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올 때, 해온 이불이 몇 채 있다.
그 당시 나는 친구들 중에서 비교적 빠르게 결혼한 편이고 엄마도 주변에 딸 결혼 시킨 사람이 별로 없는 형편이었다.
혼수를 하면서도 경험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어야했지만 엄마에겐 안타깝게도 도움 줄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비교적 같은 시기에 시집 보내는 사람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그나마 엄마보다도 더 안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때문에 엄마 나름대로 정성들여 해 보낸 혼수가 타박 받는 일이 많이 생겼다.
나의 신혼이 힘들었던 원인 중 큰 부분이 그때문이기도 했다.
그 중 하나만 말하자면...
이불을 여러 채 하면서 엄마는 그냥 좋은 것, 이왕이면 비싼 것이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없는 돈 생각지 않고 나름대로 고급으로 해 주셨다.
번듯한 상가의 점포에서 솜을 사고 이불홑청도 사고 해서 복 많게 산다는 주변 여인들이 모여 이불을 지었다. 나 잘 살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으시며...
그러나 그 이불은 내내 말썽이었다.
아는 사람 통하지 않고 그냥 샀던 솜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서로 뒤엉켰고 이불 깃은 미어졌다.
어머님은 내가 홑청을 시칠 때마다 타박을 하셨다.
바느질도 제대로 못하는 딸자식 벙어리 이불로 해서 보낼 것이지, 이렇게 넉넉하지도 않은 홑청을 해 가지고 와서 제대로 꿰맬 줄도 모른다며 짜증을 내셨다.
지금은 어머님께 "글쎄 저희 엄마랑 저랑 순진해서 완전히 속았지 뭐예요." 하며 너스레를 떨줄도 알지만 처음에는 어머님 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야속하고 우리 친정엄마 흉보는 것이 듣기 싫어 괴로운 마음이었다.
해마다 이불빨래하고 홑청을 시칠 때면 꼭 반복되는 것이 어머님 잔소리였다.
그것을 어떡하다보니 엄마에게 말하게 되었고 엄마는 그 즉시로 잘 아는 이불집(그 뒤로 알게 된 집이 있었나보다)에서 제일 좋은 고급 이불로 한 채 해서 보내주셨다.
딸이 타박 받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 같다.
엄마 흉 보는 게 제일 싫어...
철 없을 때 엄마 마음 헤아리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내뱉곤 했었다.
"엄마 흉보면 너도 같이 흉 봐. 그럼 흉도 아니다. 네가 웃으면서 <우리 엄마가 좀 그렇긴 하죠?> 해 버리면 둥글둥글 다 지나가지만 뚱하고 있으면 정말 흉이 되고 감정만 나빠진다. 엄만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내가 태평양 한바다다."
엄마는 허허 웃으시며 그렇게 내 맘을 다독이셨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때로는 시어머님께도 정말 친정엄마 흉도보고(진짜 흉이라 생각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지만...) 어쩌다 시어머님에 대한 안 좋은 말씀이라도 엄마가 내게 할라치면
듣기 거북해질 때도 가끔 생길 만큼 엄청나게 나도 변했지만 그래도 정말정말 싫은 것은 친정 흉인 것이 틀림없다.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머님이 아무리 뭐라 하셔도 이불빨래를 안하고 있게 되었다.
이불 깃이 더러워져도 꾹 참고 견딘다.
결혼 초, 욕실의 비누에 물기가 많다며 있는대로 화를 내던 천하제일 깔끔 남편도 어느새 날 많이 닮아가고 그래서 더러운 이불도 견딜줄 알게되었다. 새 이불 꺼내주려 해도 아직은 춥다며 겨울 이불들만 찾는다. 가여운 남편...
그러다 어머님이 며칠 어디라도 가시면 있는 이불 없는 이불 다 꺼내서 빨래하고 삶고 풀 먹이기도 하며 완전히 새롭게 이불을 목욕시킨다. 만약 어머님이 어디 가시질 않으시면...그래도 끝까지 빨래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겐 좀 민감하고 아픈 부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제 오늘 그렇게 날을 보냈다.
모초럼 어머님 어디 가 계신 시간동안 미루지 않고 그 일을 해치운 것이다.
사실 어머님과 남편도 내가 언제까지 미루는지 애태우셨겠지만 내가 제일로 힘들었다. 빨리 깨끗하게 하고싶은데 빨래 참느라고...
내일 어머님 오시는데 오늘 전화로 말씀드렸다.
이불 빨래하고 홑청시치고 다 했어요. 어머님. 어머님 계시면 또 절 도와주실 것 같아 안 계신 틈 타서 다 했답니다. 하며 잔꾀 섞어 아첨한다. 어머님 흡족해 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 앙큼한 며느리....
어쩔 것인가,,,
어머님이 잔소리 하시면 나는 분명 듣기 싫고 그래서 어머님 미워할 것 같고...
이렇게 안 계신 때 하면 잔소리도 안 듣고 어머님 미워할 일도 없고...
그래서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겼다.
어머님이나 남편이나 처음 볼 때보다 무지 무디어지고 그대신 넉넉해졌다.
내가 그랬다.
나는 죽어도 어머님이나 애비 못 따라가요. 머리가 그렇게 돌아가질 않아요.그러니 어머님이나 애비가 절 따라와야 해요. 그리고 그게 모두의 건강에 좋은 거거든요.
이젠 모두가 내 말을 옳다 한다.
지금 허리도 아프고 힘도 들지만 참 후련하다.
내가 게으르긴 하지만... 그래도 깨끗한 게 더 좋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