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초등 삼학년 시절, 학교에서 글짓기 시간에 쓴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초등 삼학년의 솜씨 같지 않았던 것이다.
외할머니를 따라 밭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글 속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기에 물었다.
"이런 일도 있었니?"
"아니, 엄마... 사실대로만 쓰면 재미가 없어서 그 부분은 내가 만들어 낸 거야..."
"......"
솔직히 놀라웠다.
적당히 자기 상상까지 더해서 글을 풀어나간 솜씨가 아무리 봐도 초등 삼학년 솜씨로는 넘친다 싶었다.
그 후로도 딸은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 보였다.
딸이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때 넌즈시 글쓰는 일을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 난 글쓰기에는 적당한 사람이 아니야.
나에게 어떤 일을 글로 묘사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내 성품은 글을 쓰기에 적당하지 않아.
글을 쓰다 보면 자기 내면의 생각들이 솔직히 들어나기 마련인데 나는 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 보여지는 것이 싫어.
그렇다고 적당히 감출 것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글로 쓴다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엄마는 솔직한 사람이라서 이런 말이 잘 이해 될런지 모르겠지만, 난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제 아들이 왔기에 엄마가 쓴 글을 읽어보라고 하였다.
읽고 난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엄마, 난 엄마를 아니까 이게 엄마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읽는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잘 난 체 한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갖기가 쉬울 것 같아.
읽는이는 잘 난 체 하는 글보다는 글쓴이가 자기의 약점에 대해 쓴 글을 읽을 때, 더 재미있어 하거든...,
엄마가 덜렁거리는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 글로 쓴다면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야..."
"......"
아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말이다.
그럼 나도 우리 딸처럼 글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제 잘 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실수한 일은 가능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부끄러운 기억들, 실패한 기억들은 가능하면 빨리 잊고 히히거리며 살고 싶은 사람이다.
나중까지 그 때의 불쾌했던 기억들을 떠올려 마음을 흐리고 싶지 않다.
통쾌했던 순간들, 사랑 받았던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글로 그 기억들을 재생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런데 남들이 싫어할 거라니...
아컴에 들락이며 올리는 글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나마도 글쓰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하나...
고민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