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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따 주던 갈래머리...


BY 낸시 2005-02-18

어머니를 도와 아궁이에 불 때는 일이 끝나면 아버지는 들어와 꿈나라를 헤매는 나를 깨웠다.
겨울밤은 왜 그리 짧기만 한지...
억지로 눈비비고 일어나면 토방에는 벌써  따끈한 세숫물이 기다리고 있다.
준비가 다 끝난 부지런한 언니는 학교 늦겠다고 벌써부터 성화다.
엉터리로 대충 세수하고 들어와 책가방을 챙기는 손이 부산하다.
아버지는 책가방을 챙기는 내 뒤에 빗을 들고 앉아 머리를 빗겼다.
어려서 댕기머리를 하고 자랐다는 아버지는 머리 땋는 일에 능숙하다.
하지만 책가방을 챙기느라 쉴새없이 움직이는 막내딸의 머리를 땋는 일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다.
언니는 이제 마당에 서서 방방 뛴다.
한시간에 하나 밖에 없는 시내버스를 놓치고 지각하게 생겼다고 난리다.
그렇다고 언니는 혼자 갈 수도 없다.
동생을 안 데리고 가면 야단을 맞을테니까...
언니의 성화에 굶고 가겠다는 나를 마루 끝에서 기다리던 어머니가 붙든다.
"어여, 여기 찬물에 밥 말았으니까 한술만 뜨고 가거라..."
후루룩 들이키듯 밥 먹는 시늉을 하고 어머니가 내 주는 운동화를 신고 그 때부터 나는 달리기 선수가 된다.
언니 말대로 시내버스를 놓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한시간에 하나 밖에 없는 버스를 놓치면 지각은 너무 당연하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는 운동화 바닥에서 불이 난다.
어머니는 아궁이 불을 끌어내어 부지깽이를 가로질러 놓고 그 위에 운동화를 걸쳐놓아 덥혀주곤 하였다.
잠꾸러기 주인을 만난 운동화가 아궁이 앞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발바닥이 좀 뜨겁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보다는 눈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 더 급하다.
얼마나 세게 머리를 잡아당겨 땋았는지 눈꼬리가 아프다.
책가방 챙기느라 부산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머리 땋을 때 더욱 힘을 주어야 했을 것이다.
잠오는 눈이라고 놀림받는 눈이 머리카락에 당겨져 쭉 째진 눈이 되어있다.
뛰면서 연방 머리카락을 당겨 느슨하게 만들어 주어야 비로소 내 본연의 얼굴이 된다.
벌써 시내버스는 윗동네 산 모룽이를 돌고 있다.
막판 스피드를 내어 뛰지 않으면 안된다.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들의 수를 가늠해 본다.
아이들이 많으면 타느라고 시간이 걸릴게다.
몇 초의 여유가 시내버스를 타느냐 놓치느냐의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간신히 숨이 턱에 차 기다리는 시내버스에 오른다.
지각했다고  쥐어 박는 언니의 손은 간신히 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