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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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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BY 연 2005-06-03

할머니가 밉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버리고 재혼을 하고 어머니는 미쳐서 돌아다니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맡아서 키웠습니다

손녀을 키운다고 옆에서 뭐라고들 하면 손녀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고

지 핏줄 찾아갈꺼라고 남들 앞에서 말씀 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절대 아버지 찾아 안간다고 다짐을 하곤 했지요

정작 손녀 키운다는 생색만 내고 책임은 못지시는 분이였지요

일관성이 없어서 여기 저기 손녀을 흘리고 혼자 미친 삼촌 찾는다

돈벌려 다닌다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왜 아버지에게 나을 보내지 않고 여기 저기 흘리고 다니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미친 엄마와 살면서 힘들었던 아버지가 재혼해서 나때문에 장애가 될까봐 그런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할머니는 새엄마에게 구박받을까봐 그랬다고 했지만

아버지에게 갔으면 최소한 굶지는 않고 학대야 받겠지만

그래도 내 피가 반은 섞인 동생들과 그럭저럭 공부도 내 능력꺽은 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게 내 운명이였겠지요

할머니는 아들 하나는 일본에서 실종되고 둘째 아들은 미쳐서 실종되고 첫째 딸도 미쳐서 실종됐지요 그 딸이 낳은 자식이 저와 남동생이

있었는데 남동생은 이 세상 살기 싫었던지 아기때 이유없이 죽고 말았지요 엄마가 미쳐서 우린 아기때 부터 이모손에 거의 컸는데

얘기 듣건대 할머니가 키운건 별로 없는것 같았어요

그때도 시집 안간 이모들한테 아기을 맡겨놓고 어디론가 다니셨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이모들도 다 시집가고 객지로 떠나고

나와 미친 삼촌만 남았는데 미친 삼촌땜에 다들 집을 떠난거죠

다들 미쳤다고 하였지만 6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을 아무도 모르게

성적 학대를 했습니다

옆에 누워서 자고 있는 나의 바지에 손을 넣고 하염없이 만지고 주물럭대는 거지요 그리고 낮에는 남 모르게 은근한 시선으로 손으로

이상한 모양을 내게 해보였습니다

그게 엄지 손가락을 검지 사이에 끼워 성기가 끼워진것처럼

해 보이는 것이죠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어린애지만 혼자

참았습니다 왜 참았는지 할머니에게 말도 못했는지

참.......

그 후로 그 미친 삼촌이랑 나랑 둘이만 남이 살다 떠난 빈집에

남겨둔 날들이 많았는데 그때도 멀쩡하다가 한번씩

나를 자기 무릎위에 올려놓고 성행위흉내를 내고 입에다 키스를 하고

지랄을 했지만 무섭고 힘들어서 울기만 했지요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말을 못한것 같습니다

그 후로 고아원에 맡겨지다 몇년후에 먼 할머니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거기서도 나보다 위인 남자애가 밤만 되면 잠을 안자고 내게 다가와

손도 아니고 뽀족한 것으로 밑을 자꾸 찌르는 것이였습니다

얼마나 괴롭고 말도 못하고 밤만 되면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그것도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산소에 다니러가는 길에 그 집에 들릴일이 있었는데

나를 그렇게 밤마다 괴롭히고 낮에는 때리고 미워하던 그 애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객지에 일하러갔다고 하더군요

설마 결혼은 했을것이고 자기 와이프밑을 뽀족한 것으로 해대지는 않겠지요 나라는 존재가 죄가 많은것 같습니다

힘없고 나약한 모든 것에 노출돼 있는 나라는 존재가 그 사람들에게

죄을 짓게 한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곳에 맡겨졌습니다 말도 못할 정도지요

그렇게 맡겨놓고 몇개월에 한번씩 와서 얼굴 보고 무슨 얘긴지 하고

다시 가곤 하다가 데리고 가서 또 다른 곳에 맡기곤 했지요

막내 삼촌집에도 맡겨졌는데  거기서도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숙모가 없는 날 밤 저를 안고 난리 부르스를 치는 겁니다

그땐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였는데 참 정말......

