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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여자


BY 김경란 2005-04-02

아버지의 여자

 

 

 

스물 일곱 먹던 해, 고향 가까운 타지에 있던 내가 급히 등본을 떼러 집에 갔을 때, 어디서 한번은 본 듯한 여자와 늘 그립던 얼굴의 엄마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들어선 나의 존재를 황망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보다 한 10년 쯤 위인 듯한 그 여자를 어머닌 먼 친척뻘되는 고모라고 소개했고 그녀는 이미 나의 존재를 알고나 있었다는듯 둥글고 착해보이는 얼굴 전체를 환하게 피면서 "그 애가 이렇게 컸어요? 서른이 다 된 나이에 화장기도 없이 이 깨끗하고 이쁜 얼굴 좀 봐. " 하며 덥석 내 손을 잡고 유난을 떨며 흔들어댔지만,  나는 아, 예에...고모요...언젠가 본 기억이 나네요... 하며 슬그머니 손을 빼던 기억.



평소에는 없는 당혹한 표정으로  " 미리 연락도 없이 웬일이다냐,  무슨 일인데, 소식도 없이 왔어... 금세 갈껴?  " 하며 어울리지 않는 수선을 피우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내 심상치 않았지만,  손님이 오셔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볼 일을 본 후 곧장 집을 떠났다. " 한 이틀 쉬었다 갈거다,  고모니까, 앞으로 고모라고 부르면 된다. 걱정말고 얼른 가거라, 바쁠틴데...  " 하며 나를 서둘러 배웅하면서 눈빛이 흔들리는 어머니.



   그후,  나는 문득 내가 그 여자의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를 떠올린 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실수였다. 여고 시절, 우연히 아버지의 옷장을 열고 큰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를 찾던 나는 묵직한 겨울옷들 밑에 깔린 하드카바의 못 보던 앨범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 단 두 페이지에 실린 몇 장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 사진들 속에 가지런하게 한복을 입고 어색한 포즈로 홀로 서서 독사진을 찍은 여인의 모습, 바위 위에 걸터앉아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함박 웃음을 띄면서 억지로 이쁜 척하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찍힌 젊고 탱탱한 여자, 그 사진 밑에, 사랑하는 당신에게, 라고 메모하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글이 길지는 않았으나, 진하게 적혀있던 기억들.  어느 날 아침, 채 잠에서 깨기도 전에 안방에서 들려오던 엄마와 아버지의 말다툼, 이 잠바는 갸가 사준거다, 왜!  당신은 이런 옷 사줘본 적이나 있어?  남이 사준 거 입는 것도 왜 난리야, 난리가! 잡고 매달리는 엄마를 뿌리쳤는지,  툭, 하고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리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틀어막았던 기억.



   왜 나는 그 여자를 만난 후, 그것도 아주 오래 시간이 흐른 후, 그 여자와 그 앨범 속의 사진이 같은 인물임을 깨달은 것일까. '그 여자가 사 준 잠바' 를 입고 나가신 그 날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기본적인 말 몇 마디 외에는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런 표정과 말투가 짜증스러워 공연히 틱틱거리며 엇나갔던 기억이, 가슴 저 밑바닥부터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 치밀어온다.



   그리고 내가 그여자를 만난 건,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이었고, 그 때 아버진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후였다.  여자는 훨씬 중후하게 나이를 먹었고,  스물 일곱살 나이에 보았던 얼굴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지만, 병실문을 열고 쭈빗거리고 들어서는 그녀를  나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느그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보고싶다고 해서 내가 연락했다, 넌 나가 있어라... 어머닌 이빨을 갈며 눈에서 독기를 뿜어내던 나를 떠밀어 문 밖으로 쫓아냈고, 아버진 여전히 눈을 감고 계셨다. 한참 후 나온 여자는 나하고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아무 말없이 여자를 따라 병원 밖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아버지한테서 자주 들었어,  네가 아버질 많이 미워한다고.  하나 밖에 없는 딸한테 미움을 받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생각해본 적 있어? 돌아가시고 나면 두고두고 후회할거야. 지금 아버지와 화해해. 아버지가 잘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야, 아버지 잘못을 따지기 전에, 부모자식간에 맺힌 원망을 살아있을 때 풀어야지싶어, 아버질 용서해, 그리고 나도 용서해...  마치 처음 읽기를 하는 아이처럼 띄엄거리며 내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애쓴 듯 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도, 그녀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하고 15년을 넘게 살았어, 아버진 물론 늘 형님하고 살았지만, 난 아버질 존경하고 남편처럼 받들며 살았어, 호적에 올려달라고, 그게 소원이라고 10년을 넘게 애원했지만, 아버진, 콧방귀도 안 뀌었지, 네깐게 어떻게 우리 가문에 이름을 올리냐고 호통이셨어, 왜 그런 아버질 내가 버리지 못하고 결국엔 임종까지 지켜봐야하는지...  



