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봅니다.
지난 겨울 군산에서 양희은이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학창시절 무슨 노래를 불러야할 자리에서는 꼭 양희은 노래를 불렀었죠. 우리세대는 사실 양희은 세대는 아니었고 배철수나, 조용필 세대였는데 소위 말하는 386세대에 속하다보니 의식있는 노래를 많이 부르고 동경했습니다.그런 양희은이 이 지방 소도시까지 온다니 만사 제쳐놓고 갔죠. 거기서 게스트로 나온 한가수를 보고 처음엔 깜짝 놀랐고 두번째는 흐뭇했고 세번째는 질투가 나더군요.
지방대학이다보니 행사때마다 유명가수가 와서 노래를 부르기도했었는데 그 즈음 우리학교에 해바라기노래를 유익종처럼 잘하는 예비역이 있었습니다. 분위기에 약한 여학생들이 아저씨,아저씨하며 참 좋아했었죠. 예전의 유명한 방송 DJ가 극찬을 했었던 그사람의 꿈은 가구가 되는거라고 했었지만 이 작은 지방 소도시에서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해도 그꿈을 과연어떻게 이룰수 있을지 심히 염려가 되기도 했었지요. 졸업후에도 간혹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그로인해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었는데 한 십년쯤 전인가 그가 서울로 간다더군요. 가수의 꿈을 이루려고.. 이곳에선 그래도 유명인 이었는데 그땐 라이브카페도 별로 많지 않을때라 누나만 있는 가정에서 왕자처럼 귀하게 자란 그가 가수가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할 상처와 고통이 내일인양 걱정되더라구요.
그리고 십년이 흘러서 이제 결혼해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난후에도 가끔 학창시절을 회상할때도 꼭 그 사람의 노래는 빠지지 않을 만큼 늘 그의 노래는 가까왔었고 다시 또 그를 볼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는데 그 유명한 양희은 콘서트를 그를 보게된겁니다.
무슨 유명한 여자배우가 나오는 드라마의 삽입곡을 부르는 가수라고..
그래요,그는 꿈을 이룬겁니다. 한참 첫사랑에 빠져있을 때 첫사랑 그와 나는 이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를 참 좋아했고 그가 노래하는 라이브카페를 잘 다녔는데 마침내 그 아저씨는 꿈을 이룬것입니다. 난 그때 그 첫사랑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러다보니 내꿈도 돌아보게 되더군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동요를 불러주고 그 아이들에게 자라면서 내가 가졌던 꿈을 심어주는것이 꿈이었죠. 그런데 결혼전까진 어느정도 그 꿈을 실현시켰었는데 결혼하고나서 난 직장을 잃고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홀시어머니와 철부지 시누밑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아이을 셋이나 키우다보니 내 꿈을 까맣게 잊은거였어요. 셋째 아이가 걸어다닐 무렵 홀연히 나타난 그 아저씨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꿈을 찾기 시작했죠. 하지만 내꿈은 간데가 없더군요.
그후 며칠은 참 우울하고 내 자신이 초라하고 허무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늦은 아니게 결혼이란걸 해서 아이들이 셋다 유치원에가서 손을 엄마를 덜찾을 무렵에 내나이는 벌써 사십을 훌쩍 넘긴 나이기 될텐데.. 하며 실의에 빠져서 무력감이 생기고 우울증까지 올무렵 우리 딸 아이가 혼자서 흥얼흥얼 노래를 지어서 부르더군요.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남의 아이들에게만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 아이도 셋이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더군요.
그때부터 내가 어릴때 부르던 동요를 하나씩 아이들이 노는곳에서 혼자부르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아름답고 새로운 동요들이 많지만 어릴때 친구나 선생님들게 늘 칭찬을 듣던 그 노래들만큼 쉽고 정겹고 아름답진 않더군요. 피아노는 기본이고 음악을 전공하는 어린이들이 허다한 요즘 아이들이 듣고 노래하는 동요도 참 어려워졌는데 옛 동요들은 어찌그러도 소박하고 아름다운지.. 지금은 내가 결혼으로인해 접어야했던 그꿈을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심고 있답니다. 매스컴이 너무 발달되어 "비"의 노래에 열광하는 어린이들이지만 어린이들은 동요를 부르며 꿈을 키워줘야한다는 내 생각엔 지금도 변함 없고 그 중요성을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이 짧을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아이들에게 동요를 들려주고 또, 불러주고 있답니다.
동요 노랫말을 가만히 잘 들어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