두번인가 그래서 무작정 서울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는데

갈때도 없고 돈도 없고 춥고 힘들더군요

그래서 할 수없이 꾸역꾸역 들어가서 지냈습니다

나중에 사촌에게 그 말을 했는데 자기 엄마에게 말을 전했는지

할머니 귀에 들어갔는데 나를 보자 나무라더군요

그런말을 함부로 흘렸다고......

고등학교을 서울에서 다녔는데 이모네 집에서 몇달 삼촌 집에서 몇달

지냈습니다

그러고 어떻게 학교을 포기하지 않고 다녔는지 그런 환경속에서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자유독립을 외치는 가출도 한번 못해봤는지

제 자신이 답답하고 바보같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6학년때 나혼자 지낼때 동네 총각이

나를 덮치려왔더군요

달빛에 발자국이 왔다 갔다 하길래 서랍장이 없는 농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밑에집 아저씨라는걸 눈치채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할머니가 맨날 나 혼자 자라고 그러고 어디를 돌아다니니까

애가 점점 커가니 흑심을 품고 온거지요

할머니는 내가 먹을 양식과 용돈을 주고 맨날 어디론가 다니셨습니다

혼자 지내는것도 진력이 날때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론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나를 절에 맡기더군요

그래서 중학교때는 거의 절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해주고 청소하고

빨래 해주면서 지냈습니다

절에 있으면서 자주 체했는데

밤에 절에서 공부하던 오빠중에 한놈이 나를 업었는데

참 엉덩이을 받치고 엄지 손가락으로 교묘하게 나의 성기중앙에 손을

찌르면서 병원에 가더군요

아픈데 밑에를 계속 손으로 찌르는데 말도 못하고

죽을 맛으로 치료 받고 걸어서 절까지 올라왔지요

그 오빠는 시치미 뚝 떼더군요

성적 학대도 머리 멍청한 놈은 못할겁니다

나중에 동네 아저씨 얘기를 이모한테 할머니가 한 모양인데

이모꿈에 내가 그 남자 품에 포옥 안겨 있드란다

그러면서 내가 성적인 어떤 낌새를 풍겼으니 그 놈이 오지 않았겠느냐고 그러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낮에 할머니가 얻어다놓은 헌옷중에 반짝이 나시가 있길래 할머니도 없고 호기심에 그걸 입고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데 뒷뜰 쪽으로 그 아저씨가 한번 쓰윽 보고 가기는 했다

아무려면 어린 내가 그걸 입고 그 아저씨를 유혹하려고 했겠는가

물을 길러서 양동을 이고 그 집 앞에 가는데 그집 엄마가 할머니 어디 가셨냐? 하길래 예 했는데 그 놈이 마침 듣고 낮에 동정을 살피러 왔을 것이다 그런데 애가 반짝이 나시를 입고 엎드려 있으니 봉굿한 젖도 보였겠지 난 10살 학교을 들어갔다 초등학교을 여기 저기서 다니다 말다

하다 결국 시골에 할머니집으로 가서 여기 저기 맡겨지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크니 나혼자 살날이 더 많았다

언젠가 절에 같이 지내는 남중학교 선생님께도 그 얘기를 했더니

내가 뭔가 성적으로 그런 내색을 했으니 그아저씨가 그랬을 거라 하였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인데.......

