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간만에 보는 함박눈이다.
소리도 없이 밤새 차분이 내리려는 모양이다.
까치밥이라고 남겨 두었던 감 하나 남아 추위에 오두마니 떨고 있다.
앙상한 가지위로 스치듯 내리는 눈송이가 가슴을 여미게 하고 못견디게 그리운 사람하나
가슴에서 되살아나 마음을 후빈다.
비가오는 날이면 이렇게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내 영혼은 자유로이 외도를 한다.
잠 못들고 하얗게 밤을 새워도 머리는 아주 맑아지는 느낌!
새벽의 여명을 맞이하며 시험 공부를 하던 그 진지함과 맑아지던 영혼의 소리를
지금도 듣고 느낀다.
나를 들여다 보는 유일한 시간.
난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시간.
마음에 들지않는 나를 유일하게 표용하고 이해해 주는 시간이다.
난 많은 날들을 날 버려두고 사랑하지 않았던 사실에 이젠 놀라지 않는다.
이젠 조금씩 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으니...
많은 시간의 시행착오가 혼란과 혼미의 날들을 가져다 주었고 그 혼란이 싫어 나를 외면했고
그혼미한 날들이 싫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날 내가 용서 할 수 없었으니..
유독 자신에게 혹독하게 구는난 오만했고 자신을 스스로에게 변명 하느라 거짓투성이의
삶을 자유로이 내버려 두었다.
아주 오랫동안...
어느날엔가 바람부는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 돌아 나오는 회오리 바람소리가
가슴을 뚫고 지나가던 느낌.
가슴에 동굴하나 생긴것처럼 윙윙되던 바람은 한참이나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슴이 너무 시러워 깜깜한 골목 어귀에 앉아 엉엉 울었다.
부끄러움도 체면도 접어둔채로 늦은밤 길가에 주저앉아 엉엉 울던 날, 눈물이 마를즈음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
엉기성기 내리더니 함박눈이 되어 가슴에 안기어 왔다.
태어나서 내가 나를 위안하던 밤 .
나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밤.
내가 나를 사랑해야만이 살아갈수 있다는 아주 짧은 진리하나가 가슴에서 따뜻하게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밤이면 그때처럼 날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며 날 사랑했던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덜 외로운 방법을 배워 나간다.
앙상하던 가지위로 하얀옷이 입혀지고
가로등 아랜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리는밤이다.