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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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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음식- 혼자 처리하느라 애태울 바에야..


BY 최지인 2005-02-23

 

어제 아침 남편이 출근을 하면서 그러더군요

 

"올해도 보름밥이랑 나물 조금씩 맛은 봐야 않것나"

 

"맨날 먹지도 않고 내 입만 고생하게 하믄서 또 와"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는 허전하고..니 쪼매만 신경 좀 써봐라"

 

띠용~~하기 싫다는 감정이 앞서는 순간은 늘 머리가 찌지직..

 

 

어쩌겠는지요

 

하늘같은 서방님이 그냥 지나가긴 섭섭다는데..

 

 

부랴부랴 시장엘 가서 이것저것 주섬주섬 사다보니

 

어느새 시장 바구니는 한 가득^^

 

맏며느리 자리란 게 그런 건지

 

주어진 자리를 살아내다 보니 배포가 커진 건지

 

안 하면 안했지 이왕지사 할 바에야

 

한 그릇 그득씩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ㅋ

 

 

저녁 내내 다듬고 볶고

 

오곡밥 재료에 우짜다 보니 나물이 9가지나..

 

 

저녁 내내 온 집안에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

 

"내다, 오늘 집에 안가믄 안되나.

 

여서 막걸리 파티를 할 모양인데..."

 

"지금 뭐라 카는데. 마 빨리 온나.

 

오늘은 어떤 말도 택도 없다 카이"

 

"하루만 봐 주몬 안되겠나"

 

"우짜든동 빨리 오소. 안그라믄..알지예? 알아서 하소마.

 

저 많은 나물들 내가 누구 땜시 저리 바리바리 하는데.."

 

"아, 알았다 마, 고마해라. 내 집에 들어가께.."

 

 

아침,

 

남편의 입이 떡 벌어지데요

 

"우와, 니는 손도 참말로 크데이..이 많은 건 운제 다 했노"

 

"와요, 내를 누가 이리 만들어 놨는데..고마 다 가꼬 가소.

 

가서 상가 사람들 데리다 한 바탕 잔치나 하소.."

 

"흐흐~~안 그래도 어제 저녁 상가 사람들

 

눈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내일은 나물에 오곡밥 맛나게

 

비벼먹겠다고 은근히들 기대하는 눈치더만"

 

"하이고, 내가 왜 그 말 안나오나 했네요.."

 

 

나물이고 밥이고

 

남기면 누구 힘들겠습니까. 제 입만 고생이지요.

 

보따리 보따리 싸서 다 보내버렸지요..ㅋㅋ

 

 

잘들 먹었다고 지금 쯤 전화 올 때가 넘었는데

 

어째 아무 소식이 없네요.

 

다들 너무 많이 먹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ㅎ

 

 

오늘 저녁에 보름달이 휘영청 떴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요

 

너도 나도 하늘 보고 제 소원 먼저 들어달라 하겠지만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하늘 향해 날리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렇게라도 한 번 쯤 잊고 지냈던 하늘을

 

오래 바라다 볼 수 있다는 거,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을런지요..

 

 

예전의 깡통에 구멍 뚫어 관솔 넣어 휙휙 돌리던

 

그 아련한 추억의 쥐불놀이 같은 건 없어도

 

가족끼리 모여 정겨운 시간,

 

한 곳을 향해 집중하는 그 모습만은 죽 이어지겠지요?

 

오늘 밤, 좋은 시간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