자의든 타의든 그 놈한테 그런 모습을 보인건 내 잘못이기는 하다

그러고 나서 중학교 겨우 졸업하고 서울로 온뒤 시골에는 몇번 가지 않았다 그 꼴보기 싫은 놈이 장가도 못가고 늙어가면서 그 집에서 살고 있으니 그 앞을 지나다녀야하는 나는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다

고향도 싫을 정도가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신 분은 할아버지 뿐이다

늦은 나이에 바람을 피워 가산을 탕진하고 좋은 세월 보내고 늙어서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구박만 당하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정말 내겐 매도 안드시고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셨다

그런데 너무나 일찍 돌아가셨다 그 점은 참 아쉽다

그 외에 할머니도 그래도 고아원에 끝까지 버리지 않고 여기 저기

맡겼을망정 나를 버리진 않았지만 그냥 저냥 지내다가도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곤 구박을 하고

나도 모르던 뒤늦게 아버지 호적에 오른것도 틈만나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버지 대신 맘껏 학대하고 미워해도 되는 상대였던 것이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실제로 같은 사촌이지만 부모가 있는 사촌은 세뱃돈도 주고 이뻐해주지만 난 미워하곤 했다

맘껏 미워해도 누가 뭐랄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성적으로 몸을 좀 만지고 장난을 쳐도 조카라는 인식도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할머니는 90세이다 어릴때 나는 정에 굶주리고 정서적으로 문제가 많아 고아원에서도 오줌싸개였고

항상 미친사람들과 이상한 인간들과 함께 수용돼있는  그 냄새나고 지긋지긋 하던 곳을 빠져나오려고 할머니만 오면 치맛자락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은 진정한 고아가 아닌 나를 미워하고 때렸다

같이 수용돼 있던 삼촌이 실종되자 할머니는 나를 끌고 전국의 고아원과 정신이상자 수용소를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생각나면 너때문이다라고 구박을 했다

크면서 그런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같이 살던 이모집에서는

이모부가 바람을 피워 이혼을 했는데 조카인 내가 같이 살고 있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랬을수도 있다

졸업반이 돼가는데 나는 점점 용돈도 말라가고 나의 존재를 힘들어했다 나는 새벽에 나가서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모가 장사를 해서 돈은 궁하지 않았는지 학원을 다 등록하게 해

주었다 나는 바보다 그때 좀 날라리처럼 놀고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 자신이 스스로 사는 법을 알아볼껄 이모나 할머니 외가의 끈이 떨어지면 죽는줄 알고 죽은듯이 살았다

어릴때 부터 그런것이 익숙해져 난 오히려 독립하는것을 두려워했나보다

지금 할머니가 와 계시는데 내안에 또다른 매맞고 울고 있는 아이인지

학대받고 있는 아이인지 걔가 불쑥 튀어나와 남편과 아이와 할머니에게 무섭게 화를 내고 있다

바보처럼 그때 그때 풀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상처받은 아이가

자꾸만 솟아올라서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아버지도 밉고 원망스럽고 할머니도 밉다

미운데도 은혜갚으라고 해대니 인간의 탈을 쓰고 하고 있는데

잘하고 싶다가도 그 아이가 자꾸 화를 내고 징징거려서

나 자신도 짜증이 난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의 화를 풀어주고 할머니도 용서할 수 있을까?

감히 용서라니 이래서 머리 검은 인간은 거두는게 아니야

내 머릿털을 다 뽑아서 짚신을 삼아도 은혜다 못갚을거라고

다들 내게 할머니께 잘하라고 그런다

그런데 잘해야하는데 자꾸만 입이 비틀리면서 미운소리만 나오고

원망에 찬 소리만 나온다

애잔하고 고맙고 불쌍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할머니가 와 계시는지 일주일짼데

마음을 다스리자고 다짐을 하는데도 오늘 결국 터졌다

낮에는 내게 말도 안하고 가만히 먹고 자고 하다가 밤에 남편이 오면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서 자지도 못하고 물고 늘어진다

티비 소리보다 더 큰 할머니 두런거리는 소리가 오늘밤 왜 그리

귀에 거슬리는지 ........ 내 안의 내가 두렵다

내 삶을 자꾸 흔들고 있다

나는 결혼7년을 열심히 살았고 아들도 셋 낳았다

할머니 이모들에게 그 동안 방황하고 힘들었던 나를 접고

맘잡고 잘 살고 있는 떳떳한 나를 보여주는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외가 식구들만 보면 떠올리면 그 아이도 내 안에서 같이

솟아난다

그리곤 남편과 아이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과도하게

화를 낸다

이런 내속의 한많은 아이을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도와주소서....

