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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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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껍질


BY 오월 2005-06-03

거듭나기 위해 난 마지막 껍질을 벗습니다.

어디서 부터 물어뜯을까.

어디서 부터 물어뜯으면 좀 덜아플까.

어린시절 작은마을에서 나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이다음에 자라면 변호사 아니면 선생님은 할거라고

초등학교시절 무슨대회든 뽑혀다닐만큼 총명하다

소리를 듣곤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아들이 많은 집이라 딸이여서 편애를

받아본적도 없고 가난에 찌든 삶이지만 산같은 하늘같은

부모 밑에 내유년에 기억은 그리움으로 분홍빛으로 짙게

남아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초 마을에 어떤분을따라 전 엄마와 셋이서

대학까지 보내준다는 서울에 어떤 의사님 댁으로 갔습니다.

학교를 다닌 기억보다는 먹을것을 꾸어오면 그걸 갚지못해

어린나는 그집에가서 밥도하고 아이들도 봐주고 살았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30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은것들.

보랗빛 라일락이 하늘거리던정원 주인집 어린 두딸의 손을잡고

교회에 갈때면 길거리로 쏟아져 내릴듯 담장위에 많이도 피던

장미꽃 처음으로 먹어본 아이스크림, 주인집 네식구는 콘을먹고 난 00바 를

먹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것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했었습니다.

 

그곳에 그 낮선곳에 우리엄마가 날 혼자 남겨두고 골목길로

사라질때 분홍빛 월남치마 자락이 그렇게 그리움에 대상이될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헛것이 보이고 분홍빛은 모두 엄마의 얼굴이

되었었습니다.

엄마가 날두고 떠났던 첫날밤 저녁시간 주인집 네식구가

오손도손 둘러앉은 식탁뒤에 씽크대위에 밥 한그릇과 반찬 몇가지

전 식탁에 등을 돌리고 앉아서 그 밥을 한숟갈 뜨는 순간

내비록 없이 살았지만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또다른 설움 이였습니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설움덩이를 꿀꺽 꿀꺽 삼키다 주인 아줌마께

들키고 말았지요.

 

밥을 함께 먹지않아서 슬픈거냐고 물으시며 함께 먹자고 했지만

그건 안돼는 거라고 어린저는 생각했어요.

가족보다 엄마가 얼마나 그리운지 정말 엄마가 너무나 그리웠어요.

그 이듬해봄 골목에서" 진달래꽃사세요." 하는 외침에 저는 맨발로

달려나갔습니다.내고향 붉은산 그리운진달래꽃.

용도는 모르겠지만 리어커에 진달래꽃을 따서 팔더군요.

분홍빛 엄마의 월남치마.아픈꽃 진달래.

 

그렇게 2년을 보내고 그분들에게 필요한 순진한 식모도 전아니였고

또 저를 대학까지 보내주실 마음도 없으신분들이였기에 전 무지 큰

두려움을 안고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슬내려 축축했던 어스름진 산길을 오로지 그리운 가족들을

빨리 보고싶어 단숨에 달렸던 생각이 납니다.

친정 아버지가 와계십니다.

부족할것도 넘칠것도 없이 사는 딸이 기특하신 모양입니다.

아버지 마음이 편안하고 좋으신듯해서 저도 마음이 좋습니다.

일흔 세월을 사셨음에도 여전히 흐트러짐없이 단정하십니다.

 

계시는 동안 구경하시라고 매일 용돈을 드립니다.

내가 아버지를 향해 애뜻한 마음은 없지만 그냥 쓸쓸한 아버지의

노년이 가슴 아픕니다.

아직은 어린 손자들이 할아버질 빤히 바라봐도 만원한장 주실줄을

모릅니다. 혹시 부담되실까 미리미리 알아서 용돈을 드려도 아이들

만원한장이면 입이 찢어질텐데.그런 생각은 못하시나 봅니다.

 

이제 마지막 껍질을 뜯어내고 아무런 거짓없이 님들을 만나고

쓰잘때기 없는 것들을 켜켜히 가슴에 쌓아놓고 울지 않겠습니다.

나 행복하고 나,영원히 행복하려구요.

늘 행복할거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눈물로 아픔으로 곱게핀 오월이의 행복입니다.

님들 힘들어 하지마세요.

건강만하세요.

우리 모두 접시를 닦으면서도 행복할수 있어요.

모두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