   결국 그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이빨을 물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의 눈물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 했으므로 나는 울 일도 없었고 눈물이 날 리도 없었다. 난 결코 아버질 용서하지 않겠어요. 저대로 돌아가시는 것도 아버지 운명일거에요, 아버진 자식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어요, 엄마가 평생 어떻게 살아오셨는데... 돌아가세요,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그녀는 그렇게 울음을 참지 못한 채 떠났고  나는 바람 소리나게 몸을 돌려 병원 안으로 들어와 버렸던 기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평창강 건너, 강이 보이고, 도로가 보이고 앞산이 마주한 양지바른 곳에  아버질 모신 엄마는 내내 마을을 떠나지 못하신 채 아주 오래 아버지 산소를 지켰다. 어쩌다 마실 삼아 아버질 찾으면 꼭 누가 미리 와 하얀 국화꽃을 꽂고, 술병을 둔 채 다녀간 흔적을 알게 한다고 몇 번 말씀하셨는데, 어머니 눈치로는 이미 그 사람이 누군가를 알고 계셨다. 꽃은 늘 채 시들지 않았었고 술잔에 술은 마치 금방 따라놓은 듯 그대로 가득 부어져 있다던 말씀을 하시면서 혀를 차시던 어머니.  아마도 같은 여자로서의 어떤 비애감을 느끼셨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유니텔에서 내준 포럼방 회원의 글에서 읽은 '어떤 아줌마에 대한...'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했고, 이제는 불경스럽게 '그녀'라고 호칭하는 것이 왠지 도리에 맞지 않는 표현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제천 어딘가에 살고 있을 그분은, 그분이 하늘처럼 받들던 나의 아버지의 영원한 부재를 어떻게 이겨내며 살고 계실까. 혹시 나의 배 다른 형제를 키우고 있진 않으실까. 아님, 결혼을 한 건...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용의주도하고 계산 명백한 아버지가, 언제나 호령을 하시고 단 한 번도 당신의 감정을 내보인 적 없는 냉혈적인 아버지가, 순간의 쾌락에 못 이겨 후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마흔이 가까워 오는 나이를 먹자, 나는 그분에 대한 생각이 매우 자연스럽게 바뀌어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아버지 산소 때문이라도 절대로 평창의 아파트는 팔지 않고 그냥 둘 것이라던 어머니는 구성에 아파트 당첨된 큰아들 중도금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미 그 집을 복덕방에 내놓고 오신 눈치셨다. 어머니도 그곳을 떠나고  이제 우린 평창이란 곳에 아버지 산소말고는 살 같은 연고도 없는 이판에, 그분은 아버질 아직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기억하고자 애쓰며 살고 계실까.


   언젠가 모든 게 허락된다면, 그 옛날의 아버지의 여자를 만나고 싶다.  괴팍하고 권위적이고 혼자 잘 나신 맛으로 큰소리치며 아랫사람들에게 호령만 하실 줄 알던 아버지, 그 아버질 존경하고, 받들어 모시며 해바라기처럼 근 20년을 살아온 그분을 만나 아무 말이 없어도 좋다. 그저 꺼칠해졌을 두 손을 따뜻하게 한번 잡아드리고 싶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찌든 그분의 눈에서 어쩌면 또다시 눈물이 흐를 지 모르지만, 난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 후, 10년도 더 지났는걸요...

 

 

 

라사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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