저는 참 못난 사람인가 봅니다

너무 소심해서 남이 하는 웬만한 소리는 전부 꼽게 들리고

마음의 상처가 되어 남습니다

할머니가 왜 저를 학대만 했겠습니까?

어릴때 유난히 배앓이를 많이 했던 저를 업고서 동구밖을 돌기도 했지요 그러면 저는 할머니 등에서 동백기름 냄새가 나는 머리 냄새가 너무 좋아 배도 덜 아프곤 했지요

그런데 그게 습관적으로 아프더군요 아퍼야 관심을 주니 그랬는지

나중에는 아무리 아프다고 헤매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아는체도 안하더군요 그저 입으로만 뭐라고 하시곤.....

참 웬수 같은 손녀였을겁니다 지긋지긋 했을겁니다

무슨 복으로 이런 짐을 떠안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도 약간 정신적으로 이상했는지

초등학교때는 오바스런 행동도 간혹 했습니다

나의 담임과 다투기도 하고 어쩔땐 내 생일도 아닌데 생일이라면서

과자 박스을 두박스나 반에 넣기도 했습니다

어쩔땐 소풍 가방에 하도 먹을것을 많이 넣어 끈이 떨어지기도 했지요

나을 대할때 항상 이런식이였습니다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다기 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같은거 말입니다 그래서 어린맘에도 할머니가 짜증났습니다 스트레스 받고요

할머니는 배급을 타먹던 극빈자였는데 없는 돈으로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과자 박스라니 더군다나 거짓생일이라니 난 참 난감하고 할머니가 하나도 고맙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때도 실업고나 인문고냐 결정하는데 그냥 할머니랑 살면서

거기 학교 다녀도 되는데 할머니가 굳이 광주에 있는 실업고를  나한테 묻지도 않고 선생님을 갑자기 찾아가서는 거의 따지듯이 약간 이상하게 말해서 바꿔놨더군요

그 아저씨 사건도 있고 해서 저도 더 이상 고향에 살고 싶지도 않았기에 잘됐다 싶었지만 대책이 없는 결정이였지요 아무도 돈을 대주지 않는데 무슨 돈으로 방을 구하며 학비는 대려는지

그때까지도 혹시나 아버지를 믿었던것인지.........

이모들을 믿었던 것인지 ....... 아마 이모들에게 보태달라고 했지만

거절했을겁니다

광주에 실업고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내고 책도 받아왔는데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야했지요

그 후로 자충우돌 이모들 집과 삼촌집을 전전하며 눈치밥으로 지내다

상고 졸업후 나혼자 그럭저럭 별짓 다하고 살다

결혼하여 이제 겨우 정착을 했지요

그러나 과거의 아픈 기억이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간혹 너무 우울하고 힘들고 다른 힘든일이 닥쳐도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듭니다 어쩔땐 난 이세상에 쓸모없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서글픈 혼자만의 생각으로 더 자학하기도 합니다

이제 이런 저를 고치려면 정신병원이라도 가봐야할까요?

유아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나중에라도 그런 기록이 저의

진로를 방해하지는 않을까요?

언제쯤 자아가 분명해져 저 스스로 의연하게 살날이 올까요?

저 때문에 남편도 애들도 조금씩 영향을 받고 남편은 힘들어합니다

눈에 띠게는 아니지만 저의 비뚤어진 성격이 시댁에도 협조적이지 못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합니다

저 혼자 힘으로 이런 문제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들 한두가지씩 문제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제게 아직도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아무에게도 아직까지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아까는 쓰고 나니 새삼스레 눈물도 나더군요

구체적으로 적어본것은 처음이네요 한꺼번에 아니고 한개씩

무엇에 연계되어 생각이 나거나 아니면 기억 저편에서 잘 생각나지 않았던 것들인데 오늘은 할머니때문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이런 글을 쓰게 되네요

전 참 몹쓸 인간입니다

이렇게 밖에 안된 사람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