 신문을 잡아내고 쇠철망 그물을 한번에 튕겨 위로 밀어 올렸다. 쇠와 쇠끼리 마찰하는 마찰음이 파도소리처럼 경쾌하면서도 울컥 슬퍼진다. 이렇게 혼자서 가게의 샷타문을 올리고 내리는 날이 한달이 되어간다. 일년육개월동안 내 손처럼 내발처럼 날 도와주던 아줌마 직원은 한달전에 어려운 말을 먼저 꺼냈다.

“언니? 나 이제 그만 나올게. 월급주기 힘들잖아. 그럼 다 알지. 언니도 이제 그만 가게 정리하고 다른일 찾아봐. 더 붙들고 있어봐야 손해만 보잖아.”


신문을 쇼파위에 던져 놓고 겉옷을 벗었다. 마른걸레를 적셔 계산대부터 딱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골라 놓은 물건을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고, 바코드가 안되는 것은 손으로 하나하나 숫자를 찍었던 컴을 먼저 딱아냈다. 오른쪽 어깨가 장사하는 동안 계속 아팠다. 요즘은 더 심해져서 팔을 들어 귀를 스치지 못하고 등위로 손을 돌려 브라자끈을 채울 수가 없다. 설거지하기도 고통스럽고 바지 벨트를 잠그려면 끙끙거려야 했다. 이러다가 오른팔 못쓰는 거 아닌가? 그럼 글을 왼손으로만 써야하네. 두 팔 다 잃어서 발로 입으로 컴을 두둘리는 사람도 텔레비전을 통해 본적도 있는데...쥬스병은 깨지지 않게 한쪽손으로 잡고 딱았다. 과자봉지가 뜯어질까봐 위에서 아래로 걸레질을 하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했다.

“언니? 걸레질을 하다가 과자 봉지가 뜯어졌어. 내가 먹고 돈 낼게. 됐긴 뭐가 됐어. 돈 받아? 이그 참 알았어. 그럼 우리 이따가 커피 타서 과자먹자.”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호박카스테라를 아침으로 먹으려고 냄비안에 사기그릇을 놓고 빵을 앉혀 가스불을 켰다. 찜통이 없어서 쪄먹는 삼발이를 사야겠다고 하다가 계란찜을 찌듯 중탕을 해서 만두도 쪄 먹고, 유통기한 날짜가 지난 빵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계란처럼 찜을 해 먹었다. 카스테라가 익는동안 화분에 물을 주었다. 날씨가 더워져서 하루만 지나면 잎들이 목말라 죽을것같이 혀를 길게 내밀며 엄살을 떤다. 보도블럭 사이에 소복히 자라는 별꽃무더기에도 흠뻐덕 적셔준다. 시멘트 틈사이 서양민들레는 씨앗을 가득 이고서 어디론가 튀겠다는 폼새다. 호박카스테라는 달고 촉촉하다. 오늘은 물대신 당근쥬스를 따랐다. 던져두었던 신문을 펼쳤다. 정치이야기만 바닷물처럼 풍부하다.

“언니? 신문 바꿔보자. 이건 정치빼면 없어. 초록마을 광고가 나와서 본다고? 하긴 우리랑 경쟁업체니까 정보를 알려면 할 수 없네.”


채소를 정리했다. 떡잎이 한두잎 있거나 싱싱한 맛이 지난 건 싸게 팔려고 왕창세일바구니속에 넣고, 그래도 안팔리면 집으로 가지고 가고, 그래도 남아 썪고 있으면 음식쓰레기봉지에 넣는다. 유통기한 날짜가 다 돼 가는 건 명찰을 하나씩 달아준다. “20~30%세일” 명찰이름이다. 요즘들어 명찰을 달고 있는 것들이 늘어만 간다. 재고가 많이 발생할 수록 장사는 헛것이다. 들여온 가격이거나 밑가거나 그런 가격으로 옷핀대신 테이프로 명찰을 붙혀준다. 장사치들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삼대 거짓말중에 하나라지만 거짓말이 아니고 밑지고 팔 때가 정말 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는 옷장사처럼 나도 잘못하면 뒤로 밑지게 생겼다.

“언니? 주변에 우리같은 가게가 너무 많이 생겼어. 싸게 들어오던 유통업체가 망해서 물건도 비싸게 들어오고, 손님들은 분산돼 버리고 마진은 없고...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