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어나더+ 아이함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7

옹졸해서 미안해


BY 예운 2005-01-26

오후다. 겨울날의 오후도 나른하긴 마찬가지라 따뜻한 차 한잔으로 기운을 차리려 한다.

오만가지의 상념들이 빈 운동장을 헤집고 다니며 방황하고 해말간 슬픔하나가 가슴팍을 똑똑 두드린다.

보름동안이나 아들을 상대로 벌인 유치한 나의 냉전 뒤끝이 영 아프다. 좋은 엄마 괜찮은 엄마 다 접어 두고라도 너그러운 엄마는 될 수 없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옹졸하기만 한 내 행동이 맑은 하늘 앞에 부끄럽기만 하다.

"엄마한테 한가지 물어봐도 돼? 엄마 왜 오빠랑 말 안해?" 딸아이의 이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끝낼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아득해진다.

나이가 벼슬이고, 나이가 양반이라는데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었단 말인가? 나이 먹을수록 욕심만 늘어가는 내 모습이 창문에 비친다.

일그러진 나의 일상들이 희뿌연 먼지되어 나를 에워싼다. 딸아이의 한마디가 머리를 쥐어박는 충격보다 아프다. 나는 나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아들이 받을 상처따위는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또 한번 못난 모습 보이고 말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차마 말 못하고 기다린 아들의 보름은 또 얼마나 지옥같이 길었을까. 살아도 살아도 다 알지 못하고 사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눈부신 깨달음이다.

나름대로 늘 야무진양, 똑똑한양 산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나를 잃어 버리게 했다.

아이들에게서 추락해버린 엄마의 위신과 땅바닥에 곤두박질 쳐버린 엄마됨을 애들 눈높이까지 올리기 위해 나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하리라!

멀고 먼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가는 기분이다.

내 온 몸을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부끄러움들.

빈 운동장 구석구석 무리지어 다니며 나를 향해 퍼붓는 야유들을 보면서 부끄러워 지지 않을 그날이 오면 말하려한다.

나 정말 괜찮은 엄마 되고 싶었다고.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