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40분 동해시 이기동 출발 - 이기령 - 갈미봉 - 고적대 - 망군대 (1:30) - 연칠성령 - 사원터 - 문간재 - 무릉계(4:30) 05. 5. 17 / 산행시간 9시간 여덟시간을 걸었다. 빗방울이 간간히 넓은 암반에 점을 찍으며 빨리 하산하라는 무언의 지침을 알려준다. 그리고 한시간 후 무릉계 주차장에 모두 모인 30여명의 회원모두는 산행 1주년을 기념하는 파티 속으로 들어가 피로를 벗어던진다. 힘든 여정.... 살아가는 날들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참아 인내하며 포근히 감싸 안을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가 되길 진정 원한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듯 우유부단한 나의 모습이 진절머리나게 증오스럽다. 홀홀단신 배낭꾸려 떠나는 사람처럼 모든 시름잊고 홀연히 떠나고 싶다. 초록의 유혹때문인가, 산이 부르는 몸짓에 동화되려는 내 안의 발버둥거림이 피곤을 무릅쓰고도 힘들 산행에 합류한다. 동해시 이기동 '잎새바람' 찻집 작년 12월 마치지 못한 백두대간의 한 구간, 이기령에서 고적대까지 오르는 쉽지않은 산행이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이미 짙게 들어간 풀숲에 싱그런 바람과 향내음이 그득하다. 삶의 청량제를 들이마시면서 산 들머리 포장된 도로위로 발을 내딛으며 오름길로 향한다. 배워가는 산지식에 절로 배부르고, 알게 모르게 산꾼으로 변하여가는 내 모습에 문득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심약한 본연의 내가 어찌 바뀌겠는가만 의연하게 산을 오르는 나를 볼때면 얻은 것이 많음을 느낄수 있다. 모두가 한마음일 수는 없는 것, 내가 산에 오르면서 설레이고 두근거림은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산 속에서 만날수 있는 키 작은 야생초들로 그득하기 때문이다. 언제인지 모르게 빠져버린 이름모를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고 보는 즐거움으로 힘든 산행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산속에서 만나는 연인이라고 할까. 얇은 미소 짓게하며 애무하는 손길의 떨림,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저 좋기만 한 상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별 앞에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던져주는 산 속의 연인....야생화 앵 초 참꽃마리 산악회에 소속이 되어 일년을 산에 올랐다. 한마음일수는 없었던 개개인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동화되어 간다고 할까, 심취하여 함께 보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너무 좋다. 야생화 이름 하나 알아가는 일이 별 것 아닌것 같긴 하지만 산에서 배운 미미한 지식 하나에도 마냥 좋기만 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행한다는 것이 또한 좋다. 이래 좋고 저래 좋다. 작년 7월 대덕산에서 만났던 야생화에 버금가는 꽃들이 백두대간 길에 즐비하니 늘어서 있었다. 산초입부터 만났던 꿀풀과 미나리냉이꽃 쥐오줌풀, 골무꽃이 눈길 끌고 있었으며 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곤드레, 나물취, 개미취, 삽추 등 손빠른 사람들에게 먹거리로 유혹당하여 그들의 자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게 보이는 것은 앙증맞은 꽃뿐, 아무리 알려주어도 잊어버리는 나물치가 되고 만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금방 터득하게 되지만 관심 밖의 것은 아무래도 더디 알게 되나보다. 어디를 가든 나는 하늘을 자주본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하늘 쳐다본다 했던가 무심히 바라보는 하늘 위엔 무수한 그림이 펼쳐져 있다. 그 안에 바다도 있고 산도 있다. 그리고 내가 있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게에 짖눌려 안간힘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산 속 나무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잠시 쉬어간다. 해가 힘이 없다. 산목련이 통통하게 개화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시원스레 생긴 모습이 무척 이나 부러워보인다. 여름이 가까워 지면서 무성해질 잎 사이로 아주 커다랗게 꽃송이를 피운다는 산목련은 생긴 것 만큼 커서인지 함박꽃나무라 불리운다고 한다. 다시 산에 올라 활짝 핀 산목련을 볼수 있을까... 산 목 련 7시 40분부터 오름길에 오른 우리는 백두대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이기령에 도착 한다. 시원스럽게 뚫린 임도가 황토흙 냄새를 풍기며 5월 산을 지키고 있다. 후미에 붙어 열심히 따라오며 산나물을 뜯는 회원의 배낭이 포화상태이다. 주의를 주는 대장의 말에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그 배짱에 나물이 주는 유혹이 대단함을 실감한다. 쉬어가는 길목 이기령 이제부터 접어드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 간신히 한사람 정도 다닐 수 있는 길목에 5개월만에 첫 행보를 내딛었다. 천천히 체력단련하면서 백두대간을 완주하리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저절로 힘이 솟는다. 진달래꽃은 꽃잎부터 피고 철쭉은 나중에 핀다고 한다. 6월이 철쭉의 절정이요 축제의 기간이다. 좁은 산길 옆으로 큰 키를 자랑하며 웃자란 철쭉들이 푸른 잎 옷으로 치장을 하고 붉게 단장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만큼 신록의 기운이 왕성하다. 그리고 꽃들의 잔치 또한 앞다투어 피고지는 의식을 거행한다. 제 얼굴을 뽐내며 5월을 지키고 있다. 1290m의 갈미봉에 도착하니 모두들 지친상태이다. 이른아침부터 올라 네시간 동안 걸었으니 지칠만하다. 더군다나 백두대간에 들어서면서 폭신한 길이 있는 반면 힘든 급경사로 인해 쉬어감이 번복되다 보니 예정시간보다 늦춰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청옥산과 두타산이 초록으로 뒤덮혀 그 풍광에 경탄을 금할수가 없다. 서둘러 고적대로 다시 향한다. 