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재래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물씬, 눈앞에 맞닥뜨린 좌판의 물건들을 보니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주섬주섬 풀려 나온다.
일명 '번개시장'으로도 불리는 이 재래시장은 5일장의 대표적인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인근에서 점포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입김에 밀려서 그 존폐위기가 풍전등화(風前燈火)
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닷새만이면 어김없이 장꾼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그동안 틀어 박혀 있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해져 버린 더듬이는 방향을 못잡아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만 할뿐 선뜻 물건에 손이 가지 않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물건도 이것저것 잘 사 본 사람이 눈썰미 있게 잘 사게 마련인 모
양이다.
값싼 수입산이 판을 치는지라 널려있는 물건 마다 '국산'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원산지가 표시
되어 있지만 100% 국산이라는 보장도 없다.
요즘은 시골 할머니들이 더 잘 속인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일이 비일비재하다.
설마 노인네들이 거짓말 하겠냐는,
노인에 대한 신뢰가 아직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네 미풍은 점점 배신 당하고 있다.
얼마전에도 아는 할머니에게 좁쌀을 살려고 값을 물었더니 눈을 껌벅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중국산이니까 알아서 하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아는 안면에 차마 거짓말 할수 없었던 그 할머니의 좁살만한 양심이 그래도 고마웠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정쩡한 가격에 판매를 하고 있는걸 보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텃밭의 소출을 가지고 한쪽 귀퉁이에서 쉴새없이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물 건너 올 품목이 아닌 건 마음놓고 살 수 있어서 좋다.
호박고지가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어서 샀다.
路地에서 키운 시금치가 볼품없이 묶여져 있지만 맛은 있어 보여서 한단 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을 샀다.
세개 천원이라고 하는데 이천원어치 사니까 일곱개를 주면서 너스레를 떤다.
'아지매가 고와서 한개 더 드리니데이....'
어차피 한개 더 줄 요랑이지만 이런 밉지 않은 아첨에 기분 나빠 할 이유가 없다.
굴비를 집어 들었다.
어른 손바닥 보다도 훨씬 더 큰 게 다섯마리에 만원이라고 한다.
영광 굴비란 말에 너도나도 달려든다.
왠 횡재냐 하는 식으로 眞假는 무시하고 가격과 브랜드를 보고 지갑을 열고 지폐를 꺼낸다
언뜻보면 그놈이 그놈 같아서 구별이 잘 안가지만 내 눈엔 분명 가짜였다.
의심가는 첫째 이유는 값이 너무 싸다는 거였다
옛부터 영광 굴비는 '밥도둑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별나게 맛이 좋아서 임금님
수랏상에 오를 정도였다.
진짜 같으면 저 가격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두번째는 영광굴비는 참조기만 이용하는 데 이건 참조기가 아니고 세조기나 백조기 같다.
전문가가 아니니까 자세한 구별방법은 모르지만 왠지 의심이 갔다.
일반 굴비 같으면 엄청 비싼 가격이다.
저 정도면 5천원선이면 얼마든지 살수 있는데 모두들 허겁지겁이다.
진짜 영광굴비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넙죽넙죽 뱉아 내면서 연신 돈 받느라고 입이 벌어진다.
굴비 한두름을 쳐들고 그 장사치 하고 눈을 똑바로 마추었다.
"아저씨...이거 진짜 영광 굴비 맞습니까?"
추워서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연신 코를 훌쩍이던 그 남자가 나를 보더니 주춤한다.
대답 대신 코를 움켜쥐고 죄없는 땅바닥에다가 싯누런 코를 뽑아낸다.
내 등뒤에다가 욕지거리를 쏟았을게 분명하지만 짚고 넘어가는 이 성깔은 날씨 만큼이나 곤두
서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가짜 굴비 판게 뭐 그리 대수냐고 스스로를 타박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쓸지 어떻게 아느냐고....
등푸른 생선이 좋다길래 꽁치 열마리 사고 비타민 C가 풍부하다고 떠들길래 브로클리도 샀다.
아이들 간식으로 고구마도 한봉다리 사고 안면있는 과일 장사가 죽는 시늉을 하기에 귤도 한
보따리 샀다.
우엉조림을 좋아하는 남편이 생각나서 국산이라고 떠드는 장사치의 입담에 끌려서 3천어치 사
고..
이것저것 챙겨넣고 한숨 돌리는데 예전에 이웃에 살던 아저씨가 좌판을 늘여놓고 옷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이사온 이후로 한번도 못 보았으니 10년은 족히 되지 싶었다.
부잣집 아저씨로 통하던 그 잘나가던 신사분이 노점상으로 전락한 이유가 있을것 같았다.
끌고 다니는 이동식 다방(?)에서 커피를 두잔 사서 한잔을 내밀었다.
상처했다는 소식은 바람결에 들었지만 그 이후의 소식은 더이상 들을수가 없었다.
곧바로 묻기가 민망해서 우선 아이들 안부 부터 물었다.
"부모 복 뒈지게 없는 것들이 잘 있을수 있겠소?....큰놈은 군대갔고 작은놈은 백수로 있수"
그 많던 재산 어찌하고.........
'마누라 죽고 일년도 안되어서 새 장가 갔수.
친구들이 복 터졌다고 부러워 합디다.
남들은 한번도 겨우 가는 장가를 무슨 복에 두번씩이나 가냐고 카면서....
정말로 복 많은 놈인줄 알았쥬........내가요......
그런데요...정말로 복 많은년이 따로 있습디다.
새장가를 들게 해준 그 년은 서방이 동서남북에 다 있더라고요.
말 하자면 나한테 수금하러 온 여잡디다...몸주고 수금해가는 수금사원이었수....
이년도 안되어서 내 재산 다 빼가고 덕분에 새끼들 겨우 공고만 졸업 시키고.....
그래서 보다시피..........'
입김과 더불어서 토해내는 헛 웃음에 그 남자의 조강지처가 생각났다.
살려고 무던히도 애쓰더니 재산 일궈 놓으니까 그 돈 써 보지도 못하고, 결국은 수금사원 배
채워 줄려고 그렇게 악착을 떨고 살았는가 싶은 생각에 입안에 쓴침이 돌았다.
내가 잘 쓰는 말.
'모든건 운명이고 팔자려니 하세요........'
그러나 겉으로 뱉을수는 없었다.
마땅히 위로의 말을 할 수 없는 주변머리 덕분에 사지 않아도 될 옷 몇가지를 사고 일어섰다.
깎아 줄려는 인심을 거절하고 옷거죽에 붙어있는 가격 그대로 주고 오니 맘이 편했다.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깔렸다.
'머니머니 해도 처음 기 젤 입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