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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서 신부가 웃으면?


BY 낸시 2005-01-19

큰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아버지는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고이 키운 맏딸의 손을 신랑에게 넘기는 순간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고 만 것이다.

고모들이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이 그리 섭섭하더냐고 아버지에게 물으면 아버지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딸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 쑥쓰러우셨을 것이다.

왜 아니랴, 남 앞에서 내 놓고 내자식 사랑하는 것이 흉이라고 배워 온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두고두고 이 일이 부끄러웠던가보다.

"야가, 시집가는 것이 되게 좋은게비네~, 왜 이렇게 잡아 끈디야~"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서 둘째 딸의 결혼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결혼행진곡의 박자를 못 맞추는 아버지를 언니가 살짝 잡아 당긴 것이다.

신부 화장을 곱게 한 언니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물들었다.

 

아버지는 막내딸에 대한 사랑 만큼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놓고 살았었다.

딸년을 저리 키워 어찌 할것이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막내딸이 이쁘기만 하였던가보다.

화가 나서 밥도 굶고 떼쓰는 막내딸을 아버지는  이렇게 놀렸다.

"밥을 뺏어 먹는 사람이 없으니 밥이 참 맛있다. 정말 꿀맛이다!"

입으로 가져가는 아버지의 상추쌈을 빼앗아 먹기 좋아하는 막내딸을 이리 놀리면 화가 풀리는 것을 안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밑으로 태어 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 누나는 막내딸이니 버릇이 없어도 괜찮지만 너는 남의 집 맏아들이니 안된다."

늦동이 외아들이 행여 버릇없이 자랄까, 그것은 염려가 되었던가보다.

덕분에 남동생은 예의범절이 반듯한 사람이 되었다.

 

막내딸의 결혼식에서 아버지는 둘째를 보낼 때의 여유를 잃고 있었다.

신부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손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져왔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큰언니의 결혼식 때처럼  눈물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떼쟁이 막내딸 치우는 자리라고 좋아서 너무 빨리 가면 안돼요."

둘째 언니 때처럼 박자를 못 맞추지 말라고, 아버지의 긴장을 풀라고 이렇게 말했다.

"너나, 너무 좋아서 빨리 걷지 마라!"

아버지가 즉각 응수했다.

부녀간의 이 대화를 들은 하객들이 와르르 웃었다.

카메라맨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필름에 담았다.

웃음소리에 아버지도 긴장이 풀린 듯 했다.

그 날 신부는 활짝 활짝 많이 많이 웃었다.

근엄한 신랑은 신부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꾹 찔렀다.

"그만 웃어!"

카메라맨은 이 순간도 놓치지 않고 필름에 담았다.

중학교 선생이던 신부의 제자들이 몰려와 앞자리를 차지하고 지켜보다 한 마디씩 했다.

"에이, 선생님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웃으면 어떻게 해요?"

"신부가 웃으면 첫딸 낳는다잖아요, 그만 웃어요."

아이들의 놀림에도 기죽지 않고 웃으며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 마라, 신랑이 웃어야 첫딸이고, 신부가 웃으면 첫아들이야..."

그 날 신부는 아무나 보고 웃었다.

이모를 보고, 고모를 보고, 외삼촌을 보고,..., 친구를 보고 환한 웃음을 웃어주었다.

딸을 남의 집에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딸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기 위해서 신부는 그 날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밥을 먹는 신부를 보고 신랑의 친구중 하나가 말했다.

"아니, 무슨 신부가 밥 한그릇을 다 먹어요?"

"......"

신부는 이번엔 속으로 대답했다.

'웃는 것도 힘든 일인가 보다. 배가 엄청 고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