안전하게 로프설치가 되어 있던 고산으로 오르는 길목엔 얼레지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수줍어 고개 푹 숙이고 있는 얼레지 얼굴이 올라가는 우리들에게 환히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힘든걸음 얼레지꽃이 풀어주고 있다. 얼 레 지 정오를 넘기고 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뒤돌아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보니 푸르른 초원지대처럼 편안해 보인다. 그 안에서 걷는 길은 쉽지 않았건만 멀리서 보여지는 광경은 또한 이렇게 다르다. 지금 이 시간 고통속에서 헤엄칠지라도 세월의 두께를 더한 날 편안하게 보여질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리라 마루금을 보면서 큰 숨 내어 본다. 고적대 정상지점에 도착한 시각에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걷는 것이 엄청난 칼로리를 소비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중간중간 먹는 간식은 이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듯 밥부터 먹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모두 내딛지 못할 정도로 비좁은 고적대 정상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며 잠깐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하산하는데 보통 난코스가 아니다. 밧줄타고 바위 틈 사이 파인 홈을 딛고 조심조심 내려가니 곧 폭신한 산길이 나타난다. 피 나 물 연 영 초 노오란 양지꽃인줄 알고 다가가 보았던 꽃단지는 피나물 군락이었다. 노란제비꽃, 양지꽃, 애기똥풀 등 비슷한 꽃이 수없이 많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수 없는 야생화였다. 여린 잎은 나물로도 먹을수 있다는 이 꽃잎은 넉장이며 애기똥풀처럼 자르면 유액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업어 와 긴 시간 공부한 결과 얻어놓은 지식이었다. 경사진 언덕아래 황금물결 일렁이는 틈 사이로 피어 있던 바람꽃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리고 처음 보는 듯한 하얀 꽃에게로 다가가 사진 속에 또 업혀온다. 멀리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오라고... 풀밭 사이에 자리를 잡고 메고 온 배낭을 풀어 헤쳤다. 올라오면서 뜯어온 취나물과 그 외 나물은 장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밥만 준비해 온 나는 염치없이 펼쳐놓은 찬들을 입속에 집어 넣으며 배를 채웠다. 입은 쉴새없이 바쁘다. 말하랴 음식 받아 넣으랴 바쁜 와중에도 건내주는 알콜도 거부하지 않고 냉큼 받아 마신다. 분위기에 맛 또한 달콤하다. 작년 6월 싸리재에서 출발, 만항재를 거쳐 화방재에 도착한 백두대간 종주 첫산행에 이어 여섯번째 이어지는 행보이다. 모두가 초보자인 만큼 힘든 점 많았지만 경험으로 조금씩 얻어지는 용기와 끈기 그리고 체력보강이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종주 길에 잔잔히 펼쳐지면서 우리의 삶 역시 활기를 얻을수 있으리라 본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하였다. 어느 누구도 이겨내지 못할 강한 파워를 품고 있는 여인들의 기운이 곧 백두대간 완주라는 축제의 한마당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장담해 본다. 툴툴 털고 일어난 자리.... 미안스럽게도 초록 풀들이 모두 누워버렸다. 비와 바람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곧 그들을 일어서게 할 것이다. 안녕을 고하며 망군대에서 연칠성령으로 향한다. 몇번 와 보았던 연칠성령에서 사원터로 향하는 내림길에 돌입한다. 잔뜩 긴장하면서도 받아마신 과실주에 열이 확확 달아올라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뒤따라 오는 일행과 주거니받거니 나누는 산중 정담에 어느사이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는지 계곡물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연칠성령에서 사원터를 거쳐 무릉계까지 이어지는 하산코스는 쉽지않기도 하거니와 조금은 지루한 하행길이다. 하지만 나누는 정담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이내 목표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네 인생사 또한 비유되는 것은 산이 보여주고 알려주는 삶의 파노라마인 것이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이 몇조각 입에 넣어 단내를 없애버리고 아직 녹지않은 얼음물로 오르는 열을 가라 앉혔다. 녹음이 짙어가는 오월의 숲 속에서 잠깐의 행복을 얻지만 돌아와 안주한 내 삶의 정류장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산 속에선 모든 것을 잊으라 하지만 비집고 들어앉은 내 안의 우울은 어쩌란 말인가. 사원터 지나 문간재에 오르니 청량한 바람이 온 몸을 식혀준다. 줄지어 선 행렬이 너무 멋져 보인다. 내려가는 무릉계곡 오후 늦은 무렵이어서일까. 간간히 다정해뵈는 부부들 모습 외에는 별로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굴참나무와 서어나무 그리고 쪽동백 나무가 줄지어 선 무릉계곡에 무수한 꽃잎들이 떨어져 있다. 잎새한장 밥상되어 꽃잎 하나 올려놓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과 흡사했던 쪽동백 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향내만 달랐을 뿐 나란히 꽃잎 피어내고 있었던 쪽동백이 꽃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잎들을 벗어던지고 밋밋한 나무로 처음 만났던 쪽동백은 서어나무와 생강나무처럼 나무결이 매끄러워 혼돈을 불러왔다. 어여삐 생긴 꽃들에 비해 전혀 예상치 못한 향내음을 뿜었던 쪽동백, 열매로 기름을 짜 썼다는 지식은 귀동냥이 아닌 시간을 투자하여 얻어낸 결과였다. 지식많은 여자보다는 지혜로운 여자가 되고 싶은데 이것도 타고나야 하는가보다. 방울방울 떨어졌던 비는 언제 뿌렸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9시간이라는 긴 산행은 1주년 기념파티 속에서 일순간 피로를 풀어주며 들뜬 아줌마들의 박수 속에 또 내일을 약속하며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